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미의 절정, 발레 (4)
이번 호에는 세계 3대 발레작품인 지젤,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살펴보도록 한다.
《지젤》
《지젤》 아돌프 아당 의 음악과, 테오필 코티에와 쥘-앙리 베르누아 드 생 조르주의 공동 각본, 장 코랄리(Jean Coralli)와 쥘 페로의 공동 안무로 창작된 발레이다. 1841년 6월 28일에 빠리 오페라 극장에서 초연된 이후로 낭만 발레의 대명사로 일컬어진다.
이 발레의 기원은 당대 최고 발레리나의 한 사람으로 꼽혔던 카를로타 그리지(Carlotta Grisi)를 향한 고띠에의 찬미에서 출발하였다. 그리지의 춤을 보고 그녀를 숭배하게 된 고띠에는 그녀를 위하여 새로운 역할을 구상하던 중, 하인리히 하이네가 쓴 한 시구에서 빌리(Wili)라는 처녀 귀신들의 이야기를 읽고 영감을 받게 된다. 그는 베르누아 생-조르주와 협동하여 이 독일 전설을 주제로 한 발레 각본을 구상하였다.
초연시의 지젤 역은 당연히 그리지에게 돌아갔으며, 안무는 공식적으로는 코랄리가 담당하기로 하였으나, 그리지가 자신의 연인이었던 뻬로를 강력하게 추천함으로써, 이 작품 내에서 그녀가 추는 모든 독무는 뻬로가 안무하게 되었다.
초연은 대성공이었으며, 그리지는 마리 탈리오니의 강력한 적수로 떠올랐고, 《지젤》은 유럽 각국의 발레단에 수출이 되었으나, 정작 빠리에서는 곧 인기를 잃었다. 사실 《지젤》이 오늘날까지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은 러시아의 황실 발레단에서 이 작품을 원형에 가깝게 보존한 덕이다. 그리하여 《지젤》은 빠리를 비롯한 서유럽에 1910년 디아길레프에 의해 재수입되었다.
이후 지젤의 역할은 모든 여성 무용가들이 꿈꾸는 역할이 되었고, 어느 정도의 기량과 경력을 쌓은 발레리나라면 반드시 거쳐가야만 하는 관문이 되었다. 비록 고전 시대의 발레만큼 화려하고 어려운 기교를 요구하지는 않지만, 1막과 2막에서 매우 대조적인 인물인 지젤은 무용 기교 이상의, 즉 다양한 감성을 표현할 줄 아는 배우로서의 능력을 가늠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백조의 호수》
차이코프스키의 우아하면서도 비극적 ‘백조의 호수’는 대중에게 익숙한 음악이지만, 당시에는 난해한 작품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 작품으로 차이코프스키는 단순히 춤곡 반주에 불과했던 발레음악의 위치를 격상시킨 한편, 오래도록 관객의 사랑을 받는 작품의 작곡자로 기억되었다.
백조의 호수는 러시아의 민담을 바탕으로 한다. 여인으로 변해 호수에서 목욕하는 백조의 옷을 어느 사냥꾼이 숨겨 결혼했으나, 몇 년 후에 백조는 옷을 찾아 날아갔다는 이야기이다. 구전문학이 그러하듯이, 우리나라의 선녀와 나무꾼 민담과 흡사하다.
백조의 다양한 감정을 무용수들의 손짓과 몸동작을 통해 익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백조가 깃털을 정리하기 위해 목을 돌리는 움직임, 양쪽으로 팔을 굽히며 날개를 접는 동작, 물방울을 털어내는 다리의 떨림 등 새의 동작을 딴 표현이 관객을 홀린다. 또한 백조는 말 그대로 ‘백조’이기 때문에 모든 동작이 대부분 등 뒤에서 이루어진다는 것 또한 특징이다.
백조의 호수는 ‘발레’하면 흔히 떠올리는 작품인 만큼 모르는 이가 없다. 그러나 그만큼 무용수에게는 어려운 작품이다. 순수한 오데트와 요염한 오딜이라는 두 개의 상반되는 역할을 한 명의 무용수가 온전히 소화해내야 하기에 이 작품은 무용수의 ‘프리마 발레리나’의 입문작으로 제격이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
러시아 발레의 개혁을 위해서는 발레 음악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브세볼로즈스키는 발레의 반주 역할에만 머물러있던 안이한 발레 음악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당시 극장의 종신 작곡가인 레옹 밍쿠스(돈키호테의 작곡가인 루드비히 밍쿠스와는 다른 인물)를 두고도 차이코프스키에게 이 작품의 작곡을 맡긴다.
1877년 레이징거의 안무로 초연된 《백조의 호수》 실패가 자신의 음악 때문이라고 생각한 차이코프스키는 13년간이나 발레를 멀리하다가 이 작품만큼은 예외로 매력을 느껴 대단한 열정을 기울여 작곡을 시작한다. 성 전체가 잠 속에 잠겨있는 일백년이라는 시간을 한 작품 속에 놓고, 극적인 전개에 다채로움도 함께 지닌, 풍요롭고 장대한 이 음악 시극은 1888년 12월에 작곡되기 시작해 1889년 5월에 완성되게 된다. 이렇게 모두 30곡에 달하는 대작이 탄생되었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 서막은 거의 한 개의 독립된 막과 같은 정도의 분량과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춤은 공주의 탄생을 축하하는 시녀들의 아다지오와 여섯명의 요정들의 춤이다. 발레에는 전통적으로 남자가 여자역을 맡는 배역이 몇 개 있는데 이 카라보스도 그 중의 하나이다.
카라보스는 남자가 여장을 하고 맡는 것이 일반화 되어있다. 1막에서 공주의 열여섯번째 생일에 청혼하는 네명의 왕자들과 추는 로즈 아다지오는 한 다리로 지탱하면서 밸런스를 장시간 잡는 아주 어려운 부분이다.
2막에서는 왕자와 오로라 공주의 환상의 파드되와 라일락 요정의 춤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로얄보다는 볼쇼이의 버젼이 더 라일락 요정의 춤에 비중을 주고 있고 성격이 뚜렷하다. 이유는 초연 때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안무한 프티파가 테크닉이 떨어지지만 연기력이 뛰어난 자기 딸 마리아를 위해 라일락 요정의 캐릭터에 어려운 테크닉을 되도록 넣지 않고 연극적인 개성이 강하게 안무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발레리나의 내면세계 표현이 가장 어려운 작품이 《지젤이라면 《잠자 는 숲속의 미녀는 체력적으로 가장 어려운 작품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리고 동작 하나하나가 아카데믹한 고전발레의 전형적인 동작이기 때문에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보면 발레리나의 기량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고전발레의 금자탑으로, 발레리나의 기량을 시험할 수 있는 아카데믹 발레의 전형이자, 고전발레의 원형이 순수하게 살아있는 보석으로 평가받고 있다.
1281호 23면, 2022년 9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