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전쟁 – 전쟁과 약탈 그리고 회복 (26)

“모나리자를 지켜라” 루브르의 특급 비밀작전 ➁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가 약탈한 문화재와 예술품이 속속 원래의 합법적 소유자나 그 상속인들을 찾아간다. 특히 반환 문제가 제기된 예술품과 문화재 소장자가 그 취득 경위와 역대 소장자의 획득 정당성을 입증하라는 ‘워싱턴 원칙’ 합의 이후 나치 시대 약탈품의 회복이 가속화하고 있다.
페루가 전 세계 여론을 환기하고 상대국 대통령과 교황까지 움직여 마추픽추 유물을 돌려받을 수 있었듯 우리도 모든 역량을 모아야 문화재 한 점을 환수할 수 있다. 환수된 문화재는 박물관 수장고로 들어갈 것이 아니라 국민의 것이라는 자긍심을 주기 위해서라도 진정한 제자리 회복이 이뤄져야 하겠다.
약탈 문화재 환수는 유물이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이동하는 단순한 물리적 위치 변경이나 한 나라의 컬렉션 부족 부분을 채운다는 문화적 자존심 높이기 차원을 넘어서는 문제다. 있어야 할 곳으로 되돌아가는 제자리 찾기라는 도덕적 당위성뿐만 아니라 약탈에 스며든 역사적 핏빛 폭력과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어루만지고 쓰다듬는 힐링의 길이다.

■ 루브르로 돌아온 날, 소금 광산에서 발견된 모나리자

1943년 초, 조자르는 앵그르 미술관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걱정했다. 독일이 1942년 11월 자유 지대를 침략했고, 미술관은 타른강에 설치된 교량과 너무 가까웠다. 이 교량은 전쟁이 격해지면 폭격 표적이 될것이고, 자칫 오폭에 미술관이 파괴되면 작품들이 영원히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는 1943년 2월 전시의 마지막 은신처인 프랑스 남서쪽 ‘몽탈(Montal) 성’으로 대피했다. 이때 모나리자가 몽탈 성으로 가지 않고 행방불명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1944년 8월 25일 연합군은 파리를 해방시켰고, 이듬해인 1945년 5월 8일 독일이 무조건 항복하면서 유럽에서 제2차 세계대전은 끝났다.

박물관은 전쟁 중에 혹독한 상황을 겪었다. 나치가 루브르박물관 문을 열자 질 낮은 작품들만 걸려 있을 뿐, 거의 텅텅 비어 있었다. 또 파리등에서 약탈한 개인 컬렉션을 독일로 운반하기 전에 상자에 담아 보관하는 창고로 전락했다. 루브르는 1945~1946년 보수공사를 거쳐 화랑들을 완성하는 대로 개장했다. 모나리자, 그녀는 마침내 1945년 6월 16일 본래의 집으로 돌아왔다. 모나리자의 전시 대피 여정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모나리자가 루브르로 귀환한 그날, 공교롭게도 1000여 킬로미터 떨어진 오스트리아 알타우제 소금 광산에서 또 한 점의 모나리자가 연합군 ‘기념물, 예술품, 기록물 지원부대 MFAA,’ 즉 모뉴먼츠 맨에게 발견되었다. 알타우제 소금 광산 인근의 한 오스트리아 미술관 큐레이터는 “파리에서 온 모나리자는 나치가 광산에 보관한, 유럽 전역에서 약탈한 80개의 문화예술품 상자들 속에 있었다”라고 증언했다.

미국의 권위 있는 국립인문재단NEH이 2007년 모뉴먼츠 맨 재단에 예술 구조의 공로로 메달을 수여하면서 “모뉴먼츠 맨이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보호할 방어벽을 쌓고, ‘모나리자’를 포함해 루브르에 있는 모든 것을 포장해 상자에 담아 프랑스 전역으로 대피시키는 역할을 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후속 연구에서 알타우제 소금 광산에서 모나리자가 발견된 것은 사실이지만, 모뉴먼츠 맨이 ‘최후의 만찬’과 루브르를 구한 것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렇다면 알타우제 소금 광산에서 ‘모나리자’가 나왔다는데 대체 무슨 말인가? 기록에 따르면 소금 광산에서 발견된 모나리자는 “소유권을 주장하는 사람이 없어(unclaimed)”, 연합군이 1950년 루브르에 보냈다. 돌아온 모나리자는 MFAA의 회복 리스트에 “MNR265”로 적혀 있다. 그러나 루브르에는 이보다 5년 앞서 진품이 돌아왔다. 그리고 MFAA가 보낸 작품도 루브르에 있다.

■ 전시 기간 암호로 위치 알린 모나리자는 나치 ‘미끼’

모나리자, 그 작품이 전쟁 기간에 정확히 어디에 있었고, 어떻게 돌아왔는지와 관련한 이야기는 서로 모순될뿐더러 충돌한다. 전문가들은 전쟁에서 피난하던 이 작품은 1942년 몽토방에서 사라졌다고 추측한다. 루브르에서 출발해 프랑스 전역을 돌아다닌 모나리자는 고품질의 복제품, 즉 가짜이며, 작품이 이동할 때마다 행방을 알린 암호는 사실 나치 독일을 끌어들이기 위한 미끼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명작 약탈에 혈안이 된 나치는 모나리자를 끊임없이 노릴 터이니 가짜 모나리자를 내주어 추적을 차단하려던 고도의 계산이었다는 것이다. 조자르의 의도대로 1942년에 가짜 모나리자가 나치에 강탈당했고, 이것이 결국 알타우제 소금광산으로 보내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품 모나리자는 어디에 있었을까. 진품 모나리자는 피난 초기부터 파리에서 떠나지 않고 깊숙한 은신처에 있었다고 미국 미술 역사학자 노아 차니(Noah Charney)가 주장한다. 루브르는 모나리자의 전쟁 기간 행적에 대해 입을 꾹 닫고 있고, 모나리자는 미소로 그 답을 대신한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많은 이들이 6년 동안 모나리자를 프랑스 안에서 지키려고 노력했고, 그 결과 오늘날 루브르의2 층 드농관(Pavillon Denon) 방탄유리 상자 속의 ‘모나리자’가 다 빈치가 500년 전에 그린 진품이라는 데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리고 MFAA가 보낸 모나리자는 1950년대부터 루브르 박물관장실 밖에 걸려 있다.

실제로 모나리자에는 진품 같은 복제품이 많다. 세계 유명 미술관은 나름대로 모나리자를 소장하고, 전시하고 있다.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의 모나리자, 다 빈치의 제자 살라이(Salai)가 그린 모나리자, 모나리자의 복사본이거나 초기 형태로 추정되는 아이즐워스(Isleworth) 모나리자,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미술관이 소장한 모나리자가 일란성 쌍둥이라고 할 만큼 닮았다.

1307호 30면, 2023년 3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