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전쟁 – 전쟁과 약탈 그리고 회복 (22)

냉전의 서막 ➁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가 약탈한 문화재와 예술품이 속속 원래의 합법적 소유자나 그 상속인들을 찾아간다. 특히 반환 문제가 제기된 예술품과 문화재 소장자가 그 취득 경위와 역대 소장자의 획득 정당성을 입증하라는 ‘워싱턴 원칙’ 합의 이후 나치 시대 약탈품의 회복이 가속화하고 있다.
약탈 문화재 환수는 유물이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이동하는 단순한 물리적 위치 변경이나 한 나라의 컬렉션 부족 부분을 채운다는 문화적 자존심 높이기 차원을 넘어서는 문제다. 창조자들이 만든, 있어야 할 곳으로 되돌아가는 제자리 찾기라는 도덕적 당위성뿐만 아니라 약탈에 스며든 역사적 핏빛 폭력과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어루만지고 쓰다듬는 힐링의 길이다.

■ 회복의 ‘판도라 상자’ 드레스덴 카탈로그 발견

2005년 독일과 러시아는 문화재와 예술품에 관한 협업을 강화하기 위해 ‘독일-러시아 문화 대화’를 출범시켰다. 이 조직에는 독일 미술관과 박물관 80여 곳과 푸시킨, 에르미타주와 모스크바 국가 기록물 보관소도 참여해 전쟁으로 파손되거나 위치를 이탈한 도서와 예술품을 복원하는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실제로 이런 작업에는 상당한 과학 지식이 필요하다.

작품의 조각들이 러시아와 독일 전역의 미술관으로 흩어져 있어 전문가들이 작품을 파악해 외국 파트너들과 협업을 통해 적합하게 복원하고 출처를 밝히는 식으로 작업이 진행된다. 현재까지 이들은 훼손된 작품 1만 점 이상을 확인했고, 복원한 작품은 베를린 보데(Bode) 미술관이 소장한 비잔틴 작품과 조각품 수백 점을 포함해 상당수에 이른다.

출처가 확인된 복원 작품은 개인 소장가들에게 반환하기도 했고, 러시아에서 처음으로 크라나흐 전시회가 열리는 등 협업 전시회도 마련했다. 연구자와 역사학자들이 기록물의 파편들을 재조합하면서 미래를 짜고 있다.

그러나 국가 차원의 협상은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예컨대 2013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전시회 개막식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참석해 연설하기로 한 일정이 갑자기 취소되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대통령도 참석하는 개막 행사에서 메르켈 총리가 연설에서 작품 반환을 요구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러시아는 연설을 취소시켰다.

그 후로 반환 문제는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문제는 국가가 해결해야 한다는 틀에서 벗어나 비정부 문화 외교를 통해 해결하자는 흐름이 대세라고 브레멘대학 동유럽학 연구센터 소장인 볼프강 아이히베데(Wolfgang Eichwede) 교수는 지적한다. 그는 해결책으로 러시아 미술관은 그곳 소장품에 대해 더욱 투명해야 하고, 독일 정부는 이를북돋우기 위해 공동 전시회 자금을 더 많이 지원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최근 푸시킨 미술관에서 그렐카 연구팀은 이른바 온전한 상태의 ‘드레스덴 카탈로그(Dresdner catalogue)’를 찾아냈다.

이는 히틀러의 총통미술관에 전시하고자 계획했던 예술품 1만 점의 색인카드로, 약탈자들이 작성해 히틀러에게 보고한 앨범 형식의 자료다. 여기에는 작품 사진과 작가, 출처와 약

탈 일시 등이 전쟁 기간임에도 꼼꼼하게 기록되어 있다. 상당수는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의 소유물로, 출처에 관한 새로운 정보들을 제공할 수 있어 이목을 끈다. 이런 비밀을 품은 드레스드너 카탈로그를 러시아 정부가 공개하면 그동안 주인을 찾지 못한 수많은 작품의 회복을 위한 역사적이고 획기적인 ‘판도라 상자’가 될것으로 기대한다.

■ 소련 정부, 문화재 반환을 외교적 도구로 삼아

독일과 러시아는 정부 차원의 반환 문제는 난관에 부딪쳤지만, 개인 미술관과 개인들은 잃어버린 예술품을 맞바꾸거나 되찾아오곤 했다. 2001년 푸틴 대통령과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가 만났을 당시 평범한 러시아인 티무르 티메르불라토프는 파디우스 크리스토퍼가 그린 그림 한 점을 선의로 반환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드레스덴 갤러리에 있었던 이 작품은 전쟁 동안에 사라졌다가 1992년 그가 구입한 것이다. 드레스덴 그림들은 트로피 여단뿐 아니라 개인들에게 도난당했을 가능성도 강력히 시사한다.

드레스덴 미술관은 또 러시아 국민의 선의로 그림 세 점을 돌려받은 적도 있다. 17세기 중반 화가 피에테르 물리에르의 ‘해변가에서’, 17세기 후반 게리트 룬덴스의 ‘무릎 위의 소녀’, 막스 슬레포그트의 ‘붉은 수염의 기도자’였다. 이런 반환은 개인의 친절과 선의에 따른 것이라 한계가 뚜렷하다. 문화재와 예술품의 회복을 위해서는 두 나라의 외교적 노력으로 상호 이해를 높일 필요가 있다.

2000년 브레멘 미술관은 러시아 예카테리나 궁전과 협상했다. 100점 이상의 그림을 피렌체 모자이크 한 장과 호박방에서 나온 18세기 밤나무 서랍장 한 점과 맞바꾸었다. 그해 우크라이나가 베를린 음악 아카데미에 바흐 가문의 기록물 창고에서 나온 악보 원곡을 포함한 기록물들을 돌려주었다.

또 지난 10여 년간 독일과 오스트리아 도서관은 3만권 안팎의 도서를 원래 소유자나 그 후손들에게 반환하거나 교환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우크라이나 키예프의 미하일롭스키 즐라토베르히 성당(Mikhailovskij Zlatoverhij Cathedral)은 2001년 러시아로부터 12세기 프레스코 벽화 조각들을 돌려받았다. 이는 나치가 키예프에서 약탈한 것을 트로피 여단이 다시 약탈해 1953년부터 에르미타주에 보관했던 것들이다.

우크라이나가 소비에트 연방에서 독립했지만, 러시아의 관심 국가로 떠올랐기에 환수할 수 있었다. 동독이 100만 점 이상을 돌려받았던 반면, 우크라이나가 소련의 일원일 때 이런 문화재를 돌려받지 못한 것은 소련이 문화재 반환을 외교적 도구로 삼은 명백한 증거다. 전후 75년이 흘렀지만, 소비에트 연방공화국 적군이 나치 독일에서 빼앗아간 100만 점 이상이 여전히 오늘날의 수도 모스크바와 과거 제정 러시아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보관되어 있다.

1301호 30면, 2023년 2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