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본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II
다양함과 개별성이 강조되는 시대를 살면서도, 대개의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를 불편하게 하고, 대부분은 우리에게 의식되지도 못한 채 외면당하고 있는데, 이런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들이 있다.
장애인과 이주 노동자들의 삶을 영화와 함께 살펴본 지난 것에 이어, 문화사업단에서는 성소수자 문제와 종교와 양심의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소수자들의 삶을 표현한 영화를 소개하고, 이들의 삶을 돌아보도록 한다. 문화세상 87
양심적 병역거부: 양심의 자유와 안보의 특수성 사이에서(2)
서구에서 일찍이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법제화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기독교의 평화주의 사상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우리나라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대체복무제도의 도입에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한국의 주류 기독교 세력이다.
이웃사랑을 내세우는 한국 기독교가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보이고 있는 심한 적대감의 바탕에는 ‘이단’ 확산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다. 대체복무제도를 인정하면 젊은이들이 잘못된 교리를 가진 이단으로 몰려들어 이단의 확산에 이를 수 있고, 이단의 확산으로 인해 나라 전체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질게 분명하다는 것이다.
양심의 자유는 인격적으로 완성된 고상한 마음의 자유가 아니고, 있는 그대로의 마음의 자유이다. 평화를 사랑하는 기독교도로서 병역을 거부하는 마음도 그 자체로 인정받고 존중되어야 한다. 따라서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을 범죄자로 만드는 우리나라 병역법은 다른 것을 같게 만드는 의미에서 고쳐져야 할 차별법이다.
병역에 대해 다른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 대체복무제도를 위시해서 다르게 대응하는 방법은 이미 여러 나라들이 수백 년 전부터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가 우리와 다른 사람들에게 숨 쉴 공간을 마련해 주지 않고 그들을 전체 구조 속으로 밀쳐 넣으려고만 하는 현 상황은 타개되는 것이 옳다.
선택 강요받는 소수자들의 고통: 〈얼음강, 민용근 감독 2013〉
얼음강이 있다. 때론 얼음이 되고, 때론 강이 된다. 세상엔 이런 ‘경계의 모호함’이 흔하지만, 현실 속 제도들은 ‘두 갈래 길’에서 선택을 강요한다. 이 때문에 고통받는 소수자들이 적지 않다.
2013년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 섹션에 초청된 옴니버스 영화 <어떤 시선>은 ‘차이’를 인정받지 못한 약자들을 소재로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작한 영화다. 세 편의 옴니버스 가운데 민용근 감독이 연출한 <얼음강>은 특히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첨예한 소재를 다뤘다. 특정 종교의 ‘양심적 병역 거부’를 전면적으로 내세운 극영화는 <얼음강>이 유일하다.
입대를 앞둔 여호와의 증인 신자가 어머니와 이별하는 과정을 담았다. 집총을 거부하는 교리 때문에 군대 대신 감옥을 가는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를 <얼음강>은 눈물의 멜로드라마로 풀어낸다. 아들을 감옥에 보내지 않으려 이혼도 불사했던 어머니는 도저히 아들의 선택을 받아들일 수 없다. <혜화, 동>의 감독다운 섬세한 연출이 돋보이는 단편이다.
언제나 자상한 아들인 선재(김동현)는 입대를 앞두고 처음으로 엄마(길해연)에게 비밀이 생겼다. 총을 들 수 없다는 종교적 신념을 따르기로 결심한 것. 그러나 선재를 좋아하는 연주가 집 앞에서 기웃거리는 것을 본 엄마는 흐뭇한 마음에 아들지갑에 용돈을 몰래 넣어주려다 입대 일이 하루 남은 영장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아들 선재가 입대를 거부하기로 마음을 굳힌 것을 알게 된다.
이미 남편과 큰 아들이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입대를 거부하고 감옥에 다녀왔고, 아이를 지키려고 다른 가족과 인연도 끊었는데 선재마저 “총을 들 수 없다”며 병역거부를 선택한 것이다. 선재는 “내가 선택한 삶에서 도망가고 싶지 않다”고 하지만 엄마는 “그게 왜 감옥으로 가는 길이어야 하냐”며 울음을 터뜨린다.
장편데뷔작 <혜화, 동>을 통해 팬덤이 생길 만큼 섬세하고도 명민한 연출이 돋보이는 민용근 감독은 <얼음강>에서도 역시 예민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보통의 엄마와 아들의 관계에 집중하며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민용근 감독 또한 ‘왜 특정 종교를 보호해주어야 하는가’라는 선입견 때문에 처음에는 평화적인 이유로 집총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조사를 시작하고 보니 우리나라에서 종교적인 이유를 빼고 병역거부의역사를 예기할 수 없었고, 직접 접해보면서 이 역시 편견에서 비롯된 문제임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위성을 내세우기보다 우리와 똑같은 삶을 사는 이웃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감독의 연출 의도처럼 <얼음강>은 어떤 신념을 가진 아들과 엄마의 3일간의 짧은 일상을 통해 주제를 모두의 일상으로 확장시키며,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관계의 정서가 밀도 깊게 묘사되어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민 감독은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는 ‘의무 군복무 제도’를 가진 다른 나라에서는 이미 합리적인 대안이 나와 정착된 사안인데, 우리는 그런 논의 자체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소수자의 인권 문제로 접근했다”고 말했다. 평화적, 종교적 병역거부자들은 ‘신념을 버리지 않는다고 왜 군대와 감옥 외에 선택의 길이 없냐’고 항변하고, 다른 쪽에서는 ‘소수자들 탓에 희생되는 다수’를 말한다.
민 감독 역시 ‘당연히 군대가는 건데 왜 감옥을 택했지? 나라는 누가 지키지?’ 라는 지점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국내에 종교적, 평화적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로 수감된 인원은 모두 1만7000명. 해마다 700여명이 수감된다. 유엔인권이사회에선 한국 정부에 대체복무제를 권고하고 있다. *민 감독은 어느 날 얼어붙은 한강에 던진 돌이 튕겨져 나오는 모습에서, 소수자에 대한 사회의 편견이 단단하고 차가운 ‘얼음강’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10월 24일 국내 개봉을 앞두고 “워낙 예민한 문제여서 균형 감각을 잃지 않는 게 중요했어요. 관객들이 ‘사람에 관한’ 문제라는 생각으로 선입견 없이 백지 같은 느낌으로 영화를 받아들여 줬으면 좋겠습니다.”라는 희망을 전했다.
1277호 23면, 2022년 8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