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돌아와야 할 우리 문화유산
-잃고, 잊고 또는 숨겨진 우리 문화유산 이야기(25)

소유권 없는 반쪽 귀환

‘외규장각 의궤’, 또 다른 시작

소유권 없는 반쪽짜리 귀환

2011년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고국으로 귀환한 외규장각 의궤(도서)와 관련, “분명한 실질적 환수이며, 앞으로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와 문화재 지정 등을 결정할 것” 이라고 말했다. (<아주경제>, 2011.04.14.)

그로부터 8년이 지난 2019년, 홍영표 국회의원이 공개한 문화재청의 답변 내용을 보면 그 어떤 진전 사항도 없음을 알 수 있다.

1.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 외규장각 의궤는 ‘5년 단위 갱신 가능한 대여’ 형식으로 반환되었다.

2. 현재까지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절차가 진행된 바 없다.

3. 소유권 이전 문제 등은 ‘임대 조건’으로 협의한 바 없다

2011년 당시에는 소유권 없는 반쪽 귀환이라는 비판 여론에 실질적 환수이고 지정 절차를 이행할 것처럼 하더니, 아무런 협의나 진행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에 어떤 변명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145년 만에 귀환했지만, 미완의 환수

프랑스군이 조선을 침략한 병인양요가 일어난 해는 1886년이다. 당시 강화도 외규장각에 있던 조선왕실의 보물들이 대거 약탈당하고 불에 탔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조선왕실의궤』이다. 이 의궤는 분산 보관한 다른 것과 달리 어람용으로 그 가치가 남다르다.

조선왕실의궤

박병선 선생이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외규장각 의궤를 발견한 것은 1975년이다. 약탈한 프랑스 정부는 박병선 선생이 발견하기 전까지 중국서책으로 취급하며 창고에 처박아 두었다. 의궤의 소장 사실을 발표하자 파리도서관은 박 선생을 내쫓았다. 문화재 약탈국가로 낙인찍히는 것이 두려웠을 것이다.

약탈당한 의궤가 프랑스 도서관에 있다는 사실이 국내에 알려지자 돌려받자는 운동이 일어났다. 한국인에게 기록문화는 특별하기 때문이다. 세계 문자연구가인 제프리 샘슨 박사는 “한국은 언어학자에게 아주 중요하고 특별한 나라이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인 ‘직지’를 발명했고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했다”라고 평가했을 정도다. 더구나 조선 왕실의 중요한 행사와 건축 등을 글과 그림으로 상세하게 다룬 기록은 세계적으로 드물다.

온 국민은 의궤를 반환받자는 캠페인을 지지했고 정부도 협상을 시작했다. 1993년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은 한국을 방문하는 자리에서 『휘경원원소도감의궤』를 돌려주며 한국고속철도 도입에 프랑스 고속철도 ‘테제베’를 끼워 팔았다.

당시 금방 반환할 것처럼 하더니 미테랑 대통령은 프랑스 국민들의 반대 여론을 핑계삼아 의궤 전부를 돌려주지 않았다. 프랑스는 외국 문화재라도 자국에 들어오면 자국의 것으로 하는 법이 있어서였다. 따라서 약탈한 의궤를 돌려줄 법이 없다며 완강히 버텼다.

자존심이 상한 한국 정부도 환수를 위해 공식기구를 구성하고, 끈질기게 협상했다. 한때 등가교환 방식의 협상이 진행되어, 한국의 희귀한 고문서 목록이 프랑스 정부에 전달된 바도 있다 한다.

명백한 강탈 행위에 프랑스 정부도 반환을 미룰 수 없었다. 21세기 들어와 국제사회는 과거 불법 취득 문화재의 원상회복을 중요한 원칙으로 정하고 약탈국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합법적 소유 내력을 밝히는 것은 소장기관의 몫이 되었고, 과거 자랑이었던 문화재의 소유이력이 도덕적・윤리적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결국 2011년 대여 방식으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145년 만의 귀환이다. 의궤는 제자리를 찾아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빌려온 것에 지나지 않았다. 국보급이지만 소유권이 프랑스에 있어 지정도 못 하고 전시하려면 프랑스 허가를 받아야 한다. 언제라도 프랑스가 돌려달라면 돌려줘야 한다.

반면, 그해 일본 왕실 도서관인 궁내청 서릉부에 있던 의궤를 포함한 왕실도서 1,205권은 완전히 우리에게 반환되었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의궤가 돌아오자 프랑스가 처음으로 문화재를 돌려준 사례라고 홍보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멕시코 ‘아즈텍 달력’ 사례가 있다. 파리 국립도서관에 있던 달력이 멕시코 출신 변호사가 품에 숨겨 고국으로 가져간 것이 1982년이다. 프랑스는 도난당했다며 반환을 요청했지만, 멕시코는 과거 약탈당했을 개연성을 얘기하며 돌려주지 않았다. 문화재 약탈국인 프랑스 정부는 이 문제로 국제사회의 여론이 나빠질 것을 우려하여 임대 형식으로 멕시코 정부에 주었다가 최종적으로 소유권을 양도했다.

프랑스 정부, 과거 약탈 문화재 반환 시작

최근 국제사회는 문화재 반환 문제에서 중요한 원칙을 세우고 있다. 1998년 나치의 약탈 문화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워싱턴에서 회의가 열렸다. 이때 정한 원칙 중에 하나가 문화재의 출처 등 내력(provenance)을 소장자가 밝히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돌려달라는 사람들이 불법 증거를 입증해야 했으나 이제는 박물관이 합법적 소유권을 증명해야 한다. 국제박물관협의회(ICOM)는 원소재지 지역 주민과 협력하라는 윤리강령을 채택하고 있다. 더 나아가 문화유산을 역사적이고 정신적 관점에서 해석하고 과거 희귀 보물이나 전리품을 경제적 가치로만 보는 입장을 배격하고 있다.

미국은 이러한 국제사회의 원칙을 되도록 이행하고 있다. 2013년 호조태환권과 조선왕실어보, 국새 등의 반환은 한번 불법이면 영원한 불법이라는 원칙에서 현 소유자의 선의 취득을 인정하지 않은 사례들이다.

2017년 집권한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과거 식민지였던 서아프리카의 약탈 문화재를 돌려주고 있다. 2018년 11월 23일에는 베냉국의 문화재23점을 반환했다. 그리고 반환에 걸림돌이 되는 법을 개정하겠다고 했다. 이를 위한 법률 개정을 이행하고 있다.

프랑스에는 한국 문화재가 약 3천 점 있다. 이 중에는 ‘직지’와 고천문유물, 고문서들이 있다. 한국 정부는 명백히 약탈당한 외규장각 의궤의 완전한 소유권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 불법적으로 반출된 한국 문화재의 반환에 힘써야 한다. 이에 프랑스 정부도 반환 요구에 적극적으로 응해야 한다.

1275호 30면, 2022년 7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