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50)

노이슈반슈타인성 (Schloß Neuschwanstein)

독일은 서독 시절이던 1976년 8월 23일 유네스코 조약에 비준한 이래, 48건의 문화유산과, 3건의 자연유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탈리아와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세계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교포신문사에서는 2022년 특집 기획으로 “독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문화유산을 매 주 연재한 바 있다.
2023년에는 2022년 기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신청된 8곳과 신청 후 자진 탈퇴, 또는 유네스코에 의해 등재거부된 문화유산을 살펴보도록 한다. -편집실

노이슈반슈타인성((Schloß Neuschwanstein)은 바이에른의 왕 루트비히 2세가 지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이다. 바이에른주 퓌센(Füssen) 근교의 호엔슈방가우(Hohenschwangau)에 위치한다. 루트비히 2세가 음악가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아 지었으며, 필요한 자금은 국고에서 충당하지 않고 대부분 왕실 자금으로 충당하였다.

노이슈반슈타인성은 1886년에 루트비히 2세가 죽기 전까지 왕의 궁전으로 쓰일 용도로 지어졌으며, 그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대중들에게 개방되었다. 매년 130만 명에 달하는 관광객들이 이 성을 찾아오며, 특히 여름에는 거의 매일 6,000여 명이 이 성을 관람한다.

위치

노이슈반슈타인성은 독일 바이에른 주의 남서쪽 경계에 위치한 산맥 위, 약 고도 800m에 위치한다. 주변에는 오스트리아 국경 내에 소재하는 알프스 산맥이 남쪽에서 뻗어 올라오고, 북쪽에서는 그와 대조적으로 널찍한 평원이 위치하여 서로 대비되는 광경을 연출한다.

중세 시대에는 이 곳에 총 3개의 성채들이 있어, 산맥 아래의 마을들을 굽어보았다. 그 세 성채들 중 하나의 이름은 슈반슈타인 성이었는데, 1832년 루트비히 2세의 부왕이었던 막시밀리안 2세가 이 폐허에 가까운 성채를 사들여 네오 고딕 양식의 성으로 재건축하였고, 호엔슈방가우 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공사는 1837년에 끝났고, 호엔슈방가우 성은 왕실의 여름용 궁정으로 쓰였다. 어린 나이의 루트비히 2세는 그의 유년기의 대부분을 이 곳에서 보내게 된다.

역사

막시밀리안 2세는 ‘백조의 성’이라 불리던 폐성 호엔슈방가우 성을 사들여 고딕 양식으로 개조, 재건축하였고, 바이에른 왕 루트비히 2세가 이곳에서 자랐다. 때문에 루트비히 2세는 어렸을 적부터 건축에 대해 깊은 관심과 열정을 갖고 있었다. 또, 그는 음악가 리하르트 바그너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바그너는 게르만 민족의 신화를 토대로 한 오페라 작품들을 썼고, 이 때문에 루트비히는 게르만 민족의 신화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호엔슈방가우 성은 게르만 민족의 신화를 모두 담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하였고, 이에 걸맞은 새로운 건축물들을 건설해야겠다고 다짐하였다.

이 기획은 1862년 그가 18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르게 되면서 실행에 옮겨지게 되었다. 그는 노이슈반슈타인성을 건설하기 전 뮌헨 왕궁의 통로에 바그너가 쓴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에 등장하는 장면을 벽화로 그렸다. 그리고 자신의 궁전을 바로크 양식으로 개조하고, 치엠 호수에 베르사유 궁전을 본딴 궁전을 짓게 하는 등 자신의 생각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이 때 그는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던 바그너를 다시 불러 자신에 구상에 가담시켰다. 그러나 바그너로 인해 국고가 낭비되자, 국민들의 반발을 사게 되었고, 결국 루트비히 2세는 바그너를 축출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일로 루트비히 2세는 의욕상실에 빠졌고, 퇴위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새로운 구상을 떠올리면서 다시 생기를 찾았다. 그는 왕위에 오르기 전 바르트부르크 성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는데, 이와 같은 성을 호엔슈방가우 성 맞은편에 지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특징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큰 탑과 거대한 기둥, 두꺼운 벽, 둥근 아치 등 중세 유럽 성에서나 볼 수 있었던 로마네스크 양식을 하고 있지만 지어진 당시로서는 첨단의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아 왔다. 예컨대 성의 모든 층에는 수세식 화장실이 있었고 성 전체를 순환하는 공기 난방 시스템도 갖추고 있었다. 또 용수는 성에서 200m 높이에 위치한 샘에서 끌어오는 식이었다.

중세에 지어진 성들과는 달리 군사적인 목적은 전혀 없고, 오직 루트비히 2세가 바그너와 그의 오페라인 로엔그린에 푹 빠졌기에 취미로 지은 성이다. 노이슈반슈타인 성이 지어진 시기는 이미 증기선이 발명되고 독일 전역에 철도가 깔린 지 수십 년 뒤였다.

18세기부터 많은 성들이 저택으로 개조되어 그 목적이 전환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보통의 궁전과 달리 산 속에 이 정도 규모의 거대한 건축물을 단지 사치스러운 궁전이나 저택으로 사용하고자 건설하는 것은 여러모로 무리수였다.

사실 루트비히 2세는 이 성 외에도 젊은 시절부터 많은 건축에 매달렸고, 생전에 성을 총 다섯 채 건축하려 했다. 린더호프 성은 완성했고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1/3만 완성했고 헤렌 킴제성은 절반만 완성하는 데 그쳤다. 나머지 비잔틴/오리엔탈 양식 성은 계획만 세우고 착공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고딕 양식과 유사한 로마네스크 양식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1869년 건설되기 시작했다. 애초 3년이면 다 지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루트비히 2세가 워낙 완벽함을 추구한 탓에 그가 죽은 1886년에도 성 전체가 완성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주변 자연 경관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모습 덕분에 독일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성이자 유럽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 중 하나로 꼽힌다. 월트 디즈니가 디즈니랜드의 신데렐라 성을 구상할 때 모델로 삼은 성으로도 유명하다.

1300호 31면, 2023년 1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