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전쟁 – 전쟁과 약탈 그리고 회복 (32)

폴란드, 베를링카 반환 거부

독일 국보 ‘베를링카’를 인질로 잡은 폴란드 ➁

■ 독일 “소유권의 문제”, 폴란드 “인류 공동 유산”

포츠담 협정으로 독일은 과거 동부지역에 대한 관할권을 상실하는 대신 폴란드가 이 지역에 대한 주권과 함께 베를링카 컬렉션의 소유권을 확보했다고 폴란드 정부는 주장한다.

베를링카 컬렉션 반환과 관련해 폴란드 국내 분위기는 반대가 강경하다. 하원 다수당인 우파 ‘법과 정의당P’iS 대표인 야로슬라프 카친스키(Jaroslaw Kaczynski)는 “폴란드는 전쟁에 대해 법적으로, 도덕적으로 책임져야 할 의무가 없다”라면서 폴란드가 전쟁으로 고통을 받았으니 오히려 배상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Mateusz Morawiecki) 총리는 자신이 집권하는 동안 제2차 세계대전 유대인 생존자에게 보상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나치가 파괴한 폴란드 문화재의 가치는 2007년 기준으로 최소 200억 달러에 이른다고 폴란드 측은 강조한다. 약탈 문화재는 돌려받을 수 있지만, 한번 파괴된 문화재는 원상회복이 불가능하기에 그 손실이 더 크고 뼈아프다는 것이 폴란드 측의 논리다. 최근에는 강대국 전유물이던 문화재 약탈국의 논리에 폴란드도 가세했다.

그러나 독일 정부는 “악보와 원고들은 전쟁에서 보호하고자 당시 독일 땅에 두었던 것이고, 소유주는 베를린의 프로이센 도서관이며, 소유권의 문제”라며 “만약 누군가가 다른 사람의 물건을 가지고 있으면, 그 가치를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원래 자리로 반환, 즉 회복을 이야기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독일은 또 폴란드 국민의 감정은 이해하지만, 폴란드의 손실에 대해 독일이 1950년대 후반까지 보상했고, 폴란드는 추가 보상에 대한 모든 권한을 포기했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독일의 통일을 인정한 ‘통일조약(’동, 서독과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가 참여한 2+4조약)에 따라 폴란드와 국경선 논란 및 배상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말한다.

1991년 독일과 폴란드가 체결한 우호조약은 양국 의회에서 각각 비준되었다. 통일 독일은 동독이나 서독이 맺은 과거 모든 국제협약을 그대로 계승한다고 강조하면서 동독 정부와 폴란드가 맺은 1965년 반환 합의 이행을 압박했다.

이렇듯 베를링카 논란의 와중인 2014년 독일은 폴란드가 약탈당한 18세기 베네치아 풍경화 대가 프란체스코 과르디(Francesco Guardi, 1712~1793)의 걸작 ‘궁정 계단(Palace Stairs)’을 반환했다. 작품은 1925년 국립 바르샤바 미술관이 매입해 걸어두었지만, 나치 점령 기간인 1939~1945년 사이에 사라진 것이라고 미술관은 밝혔다. 독일은 이런 선의를 통해 베를링카 반환 협상이 진행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한편, 야기엘론스키대학에서 흘러나온 다수의 인쇄 판본이 경매에 나온 적이 있어 1999년부터 사용자의 조건이 강화되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쟁 참화와 수백 년 세월을 견딘 악보와 원고들이 분실이든, 세월에 의한 훼손이든, 약탈이든 다시는 사라져서는 안 될 인류의 보물이 라는 점이다.

현상금 1000억 원이 걸린 그림 ➀

■ 폴란드가 현상금 1000억 원 내건 약탈품

폴란드 외무부가 제2차 세계대전 때 자국에서 사라진 가장 유명한 작품 가운데 하나인 ‘젊은이의 초상화(Ritratto di giovane uomo)’가 위치를 밝힐 수 없는 은행 금고에서 발견되었다고 2012년 8월 1일 느닷없이 발표하자 세계 미술계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폴란드 외무부 대변인은 이 그림이 폴란드로 결국 돌아올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화가의 왕자’로 불리는 라파엘로가 1513~1514년에 그린 ‘젊은이의 초상화’는 전쟁 때 증발한 최고 명성의 작품 가운데 한 점이다.

라파엘로가 결코 확인해준 적은 없지만, 작품은 작가의 젊은 시절 자화상로 여겨진다. 상류층 남성을 묘사하고, 똑바로 앉은 자세 하며 호화로운 옷을 걸치고, 형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영향으로 부드럽다. 고대 운동선수와 창을 든 고전 영웅 조각상 ‘도리포로스(Doryphoros)’와 로마 북쪽인 프리마 포르타에서 발굴된 아우구스투스(Augustus) 황제 조각상에 근거한 인간 비율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라파엘로의 학구적 접근으로 설명되는 작품이다.

젊은이는 1500년대 초기 이탈리아 상류층을 대표한다. 호화로운 털 코트 색상은 그의 뒤에 깔린 무늬 양탄자와 대비를 이룬다. 많은 학자는 청년의 이런 자세를 매우 자신감 있는 형태의 표현이라고 본다.

작품 오른쪽 창문을 통해 푸르른 나무와 수풀이 보이고, 그 너머로 마을과 교회의 모습이 어렴풋하게 보인다. 흰 건물은 희미한 푸른 하늘빛에 아련하다. 라파엘로의 조용하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특징을 잘 보여준다. 현재 작품은 사라지고 흑백 사진만 남아 있다. 사진을 바탕으로 컬러로 복원해본 것이다.

그림은 계몽주의 시대 폴란드 왕족으로 정치가이자 수집가인 아담 예지 차르토리스키(Adam Jerzy Czartoryski, 1770~1861)가 1798년 이탈리아에서 구입했다. 그는 이 그림을 다 빈치의 ‘흰 족제비를 안은 여인(Lady with an Ermine)’, 로마 시대의 예술품들과 함께 폴란드로 가져왔다. 작품들은 차르토리스키 왕가 박물관에 전시되었다.

1939년 나치 침공이 다가왔다는 소식을 접하자 가문의 수장인 아우구스틴 유제프 차르토리스키는 박물관에서 여러 귀중품들과 함께 초상화를 바르샤바 동남쪽 우크라이나와 가까운 시에니야바에 있는 개인 별장에 숨겼다. 그러나 불행히도, 작품들은 숨긴 지 2주 만에 나치의 악명 높은 비밀경찰 게슈타포에 의해 발견되어 약탈당했다.

약탈된 대표 작품은 ‘젊은이의 초상화’, ‘흰족제비를 안은 여인’, 그리고 렘브란트의 1638년 작품 ‘선한 사마리아인이 있는 풍경(Landscape with the Good Samaritan)’ 등으로, 히틀러 개인 미술관에 걸기 위해 독일로 보내졌다.

1313호 30면, 2023년 5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