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문화사업단의 문화이야기 / 110

그림 속의 그리스 신화 이야기(1)

유럽 문화를 관통하고 있는 두 가지 줄기 헬레니즘과 유대이즘, 즉 고대 그리스 신화는 성경과 함께 서양의 문화를 읽어내는 코드이자 일반인들에게 서양문화의 모태를 설명해 주고 있는 교과서라 할 수가 있다.
이렇듯 서양문화의 원류인 그리스 신화는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한계를 훌쩍 뛰어넘는 상상의 세계로, 시공을 초월하는 삶의 보편적 진리와 인간의 희로애락을 촘촘하게 엮어나간 대서사시이다.
이는 유럽인의 정신적 바탕을 이루는 서양 문화의 원천으로 문학과 미술, 연극 등 수많은 예술작품의 창작 소재로 사용되어 왔다.
문화이야기에서는 지난해 “제우스의 변신‘이라는 주제로 제우스의 여인들을 묘사한 작품들을 소개한 바 있다.
이번 연재에서는 <안티오페>, <디오니소스와 아리아드네>, <케팔로스와 프로크리스>, <가니메데스>를 주제로 신화와 함께 이들이 후대 미술작품에는 어떻게 나타나는 지를 살펴본다.


제우스와 안티오페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제우스가 안티오페의 미모에 반해 사티로스로 변장하여 안티오페와 관계를 맺어 임신을 시켰다고 한다.

한편 안티오페는 어린 외손자 라브다코스를 대신하여 테베를 섭정하던 니크테우스의 딸인데, 처녀의 몸으로 임신을 한 아티오페는 아버지의 노여움이 두려워 시키온이라는 곳으로 도망을 쳤고, 그곳에서 시키온의 왕인 에포페우스와 결혼을 하였다.

그러나 안티오페의 삶은 불행의 연속이었다.

니크테우스는 딸을 붙잡기 위하여 시키온으로 가서 에포페우스와 싸우다 죽었다.(혹은 수치심에 자살하였다고도 한다.) 그는 죽기 전에 형제인 리코스에게 에포페우스를 죽이고 안티오페를 처벌하도록 당부하였고, 이에 리코스는 시키온을 공격하여 에포페우스를 죽이고 안티오페를 붙잡았다. 붙잡혀 테베로 가던 도중에 안티오페는 키타이론산에서 쌍둥이 아들인 암피온과 제토스를 낳았지만 어쩔 수 없어 아이들을 버렸다.

테베로 붙잡혀 온 안티오페는 리코스의 아내인 디르케의 노예가 되어 학대받고 감옥에 갇혀 지내다가 탈출하여 키타이론산으로 도망을 쳤고, 여기서 어머니를 만나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암피온과 제토스는 리코스와 디르케를 죽여 복수하였다. 한 마디로 안티오페는 뛰어난 미모 때문에 파란만장한 삶을 산 여인이라 할 수 있다.

헨드릭 골치우스: 제우스와 안티오페

헨드릭 골치우스(Hendrick Goltzius 1558~1617)는 1600년부터 17년간 유화를 그렸는데, 현재까지 남아 있는 작품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 가운데서 <제우스와 안티오페>는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

헨드릭 골치우스는 정교한 세밀화로 유명한 네덜란드의 판화가였는데, 당시 그는 뛰어난 판화를 많이 완성하여 뒤러도 따를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1590년에서 1591년 사이에 이탈리아에 머물렀는데, 이때 이탈리아 미켈란젤로와 같은 고전주의 작품에 깊은 영향을 받았고, 이런 영향으로 그는 1600년부터 판화를 포기하고 유화를 시작하여 50여 점의 작품을 그렸다.

이제 <제우스와 안티오페>그림을 보도록 한다.

벌거벗은 채 잠들어 있는 한 여자 곁으로 반인반수의 한 남자가 접근해 오고 있다. 그녀를 주시하는 남자의 입가에는 엉큼한 미소가 가득하고, 팔과 등은 잔뜩 긴장되어 있어, 지금 당장 그녀를 덮칠 것만 같은 모습니다. 이 그림 속의 여자는 안티오페이며, 남자 는 사티로스로 변장한 제우스이다.

사티로스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시종인데, 얼굴은 사람 모습이지만, 머리에 뿔이 나 있고, 하반신은 염소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에서도 사티로스로 변장한 제우스를 보면 다리가 온통 털투성이인 것을 볼 수 있다.

그림 왼쪽 전면에 있는 포도와 함께 주피터의 오른손에 쥐고 있는 사과와 서양 배는 출산을 상징한다. 그 리고 제우스 무릎 근처에 보이는 뒤집힌 슬리퍼와 엎어져 있는 그릇은 여자의 성기를 상징한다. 이것만 보아도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이 된다.

바르톨로메우스 슈프랑거: 제우스와 안티오페

바르톨로메우스 슈프랑거(Bartholomaeus Spranger 1546-1611)는 문화예술의 수호자로 불렸던 신성로마제국 루돌프2세의 궁정화가들 중 한 사람이었다. 황제는 특히 그리스로마신화의 원전 격인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를 선호했는데, 슈프랑거는 그의 이런 욕구를 가장 잘 충족시켜 주었다고 전해진다.

그의 작품 ‘제우스와 안티오페’는 제우스가 반인반수(半人半 獸) 사티로스로 변하여 아름다운 테베의 왕녀인 안티오페에게 접근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어떻게 제우스임을 확신하냐고 묻고 싶다면, 안티오페의 늘씬한 다리 곁에 자리잡은 제우스의 상징동물, 독수리를 보시기 바란다.

본래 신화 속 이야기에는 제우스가 잠들어 있던 안티오페에게 다가가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화가는 두 주인공이 적극적인 포즈를 취하는 것으로 변형해 오감을 자극하는 비주얼을 창조했다. 아마도 작품을 주문한 황제의 취향을 맞추어 주기 위한 것으로 짐작된다. 서로를 어루만지며 뒤엉킨 남녀의 육체는 보기만 해도 더운 열기가 느껴질 정도로 후끈하다. 휘어지고 뒤틀린 신체의 표현은 바로크미술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안티오페는 이외에도, 코레죠,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앙투완 와토, 안토니 반 다이크 등 르네상스 이후 대가들이 즐겨 그리는 작품 소재가 되었다.

1297호 23면, 2023년 1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