-잃고, 잊고 또는 숨겨진 우리 문화유산 이야기(5)
기구한 운명의 두 불상, 백제 금동관음보살입상
백제의 미소
살짝 감은 눈
입꼬리 씰룩하며
터지는 콧망울
어깨를 타고 흐르는
간결한 옷매무새
비틀어 선 허리는
비현실의 극치
손끝의 정병은
뭇 중생을 위한 치유의 보약
누구의 손길일까
궁금하고 궁금하였는데
백제인의 지극 기도로 탄생한
백제의 꽃, 미소불이여
인연의 꽃
불꽃의 눈물
슬퍼도 슬퍼할 수 없는
그래서 핀 미소불
부여의 꽃이여
한국과 일본으로 헤어진 백제 금동불
충남 부여 규암리의 옛 절터에서 금불상 두 점이 발견된 것은 1907년이다. 밭을 갈던 농부가 땅속에서 가마솥을 발견했는데 그 속에 금빛 찬란한 불상이 두 점 있었다. 두 불상은 모두 서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각각 그 모양과 크기가 달랐다. 21.1센티미터와 26.5센티미터의 크기로 미소가 아름다운 불상이 좀 더 컸다. 그리고 배를 약간 내밀고 서 있는 관음보살의 유연한 삼곡자세(三曲姿勢)는 이 불상이 최고 수준의 걸작이라는 것을 단번에 보여 주었다.
어느 위급한 순간에 불상을 솥단지에 모시고 땅속 깊이 묻은 채 황급히 떠났을 그 누구를 생각하면서 이 불상들을 발견한 농부는 주인을 찾아 줄 것을 요청하며 이를 일본 통감부 헌병에게 알렸다. 하지만 속이 시커먼 일본 헌병대가 순순히 주인을 찾아 곱게 돌려줄 리 만무했다. 주인을 찾아주겠다고 1년을 보관하던 헌병대는 오히려 일본인들을 상대로
불상 경매를 진행하기에 이른다. 이때가 바로 천 년을 함께해 오던 두 불상의 행로가 달라지게 된 때다. 니와세 하쿠쇼는 경매에서 두 불상을 낙찰받은 후, 1922년 수집광 이치다 지로에게 미소가 아름다운 불상 하나를 팔게 된다.
조선 문화재 수집광 이치다 지로가 백제의 미소불을 손에 넣자 소문은 일본인들 사이에 급속히 퍼졌다. 그중에 유독 미소불에 탐을 낸 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악명 높은 도굴왕 오구라 다케노스케였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오구라는 한반도 전역에서 전 시대에 걸쳐 출토한 유물을 3천여 점 넘게 가지고 있었지만 최고의 불상인 백제 금동불은 손에 넣지 못했다고 한다.
이에 오구라는 이치다에게 “60만 원을 줄 테니 양보하라”고 했지만, 이치다는 “100만 원을 줘도 양보할 생각이 없다”며 단칼에 거절했다고 한다. 이치다는 후에 이 불상을 일본으로 반출했고 끝까지 공개하기를 거절했다.
반면 니와세가 소장한 금동불은 1939년 조선총독부가 보물로 지정했다. 보물 지정으로 반출 위기를 넘긴 작은 금동불은 광복 후 한국 정부가 압수했고, 1997년 국보 제293호로 지정되어 고향인 국립부여박물관에 남아 1922년에 헤어진 또 다른 금동불을 기다리고 있다.
백제미소불은 돌아올 수 있을까?
백제 금동불이 어디서 누가 만든 것인지 아직까지 밝혀진 바는 없다. 이와 관련해서 7세기 위덕왕 시기에 제작한 백제 금동대향로와 문양 등이 비슷하고 최고의 조형미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 위덕왕 때 창건된 왕흥사지에서 제작했을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또한 1993년 충남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발굴된 백제금동대향로도 위급한 상황에서 수조에 넣은 것으로 보여 왕흥사에 있던 금동대향로와 규암리 절터에서 발견된 금동불이 어떤 위험한 상황에서 다급히 숨겨졌던 것으로 보인다.
위급한 시기로는 백제 멸망 때나 왜구가 부여 일대를 침략한 고려 말이 아니었을까 추측할 뿐이다.
불상은 1907년 우연히 발견한 농부에게서 일본 헌병대로, 그리고 경매를 거쳐 니와세의 소유였다가 1922년 이치다 지로에게 팔린 후 1970년 현재의 소장자의 손에 넘어오게 되었다. 불상을 돌려받기 위해 현재 소장자가 불상을 취득한 과정에 대해 불법성을 입증해야 하는데 지금으로서는 어려움이 많다. 대신 불상이 현재의 소장자에게까지 전해지게 된유통과정의 문제점을 제기하면서 환수 협상을 해나가야 한다.
그렇다면 불상을 환수할 방안은 현재로서는 소장자가 선의로 기증하거나, 아니면 어느 정도 보상을 하고 불상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 방법이 있다. 이에 한국 정부는 불상을 매입하기로 결정하고 소장자와 접촉했으나 환수에 실패했다. 그러나 문화유산회복재단과 연고권이 있는 충청남도와 부여군에서 불상 환수를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어 지방정
부와 민간단체의 협력을 통해 환수의 가능성은 아직 열려 있는 상태다.
1254호 30면, 2022년 2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