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레벤과 비텐베르크의 루터 기념물 (Luthergedenkstätten in Eisleben und Wittenberg)
교포신문사에서는 2022년 특집 기획으로 “독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매주 연재한다.
독일은 서독 시절이던 1976년 8월 23일 유네스코 조약에 비준한 이래, 48건의 문화유산과, 3건의 자연유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탈리아와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세계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한편 아픈 역사도 갖고 있는데, 2009년 현대적 교량 건설로 인해 자연 경관이 훼손됨을 이유로 드레스덴 엘베 계곡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서 제명된 것이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제명된 첫번째 사례였다.
독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등재일 기준으로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한다.
작센안할트에 있는 루터 기념물은 모두 개혁가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와 그의 추종자였던 인문주의자 필리프 멜란히톤(Melanchthon)의 생애와 관련되어 있다.
아이슬레벤과 비텐베르크의 루터 기념물은 개신교 종교개혁의 고유한 증언을 간직한 기념물로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있다. 종교 개혁은 세계의 종교와 정치·역사 적으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였다.
루터는 1483년 11월 10일에 당시 랑게 가세(Lange Gasse)로 알려진 거리의 하숙집에서 태어났다. 루터의 가족은 다음 해 아이슬레벤에서 10㎞쯤 떨어진 만스펠트(Mansfeld)로 이사하였다.
루터는 에르푸르트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한 뒤 1505년에 아우구스투스 교단에 들어갔다. 루터는 그곳에서 1510년까지 머물다가, 비텐베르크에 새로 세워진 아우구스투스회 수도원으로 전임하였고, 수도원 대학에서 성경 연구 학과장으로 재직하였다. 1517년 10월 31일,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 부속 성당의 북쪽 문에 95개 논제를 게시하면서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다. 루터는 그 뒤 몇 년 동안 저술을 통해 성서의 권위에 대한 자신의 견해와 믿음에 따른 구원의 교리를 발전시켰다.
이러한 행동 때문에 그는 1521년에 보름스 국회에서 파문되어 추방당하였다. 루터는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의 비호 아래 바르트부르크 성에 숨어서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하기 시작하였다. 루터는 1522년 3월에 비텐베르크로 돌아갔고, 1525년에 수도 서원을 파기하고 전직 수녀였던 카타리나 폰 보라와 결혼하였다. 그의 가정은 유럽 전역에서 온 개혁가들의 중심지가 되었고, 1층에 만든 가족실은 나중에 출판된 『교훈 담화(Martin Luthers Tischreden』의 배경이 되었다.
아이슬레벤의 루터 생가(Luthers Geburtshaus 1483)
이곳은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저택으로 상당량 복원되었다. 19세기 역사주의와 역사적 중요성의 특별한 혼합물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메벤의 루터 임종의 집(Luthers Todes Haus 1546)
현재 루터기념물기구의 박물관과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비텐베르크의 루터 홀(Luther Saal)
원래는 16세기 초에 세워진 수도원의 일부로 루터가 생전에 거주지로 사용하였다. 3층 건물이며, 현재는 박물관으로 되어 있다.
비텐베르크의 멜란히톤의 집(Melanchthons Haus)
인문주의자 멜란히톤이 살았던 주거지이다. 1536년에 전형적인 르네상스 양식으로 건축된 좁은 3층 건물로, 3분할된 반원 아치형의 박공지붕이 있다. 각 방의 내부 배치는 원상태 그대로이고, 다른 기념물들과 달리 16세기적 성격을 대부분 유지하고 있다. 현재는 멜란히톤과 관련된 물품이 전시되어 있다.
비텐베르크의 시 교회(Stadt Kirche)
이 교회는 구시가지 중심부의 마르크트 광장 근처에 있으며, 2개의 거대한 탑이 있는 후기 고딕 양식의 건물이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메인 제단이다. 메인제단은 루카스 크라나흐(Lucas Cranach) 부자(父子)의 작품이며 루터와 멜란히톤의 도해법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작품이다.
비텐베르크의 성 부속 성당
우뚝 솟은 성은 중세 도시의 서쪽에 있으며, 성당의 첨탑은 건물의 북서쪽 모서리에 있다. 19세기에 병영으로 사용되면서 성의 원래 특성은 대부분 사라졌으나, 성당은 루터 시기의 모습을 대부분 유지하고 있다. 성당은 동쪽 애프스(Apse)가 있는 긴 바실리카 구조물인데, 후기 고딕 양식의 독일 할렌키르헤(Hallenkirche, 세 제단의 높이가 같은 고딕식 교회당 건축의 형식)의 전형적인 사례이다.
건물 출입은 상징적 중요성을 이유로 서쪽 문을 통해 한다. 북쪽 면에는 특별한 경우에만 사용되는 유명한 ‘테제의 문’이 있다. 1499년에 성당이 처음 건설되었을 때 만들어진 첨두아치에는 건축연도가 새겨져 있다. 문 주변 장식에는 루터와 멜란히톤의 조상을 포함하고 있으며, 청동문에는 ‘95개조 논제’가 라틴어로 새겨져 있다. 루터와 멜란히톤은 이 성당에 안장되어 있다.
1263호 31면, 2022년 5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