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27)

무스카우어 공원 / 무자코프스키 공원(Muskauer Park /Park Muzakowski)

교포신문사에서는 2022년 특집 기획으로 “독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매주 연재한다.

독일은 서독 시절이던 1976년 8월 23일 유네스코 조약에 비준한 이래, 48건의 문화유산과, 3건의 자연유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탈리아와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세계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한편 아픈 역사도 갖고 있는데, 2009년 현대적 교량 건설로 인해 자연 경관이 훼손됨을 이유로 드레스덴 엘베 계곡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서 제명된 것이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제명된 첫번째 사례였다.

독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등재일 기준으로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한다.


2004년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무스카우어 공원은 폴란드와 독일 국경 지역을 가로질러 흐르는 나이세 강(Neiße) 주변의 넓이 559.9㏊에 달하는 지역으로, 헤르만 폰 퓌클러-무스카우(Hermann von Pückler-Muskau) 공작이 1815년~1844년에 조성하였다. 주변의 경작지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이 공원은 새로운 조경 디자인 설계 법을 개척하면서 유럽과 미국의 조경 건축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공원은 ‘초목(草木)이 있는 풍경’이라는 주제 아래 설계되어, 고전적 조경이라든지 낙원 또는 잃어버린 이상향을 재현하기보다는 지역 특유의 초목을 이용하여 이미 존재하는 경치가 가진 내재적 특징을 향상시키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 통합적 조경은 개발 구역의 틀을 이루면서 도시 공원을 형성한 녹지로를 따라 무스카우(Muskau) 시로 확장되었다. 따라서 무스카우 시 자체도 이러한 유토피아적 조경 설계의 한 요소가 되었다. 재건축된 성과 다리, 수목원 등도 이 공원이 지닌 또 하나의 특징이다.

역사적 배경

퓌클러 공작은 1811년에 가문의 땅을 물려받았다. 그는 영국을 여행하던 중 영국에서 유행하던 풍경식 정원 설계에 영감을 받아 가문의 땅을 넓은 조경 공원으로 바꾸는 데 착수하였다. 그는 먼저 성의 요새 시설과 해자(垓字)를 없앤 다음 성의 공원을 관통하는 인공 수로를 만들었다. 수로는 성의 호수로 확장되면서 1819년에 완공되었다. 그 뒤 5년간 성을 개축하고, 맥아 제조소와 오렌지 재배실을 온실로 바꾸었으며, 다리 2개와 고딕 양식의 예배당, 영국식 오두막 등을 만들었다.

1823년에 만들기 시작한 온천공원(Spa Park)은 1840년에 완공하였으며, 1826년에는 강 위로 작은 다리를 만들었다. 1829년이 지나자 퓌클러는 산의 공원 조경 변경에 착수하였고, 성의 농장에 온실을 만들었다. 재정적인 문제로 땅을 팔기 1년 전인 1844년에는 양조장을 오렌지 재배실로 개조하였다.

퓌클러의 비전을 이어받은 페졸드(Petzold)는 무스카우 시를 공원으로 둘러싸고자 한 퓌클러의 생각을 실현하고 여러 개의 길과 다리, 수목원, 로어 산 공원 등을 만들었다. 제2차 세계대전은 공원의 극단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이 지역은 2차 대전의 결정적인 마지막 전투 현장이 되었고, 성 2채와 다리 전부를 포함하여 무스카우 시 건물 ⅔가 파괴되었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나이세 강이 독일과 폴란드 국경이 되었다.

무스카우어 공원

무스카우어 공원은 새로운 도시 조경설계법의 선구로 ‘조경술(’발달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 유적은 19세기 중반 유럽의 선구적 명사인 헤르만 폰 퓌클러무스카우 공작이 설계한 드넓은 조경 공원의 핵심 지역으로, 무스카우어 성 주변에 있다. 공원은 무스카우 시를 둘러싸면서 주위 경작지를 향해 넓게 확장된다. 전체 면적은 559.9㏊이며, 그중 348㏊는 폴란드에, 211.9㏊는 독일에 속한다.

인간과 조경의 관계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접근법이 바로 이 공원에서 시작되었다. 공원의 설계는 고전적 조경이라든가 낙원을 표현하거나 잃어버린 이상향 따위를 표방하는 대신 ‘초목이 있는 풍경’이라는 주제 아래 이미 존재하는 조경의 구조에 나무, 목초지, 수로 등을 구성하여 자연과 융화를 도모함으로써 공원이 지닌 내재적 특성을 향상시켰다.

무스카우어 공원의 구조적 초점은 프로이센의 건축가 쉰켈(Schinkel)의 설계에 따라 퓌클러-무스카우가 1860년대에 재건축한 궁전에 있었다. 이 궁전을 중심에 두고 길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며 네트워크를 이루었는데, 길에는 이상적인 풍경을 감상하기에 좋은 지형적인 ‘최고의 포인트’들이 있다. 또 각각의 이상적 감상 포인트는 서로 복잡하게 얽히며 연결된 전체 경치의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일부이다.

퓌클러는 인공적 요소와 자연적 요소, 즉 다리, 수로, 길, 장식적 건물, 숲, 수목원, 흩어진 나무와 더불어 계단식 언덕, 바위산, 나이세 강 계곡 같은 고유한 지형적 특성을 결합하였다. 그는 이 모두를 소박함과 광대함을 특징으로 하는 뛰어나고 아름다운 하나의 시각적 풍경으로 융합하였다. 따라서 이 공원의 조경은 미학적으로도 호평 받을 구조를 갖추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과 폴란드 사이의 국경이 새롭게 변경되면서 공원이 두 부분으로 나뉘고 독일 부분의 관리 책임이 동독 당국으로 넘어가면서 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공원을 처음 조성했던 퓌클러-무스카우는 이미 세상을 떠난 지 오래된 인물이기는 하나 생존 당시에 막대한 부를 축적한 부농이었고 외국에 드나들며 견문을 넓힌 국제적 인물이었던 탓에 동독에서는 반동분자로 분류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965년 쿠르트 쿠를란트(Kurt Kurland)가 공원의 관리 책임자가 되면서 자연환경과 건축유물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해 공원이 본래 가지고 있던 특징을 되살려 보존하기 시작했다. 동시대에 폴란드에서는 이 공원을 자연보호 구역으로 지정하여 1990년대까지 잘 보호하였으며 오늘날 세계문화유산을 함께 나누어 가진 독일과 폴란드는 공원을 공동 보수, 관리하는 데 있어 매우 모범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1277호 31면, 2022년 8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