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73)

독일은 서독 시절이던 1976년 8월 23일 유네스코 조약에 비준한 이래, 48건의 문화유산과, 3건의 자연유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탈리아와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세계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교포신문사에서는 2022년 특집 기획으로 “독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문화유산을 매 주 연재한 바 있다.

2023년에는 2022년 기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신청된 8곳과 신청 후 자진 탈퇴, 또는 유네스코에 의해 등재 거부된 문화유산을 살펴보도록 한다. -편집실

레겐스부르크 근교의 발할라 신전(Walhalla)

레겐스부르크의 근교, 도나우슈타우프(Donaustauf)라는 작은 도시에는 게르만족의 “명예의 전당”이 있다. 바이에른 공국의 루트비히 1세(Ludwig I)가 만든 발할라 신전(Walhalla)이 그 주인공이다. 1807년 바이에른 왕국의 황태자였던 루트비히 1세가 구상하고 건축가 레오 폰 클렌체가 1830년부터 1842년에 걸쳐 건설했다.

루트비히 1세는 도나우 강 상공에서 96미터 높이에 그리스의 신전을 모방하여 고전주의 양식으로 거대한 건물을 짓고, 그 내부에는 독일을 대표하는 위인의 흉상을 만들어 보관했다. 하지만 현재는 바이에른 공국으로 국한하지 않고 독일어를 사용하는 지역에서 활동한 예술가, 문인, 과학자, 성직자 등 총 191명이 신전에 모셔져 있다.

“발할라”라는 이름은 게르만 신화의 모태가 되는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장소로서, 오딘(Odin; 신화 속 최고의 신)을 위해 싸우다 죽은 전사들이 머무는 궁전이다. 루트비히 1세가 게르만 위인들을 이곳에 모셨으니, 그의 민족주의 성향을 잘 보여주는 장소이기도 하다.

루트비히 1세는 뮌헨(München)의 명예의 전당(Ruhmeshalle)을 만든 인물이기도 하고, 그 유명한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가 루트비히 1세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그리스의 고대 올림픽을 흉내 내어 시작한 축제이기도 하다. 루트비히 1세의 취향과 특성이 잘 나타나고 있다.

신전 건립 배경

나폴레옹에게 패한 뒤 신성로마제국은 멸망(1806)하고 이후 많은 독일 제후들은 필요에 따라 또는 자발적으로 라인 연방에서 프랑스와 협력했다. 바이에른 역시 1805년부터 프랑스와 동맹을 맺었고 나폴레옹에 의해 왕국이 되었으며, 1806/1807년 제4차 연합 전쟁에서 왕세자였던 루트비히 1세는 프랑스 편에 서서 프로이센에 맞서 싸우며 베를린으로 진군하기가지 하였다.

그러나 이라한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독일인들은 깊은 굴욕감을 갖게되고, 이후 독일의 정체성에 대해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수십 년 후 토이토부르크 숲의 헤르만 기념물과 같은 국가 기념물의 건설은 대부분 고전주의 스타일이면서도 게르만 테마를 채택했으며 이러한 정체성 탐색의 결과였다.

“독일 정신의 부흥”을 위해 루트비히 왕세자는 이를 기리기 위한 대역사를 구상하게 되고, 그 결과물이 발할라 신전인 것이다.

발할라 신전은 루트비히 1세가 구상하고 건축가 레오 폰 클렌체가 1830년부터 1842년에 걸쳐 건설했다.

나폴레옹을 패퇴시킨 라이프치히 전투 17주년이 되는 1830년 10월 18일에 “영광의 성전”의 기초석이 놓였고 29주년이 되는 1842년 10월 18일 드디어 개관하게 된다.

이 발할라신전 프로젝트는 루트비히 1세의 가장 비용이 많이든 건축 프로젝트로, 건설비용이 400만 길더에 달했는데, 오늘날의 화폐로 환산하면 약 8,200만 유로에 이른다.

발할라 신전에 모셔진 위인들

1842년 개관 당시 160명의 위인이 이 신전에 모셔지게 되는데, 96인은 흉상으로, 그리고 64인을 위해서는 기념패가 부착되었다. 그 중 13명이 여성이었고, 1832년에 사망한 괴테가 당시로는 가장 최근의 인물이었다.

1842년 개장 당시, 96개의 흉상은 사망 날짜 순서대로 배치되었다

처음 70개의 흉상은 헨리 1세 왕이 있는 문에서 시작하여 마리아 테레지아 대공비가 있는 문에서 다시 끝나며 머리 높이 위의 벽에 있는 개별 지지석 위에 세워졌다.

나머지 26명의 젊은 수상자(당시 기준)의 흉상은 낮은 줄의 받침대에 덜 눈에 띄지 않게 나란히 배치되어 있으며, 레싱의 문에서 시작하여 1832년에 사망한 원래 구성원 중 가장 어린 괴테로 끝난다.

1847년 이후 총 35개의 흉상이 추가되었는데, 인물 선정은 바이에른 과학 아카데미의 추천에 따라 바이에른 장관 협의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1998년부터 여성 흉상 4개와 남성 흉상 5개가 추가되었다. 2003년에는 나치 저항군 소피 숄(Sophie Scholl)의 흉상이, 2007년 9월 12일에는 수학자 칼 프리드리히 가우스(Carl Friedrich Gauß)의 흉상이 2009년 6월 25일에는 에디트 슈타인(Edith Stein)의 흉상이, 2010년 7월 28일에는 작가이자 발할라 평론가인 하인리히 하이네의 흉상이 세워졌다.

최근에는 2019년 5월 29일, 케테 콜비츠(Käthe Kollwitz)의 흉상이, 2022년 7월 15일에는 막스 플랑크(Max Planck)의 흉상이 세워졌다.

1336호 31면, 2023년 10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