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51)

아이스레벤과 비텐베르크의 루터 유적지(Luthergedenkstätten in Eisleben und Wittenberg)

독일은 서독 시절이던 1976년 8월 23일 유네스코 조약에 비준한 이래, 48건의 문화유산과, 3건의 자연유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탈리아와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세계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교포신문사에서는 2022년 특집 기획으로 “독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문화유산을 매 주 연재한 바 있다.
2023년에는 2022년 기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신청된 8곳과 신청 후 자진 탈퇴, 또는 유네스코에 의해 등재거부된 문화유산을 살펴보도록 한다. -편집실

아이슬레벤과 비텐베르크의 루터 유적지는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가 활동했던 역사적 장소를 총칭하는 용어이다.

◈ 아이슬레벤의 마틴 루터

– 마틴 루터의 생가

마틴 루터는 1483년 11월 10일, 아이스레벤에서 태어나 이튿날 성 베드로 바울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그가 태어난 집은 전형적인 시민 주택으로, 15세기에 지어진 건물인데, 1689년, 이 도시에 큰 화재가 났을 때 이 집은 상당 부분 소실되었으나, 그후 아이스레벤 시 당국에서 이 대지를 매입하여 건물을 다시 재건하였다.

루터를 찾아오는 순례자를 위하여 그 당시에 이미 박물관이 만들어졌으며, 마틴 루터의 생가는 이런 종류의 기념 시설 중 독일어권에서 가장 오래된 것에 속한다.

“내 존재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 마틴 루터와 아이스레벤”: 이것은 루터 생가 전시관의 제목이다. 이 전시장에서는 마틴 루터의 가족이 걸어간 자취를 볼 수 있다. 루터의 출생 배경, 루터 부친이 종사하던 광산업, 중세의 경건함과 영성(靈性), 루터의 세례 등을 주제로 250점이 넘는 전시품들이 이곳에 전시되어 있다.

루터의 세례는 이 도시와 루터를 이어주는 중요한 사건으로, 이 전시장의 가장 중심이 되는 전시품도 1518년에 만들어진 세례반(洗禮盤)이다. 그밖에 이 전시회에서 주목할 것으로는 16세기 후반의 아이스레벤 시립 묘지의 기념화들이 있다. 이 그림들을 보면 루터가 살았던 당시까지 아이스레벤 사람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

1층에서는 루터 가족의 거실을 들여다볼 수 있는데, 역사적인 고증을 거쳐서 만들어진 가구들은 15세기의 삶을 인상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 “루터가 사망한 집”

루터의 인생은 1546년 자신의 고향에서 막을 내린다. 1546년 1월 28일, 루터는 만스펠트 백작령의 분쟁을 조정하기 위하여 아이스레벤을 방문하는데, 당시 이미 루터는 병으로 건강이 쇠약해져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의를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한다. 2월 17일에서 18일로 넘어가던 밤에 루터는 62세의 나이로 아이스레벤에서 숨을 거둔다.

아이스레벤 시장터 북쪽에, 오늘날 루터의 죽음을 기리는 장소가 된 집이 있다. 1726년부터 이 건물은 루터의 사망 장소라고 인정받고 있는데, 프로이센의 재무부가 1862년에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이 집을 매입하여 거기에 기념관을 조성하였다.

이 박물관의 중심은 사망 보고서에 언급된 방인 침실, 루터가 임종한 방, 회의실 등으로, 1894년에는 추가로 그 당시의 실내 모습이 복원되었다. 가장 중요한 전시품으로는 루터의 관을 덮던 관포와 데드마스크 등이 있다.

◈ 비텐베르크의 마틴 루터

엘베 강 연안의 도시 비텐베르크는 마틴 루터의 도시이다

1502년에는 대학이 설립되어 이후 크게 번성해나갔으며, 루터와 멜란히톤, 그리고 그 밖의 많은 종교개혁가들이 이곳에서 활동하였다. 이러한 점에 힘입어 엘베 강 연안의 이 작은 도시 비텐베르크는 유럽 정신사의 구심점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그후 백여 년 동안 비텐베르크는 교회, 학문, 문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비텐베르크는 1938년부터 공식적으로 “루터의 도시”로 불리고 있다.

마틴 루터의 도시 비텐베르크는 성 부속 교회와 시립 교회, 루터 하우스와 멜란히톤 하우스 등 종교개혁의 역사를 보여주는 소중한 유산들을 보유하고 있다.

– 루터 하우스

비텐베르크에 있는 루터하우스는 약 35년 동안 루터가 중점적으로 활동하였던 곳이다.. 이 집에서 루터는 1508년부터 수도사로 살았고, 1525년부터는 가족들과 함께 남편과 아버지로서 살았다. 바로 이곳에서 루터는 “종교개혁의 발견”을 얻게 되고, 유럽 전체에서 몰려온 학생들 앞에서 강의를 했으며, 또 이후에 세계를 변화시킬 저작들을 집필한 것도 바로 이곳이다.

– 비텐베르크 시립교회

시립 교회인 성모 마리아 교회는 1187년 처음으로 문서에 공식적으로 언급된 바 있다. 1280년에는 오늘날 보이는 제단이 만들어졌고 남쪽의 측면 부조도 제작되었다. 1412년과 1439년 사이에 길쭉하던 건물은 세 채로 이루어진 예배당 건물로 대체되고, 교회 탑도 같이 건립되었습니다. 이 성모 마리아 교회는 시민들을 위한 교회로서, 종교개혁자인 루터와 부겐하겐이 설교를 하던 곳이기도 했다.

첫 독일어 예배가 거행된 곳도 바로 이 교회로, 만찬 시간에 예수의 피와 살을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를 성도에게 나누어 주었다. 또한 이곳은 1535년에는 개신교 목사의 성직 수여식이 최초로 거행된 곳이기도 하다. 이렇듯 비텐베르크 시립교회는 종교개혁의 모태 교회가 되고 있고 있습니다.

– 성 부속 교회

88미터에 달하는 비텐베르크성 부속 교회 탑은 비텐베르크 도시의 실루엣 위로 솟아올라 있어서 멀리서도 잘 보이는 비텐베르크의 상징과도 같은 교회이다.

성 전체 건물은 북쪽의 성 부속 교회로 완결되는데, 이 교회는 1517년 마틴 루터가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교회문에 내걸면서 유명해졌다. 오늘날 교회의 모습은 1883년과 1892년 사이의 복원 작업으로 형성된 것이다. 교회 실내는 역사적인 도면에 기반하여 완전히 복원되었고 성 교회 탑 역시 이때 새로 만들어졌다. 이 교회에는 마틴 루터와 멜란히톤이 안장되어 있다

1301호 31면, 2023년 2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