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문화사업단의 문화이야기 / 92
영화로 본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II

왜 이렇게 불편할까? –성소수자(동성애자) 이야기

다양함과 개별성이 강조되는 시대를 살면서도, 대개의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를 불편하게 하고, 대부분은 우리에게 의식되지도 못한 채 외면당하고 있는데, 이런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들이 있다.

문화사업단에서는 장애인과 이주 노동자들의 삶을 영화와 함께 살펴본 이전 연재에 이어, 이번 호부터는 성소수자 문제와 종교와 양심의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소수자들의 삶을 표현한 영화를 소개하고, 이들의 삶을 돌아보도록 한다.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동성애를 말한다는 것은 불편한 일이다.

한국 동성애 영화의 시발점은 1996년 개봉된 ‘내일로 흐르는 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동성애를 다뤘다는 점만으로도 영화계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후반부에는 동성애 커플을 부정적으로 그려 결국 그들을 비정상인으로 치부해버리고야 말았다.

이후 여고괴담2(1999), 욕망(2002), 로드무비(2002), 순흔(2004), 구보씨 일보(2006) 등의 영화가 동성애를 소재로 제작되었다. 또한, 동성애라고는 할 수 없지만 2006년 개봉한 ‘천하장사 마돈나’는 여자가 되길 원하는 남고생 ‘오동구’의 이야기를 예쁘고 아기자기하게 그려냈다. 우리 사회 소수자의 일부라고 볼 수 있는 트랜스젠더에 대해 관심의 문을 연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작품성이 높다는 평을 받았음에도 불구, 흥행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후회하지 않아 (이송희일 감독 2006)

2006년 11월, 동성애 영화계에 한줄기 획을 그은 작품이 나타난다. ‘후회하지 않아’가 바로 그것이다. 이 작품은 농도 짙은 애정신과 동성애를 가장 현실적으로 바라보았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독립영화라는 특성상 많은 상영관을 확보하지는 못했지만, 이 영화는 8일 만에 2만 관객을 넘어섰다는 흥행 아닌 흥행기록을 세웠다. 또한, 두 주인공의 사랑이 계속됨을 암시하는 엔딩신은 동성애가 결코 모두를 파국으로 치닫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삭막한 도시, 두 청춘의 피할 수 없는 만남

시골 고아원에서 자랐지만 대학에 가겠다는 꿈을 갖고 서울생활을 시작한 수민(이영훈 분). 서울에서의 일상은 기대만큼 희망적이지는 않지만, 수민은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며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부잣집에서 부족함 없이 자랐지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삶에 지쳐있던 재민(이한 분)의 차를 운전하게 되면서 두 사람의 피할 수 없는 만남이 시작된다. 잠깐 동안이었지만 서로에게 깊은 인상을 품게 된 두 사람의 마음은 흔들린다.

재민과 수민, 그들의 낮과 밤

너무나 다른 환경에서 살고 있는 재민과 수민은, 기업 부사장의 아들과 해고 노동자로 재회한다. 재민의 호의에도 불구하고 수민은 공장을 나와 여기저기 일자리를 찾아 헤매다가 한 선배의 소개로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곳에 발을 딛게 된다. 그 곳은 바로 게이 호스트바. 내키진 않았지만 도망칠 곳이 없었던 그는 어쩔 수 없이 그 곳에서 일을 하게 되고 그의 일상은 완전히 달라진다.

한편, 집안에서 정해 준 약혼녀와 결혼을 앞두고 있지만 재민은 수민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외면할 수 없어서 호스트바로 그를 찾아간다. 행복한 결혼을 꿈꾸는 약혼녀에겐 미안하지만 그는 자신의 욕망을 버릴 수 없다.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을 만큼 수민에게 빠져든 재민, 거부하려 해봐도 자꾸만 재민에게로 다가가는 수민의 마음. 두 사람의 사랑은 점점 깊어져 간다.

가족, 현실, 사랑의 경계에서

고아원에서 자라 특별히 가족의 구속을 받지 않는 수민과 달리 재민의 주변에는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약혼녀가 등장한다. 사랑하는 남자가 있다는 재민의 고백에 차갑게 대하는 어머니. 엘리베이터 안에서 재민이 가족들에게 수민이 바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고백하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숨이 턱 막히는 것 같다. 또 재민의 성적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가족들의 태도는 재민과 수민이 즐겁게 사랑을 나누는 장면도 오히려 위태로워 보이게 한다.

동성애자들에게 가족은 그런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고백하는 순간, 마치 살점 깊은 곳까지 도려내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 가족과의 갈등이 빚어내는 상처다. 이 부분이 영화에서 동성애자의 현실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상처받는 사람은 가족과 나 자신일 뿐 사회는 이 문제에 대해 외면한다.

재민은 영화에서 유약한 사람으로 묘사되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가족에게 표현할 때만큼은 누구보다 용기있는 사람이 된다. 영화를 본 동성애자들은 아마 재민의 갈등을 보며 공감하고 대리만족을 느꼈을 것이다.

한편 가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는 실로 파격적인 시도라고 여겨진다. 동성애를 직접 다루면서 그것을 가족드라마의 틀로 엮었다. 즉 동성애자인 아들을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것인가의 문제는, 우리 사회가 동성애자를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것인가의 문제처럼 보였다. 드라마가 가족애를 통해 동성애자를 받아들였듯이, 사회는 인간애를 통해 그들을 수용할 수 있으리라는 메시지이다.

보편성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그들이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정해진 것만 받아들이려고 하는 우리 사회의 고질병.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다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러한 자세는 소수자들의 이야기에도 귀 기울이고,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모두를 위한 열린 사회를 창조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이제 ‘다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도 바꿔야만 할 때이다.

1267호 23면, 2022년 5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