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55)

바이로이트 축제극장(Richard-Wagner-Festspielhaus)

독일은 서독 시절이던 1976년 8월 23일 유네스코 조약에 비준한 이래, 48건의 문화유산과, 3건의 자연유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탈리아와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세계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교포신문사에서는 2022년 특집 기획으로 “독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문화유산을 매주 연재한 바 있다.
2023년에는 2022년 기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신청된 8곳과 신청 후 자진 탈퇴, 또는 유네스코에 의해 등재거부된 문화유산을 살펴보도록 한다. -편집실

지난 호에서는 바이로이트 축제극장 건립과정을 살펴보았고, 이번 호에서는 극장의 특징에 대해 살펴보도록 한다

측면 발코니, 박스석 없는 만민평등의 극장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을 가리켜 ‘화려하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실용적이고 검소하고 수수하다는 얘기다. 정면 파사드만 전형적인 19세기말 장식이고 나머지 외벽은 장식없는 벽돌로 되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건축비 마련이 어렵게 되자 바그너는 벽돌과 나무 등 가능하면 값싼 건축 자재를 쓰려고 했다. 외부는 검소하게 하되 내부 시설, 특히 무대 설비는 최신 설비로 주문했다.

그는 극장을 설계할 때 오케스트라가 객석에서 보이지 않아야 하고, 객석 뒷편에 귀족을 위한 발코니석과 서민을 위한 입석을 마련해야 하는 조건을 내걸었다.

실내는 고대 그리스의 야외극장을 실내로 옮겨 놓은 듯한 구조다. 시야를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객석 의자를 지그재그로 배치했고 경사도도 높였다. 객석을 앞뒤로 가로지르는 통로가 아예 없다.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은 공연 사상 처음으로 공연 도중 객석의 조명을 완전히 소등한 극장이다. 무대에 완전히 몰입하도록 하기 위한 장치다.

음악평론가 자격으로 다섯 차례 바이로이트를 방문했던 버나드 쇼는 작품보다 ‘혁명적 발상’에 따른 이 극장을 더 높이 평가했다. 런던에 똑같은 극장을 본따 지었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오케스트라, 지휘자 모습 보이지 않는 깊은 무대

바이로이트 축제 극장의 가장 큰 특징은 오케스트라는 물론 지휘자의 모습을 전혀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연주 때는 연미복 정장을 입지 않는다. 무대보다 약간 높은 덮개로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처음엔 객석에서 오케스트라 피트에 비치는 조명이나 보면대 램프에서 나오는 빛을 차단하기 위해 중앙에만 덮개를 사용했는데 1882년 바그너가 직접 지휘봉을 잡은‘파르지팔’초연 때부터는 음향적인 이유 때문에 전체를 덮어버렸다. 그후 오케스트라 덮개는 ‘신성불가침’의 전통처럼 내려오고 있다.

가수의 노래와 오케스트라 사운드의 밸런스를 유지하고 오케스트라의 악기 음색을 잘 배합하는 게 바그너의 목표였다. ‘로엔그린’이후 그의 관현악 편곡은 각 악기의 음색이 튀어나오기보다는 마치 오르간 소리처럼 하나의 덩어리로 만들어내려고 했다. 악기 하나하나가 전체로 융합되어 풍부하고도 두터운 소리를 내는 것이다. 지하의 깊은 곳에서부터 묵직하고도 깊은 신비한 화음이 울려 나온다.

오케스트라 피트에 덮개를 씌우면 고주파보다 저주파가 쉽게 빠져나간다. 고음은 약음기를 사용한 것처럼 볼륨이 약해지는 대신 더블베이스, 첼로, 튜바 등 저음 악기는 풍부하게 들린다. 전체적으로는 매우 음산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오는 효과를 낸다. 오케스트라가 포르티시모로 연주하더라도 피아니시모로 노래하는 가수의 목소리를 뒤덮지는 않는다.

덮개로 뒤덮여 온통 깜깜한 오케스트라 피트 부분은 객석에서 볼 때 무대와 객석 사이에 놓인 ‘신비로운 심연’이다. 2중 프로세니엄은 무대가 저 멀리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효과를 낸다.

오케스트라 피트는 계단식으로 되어 있다. 다른 극장에서처럼 반원형으로 빙 둘러 앉는 게 아니다. 지휘자와 멀어질수록 낮은 위치에서 연주한다. 맨 앞줄의 왼쪽은 제2바이올린, 오른쪽은 제1바올린. 3∼4열은 비올라, 5열은 첼로, 더블베이스는 첼로 양쪽에 포진해 있다. 그 다음이 목관악기와 하프, 맨 아랫쪽에 금관악기와 타악기를 배치했다.

하지만 오케스트라 피트의 경사 때문에 지휘자와 단원들이 서로의 얼굴을 잘 볼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첼로 주자들은 지휘자를 보기 위해 자주 얼굴을 돌려야 한다. 오케스트라 피트 내의 음량이 너무 커서 바로 옆사람의 소리만 들릴 때도 있다. 무대 위의 가수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템포나 음량을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갈팡질팡하기 일쑤다.

3년간 바이로이트에서 지휘봉을 잡았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오케스트라 피트 덮개는 ‘파르지팔’‘트리스탄’‘니벨룽의 반지’에서만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다른 작품에서는 음악이 제맛을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은 “(바이로이트 지휘대에 서는 것은) 잠수 헬멧을 쓰지 않고 수심 150피트(약 5.6m)의 물속에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가수와 박자를 맞추기 힘든 것도 문제다. 다른 오페라 극장에서는 가수가 지휘를 보고 따라가면 되는데 여기서는 그랬다가는 오케스트라 소리가 나오기도 전에 자기 목소리가 객석에 도달하고 만다. 지휘보다 약간 늦게 나와야 한다. 지휘자는 가수의 입모양을 보기에 바쁘다.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편성은 매우 크다. ‘반지’초연 당시 오케스트라 편성은 바이올린 32명, 비올라와 첼로 각 12명, 베이스 8명, 하프 8명, 팀파니 3명에 4관 편성이었다. 오케스트라 단원 124명 전원이 남자였다.

연주자 못지않게 관객들도 고역이다. 팔걸이 없는 딱딱한 나무 의자에 몇시간씩 앉아있는 것은 고문에 가깝다. 발을 충분히 뻗을 공간도 없다. 1968년에 교체된 것도 딱딱한 것은 마찬가지다. 오히려 앉기에 옛날 의자보다 더 불편하다는 의견도 있다. 빈부귀천에 관계없이 모두 딱딱한 나무의자에 앉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한껏 잘 차려입은 관객들도 옷과 잘 어울리지 않는 쿠션을 들고 입장하기도 한다.

1305호 31면, 2023년 3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