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25)

슈트랄준트와 비스마어(Altstädte von Stralsund und Wismar)

교포신문사에서는 2022년 특집 기획으로 “독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매주 연재한다.

독일은 서독 시절이던 1976년 8월 23일 유네스코 조약에 비준한 이래, 48건의 문화유산과, 3건의 자연유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탈리아와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세계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한편 아픈 역사도 갖고 있는데, 2009년 현대적 교량 건설로 인해 자연 경관이 훼손됨을 이유로 드레스덴 엘베 계곡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서 제명된 것이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제명된 첫번째 사례였다.

독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등재일 기준으로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한다.


2002년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독일 북부 발트 해 연안의 비스마어와 슈트랄준트(Stralsund and Wismar) 중세 도시는 14, 15세기에 한자 동맹의 주요 교역 중심지였으며, 17, 18세기에는 스웨덴이 점령했던 독일 영지의 행정·수비 중심지로 기능하였다.

이들은 발트 해 지역 한자 동맹 도시들의 전형적 특징인 벽돌 고딕 건축 양식의 기술적·형태적 발달과 확산에 기여하였다. 이곳의 벽돌 대성당, 슈트랄준트 시청, 주거, 상업, 공예 작업(수공업) 용도의 주택은 수세기에 걸쳐 발전한 건축 양식을 보여주며 오늘날까지도 잘 보존되어 있다.

비스마어와 슈트랄준트는 13세기~15세기까지 이어진 한자 동맹의 주요 도시였으며, 17, 18세기에는 스웨덴 왕국의 주요 행정·수비 중심지였고, 아울러 스웨덴 시기의 방어 시설 발달에도 기여하였다.

비스마어와 슈트랄준트 역사 도시는 독일 북동부 발트 해 연안에 위치한다. 이들은 12세기 후반부터 13세기 전반에 걸쳐 독일이 식민지화한 슬라브족 영토를 기반으로 세워졌으며, 14세기에는 한자 동맹의 주요 교역 장소로 부상하였다. 30년 전쟁(1618~1648) 뒤 17세기부터 19세기 초반까지 스웨덴의 통치를 받았으며, 정치적 상황 변화로 한때 침체기를 겪기도 했으나 19세기 후반에는 경제가 점차 향상되었다.

도시들의 역사적 중심부는 제2차 세계대전의 폭격에서도 살아남았으며, 이들은 독일이 통일될 때까지 독일민주공화국에 속하였다.

비스마어와 슈트랄준트는 여러 유사점과 함께 상호보완적인 차이점이 있다. 비스마어는 본래 해자(垓子)에 둘러싸였으나, 뒤에 내륙 쪽 해자가 매립되었다. 비스마어 북쪽에 있던 중세 시대의 항구는 대체로 잘 보존되었으며, ‘그루베(Grube)’라는, 한때 북쪽의 항구 지역과 남동쪽의 큰 호수를 연결하던 인공 운하의 흔적도 남아 있다.

비스마어의 윤곽은 원형에 가까우며, 구도심지는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도시개발지에 둘러싸여 있다. 거리에는 아직도 중세의 흔적이 있다.

동과 서로 펼쳐진 주요 도로 뤼프슈 슈트라세(Lübsche Strasse)는 시청이 있는 중앙시장을 통과하던 옛 교역로 비아 레기아(Via Regia)를 따라 펼쳐져 있다. 비스마어의 형태와 윤곽은 역사적 흔적을 전반적으로 잘 간직하고 있다.

슈트랄준트는 타원형에 가까운 섬에 세워진 도시로, 고립된 위치 때문에 도시의 형태와 윤곽이 전체적으로 훌륭하게 보존되어 있다. 북쪽의 구시장과 남쪽의 신시장이 도시 중심지로 기능하며, 성 니콜라스 성당과 시청으로 구성된 다소 이례적인 복합 구조물이 구시장의 범위를 경계 짓는다.

비스마어와 슈트랄준트는 도시 크기와 형태를 규정하는 ‘뤼베크 건축 규약(Lübeck Building Code)’을 따랐다.

이들은 경제적 구조에서 서로 차이가 있었다. 슈트랄준트는 한자 동맹에서 장거리 무역과 중계 무역을 지향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물류 보관 공간이 많이 필요했던 반면, 비스마어는 생산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장인과 농업 종사자들의 공간이 필요했다. 그 결과 슈트랄준트의 주택은 비스마어의 것에 비해 크기가 컸지만 거주에 알맞은 박공지붕 가옥은 비스마어 쪽에 더 많았다.

이 지역의 전형적인 건축 자재는 구운 벽돌이었는데, 이는 북해와 발트 해 지역의 독특한 ‘고딕 벽돌(Gothic Brick)’ 양식이 발달하는 계기가 되었다. 벽돌은 입면도상으로 여러 가지 다른 장식적 형태를 만듦으로써 매우 정교한 건축 양식을 탄생시켰다.

이는 전성기에 한자 동맹의 경제를 주도한 슈트랄준트는 독특한 건축 형태이자 독립적 건축 언어인 ‘준트 고딕 양식(Sundische Gotik)’의 발전을 이끌었다. 성 니콜라스 성당 서쪽 맞은편에 있는 14세기의 슈트랄준트 시청은 다양한 건축적 요소를 독특하게 통합하고 있다. 구시장을 마주하고 서 있는 시청은 훌륭한 입면 벽돌 장식과 함께 준트 고딕 양식을 가장 풍부히 표현한 사례이다.

시청 건물 안마당에 17세기 후반에 지은 2층짜리 콜로네이드 같은 중요한 바로크적 요소도 있다. 르네상스 시대와 후기 스웨덴 시기에 걸쳐 계속해서 도시 건축물은 증축되었다. 이 건축물들은 르네상스, 바로크, 신고전주의 건축 양식을 반영함으로써 운치 있는 도시 경관을 이루지만, 여전히 뤼베크 건축 규약 기반의 중세적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예를 들면 화려한 비스마어의 왕궁 정원 퓌어슈텐호프(Fürstenhof)가 있다.

1817년~1819년에는 고전주의 양식의 새로운 비스마어 시청이 예전의 중세적 양식의 시청 요소를 통합하며 건축되었다.

1275호 31면, 2022년 7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