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전쟁 – 전쟁과 약탈 그리고 회복 (56)

「길가메시」 반환하는 미국

■ 세계 최고(最古) 서사시 「길가메시」, 고향에 간다

미국의 유명 공예품 업체가 경매로 사들인 고대 희귀 점토판을 미국 연방정부가 압수해 이라크 반환을 추진하고 있다. 문제의 점토판은 3600년 전에 만들어진 가로 17센티미터, 세로 15센티미터 크기다. 현재 전하는 가장 오래된 서사시인 「길가메시(Gilgamesh)」 내용 일부가 설형문자로 새겨져 있다.

「길가메시」 점토판을 약탈품으로 보고 압수한 미국 뉴욕 동부 검찰청 리처드 도너휴(Richard Donoghue) 검사는 2019년 9월 “약탈 문화재가 미국에서 보일 때마다 정부는 그 문화예술품이 속한 나라로 반환함으로써 인류의 문화유산을 보호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재확인했다.

메소포타미아를 넘어 인류 공동의 유산으로 꼽히는 「길가메시」 점토판이 어떻게 미국으로 넘어왔을까. 1991년 ‘사막의 폭풍’으로 명명된 걸프 전쟁 이후 설형문자 점토판을 비롯한

유물 수십만 점이 이라크 전역의 고고(考古) 유적지에서 사라져버렸다. 또 전쟁 때 이라크의 한 박물관에 약탈이 벌어져 2000점 이상이 도난당했다는 분실물 목록을 미국과 영국 고고학자들이 작성한 적이 있다 .

문명의 역사 손실이라는 비애의 카탈로그였다. 11년 뒤 이 전문가들은 도난당한 유물의 절반 이상은 그 행방을 추적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회복된 것은 12점에 지나지 않았다(<뉴욕타임스>, 2003년 5월 1일자 기사).

압수된 「길가메시」 점토판의 출처에 대해 미국 법무부가 밝힌 자료를 따라 추적해 보면 2003년 영국 런던의 한 요르단인 골동품 가게에서 먼지로 뒤덮여 있는 것을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미국인이 구입했다. 당시 이 점토판과 함께 다른 물건들이 미국으로 들어왔다.

미국에 들어온 점토판을 깨끗하게 닦아내고 설형문자 전문가들이 판독해보니 우루크의 왕 길가메시가 자신의 꿈에 대해 어머니에게 설명하는 장면으로 확인되었다. 길가메시의 어머니는 아들의 꿈을 듣고 “새로운 친구가 도착할 것”이라는 예언으로 해석하면서 “그를 보면 너는 가슴으로 웃을 것”이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이 점토판 환수도 이라크인들이 진심으로 웃고 기뻐할 일이다.

2007년 거래상은 「길가메시」 점토판을 두 명에게 팔면서 출처를 조작했다. 거래상은 ‘1981년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의 한 경매에서 산 유물 상자 안에 이 점토판이 들어 있었다’라고 주장하는 출처 문서를 가짜로 만들어 넣었다. 점토판 새 주인은 경매회사 크리스티(Christie)에 이 조작 서류를 전달하면서 점토판을 경매에 부쳤다. 법무부는 “골동품 판매자는 경매회사에 ‘조사가 진행되면 출처가 문제가 될 수 있으니 공개매각에 사용하지 말라’고 권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2014년 「길가메시」 점토판이 경매에 나왔고, 미국의 공예품 판매 회사인 ‘호비 로비(Hobby Lobby)’가 성경박물관(Museum of the Bible)에 전시할 목적으로 167만 4000달러(20억 원 상당)에 사들였다. 「길가메시」 점토판을 경매로 사들인 호비 로비는 2017년 수도 워싱턴에 개관한 성경박물관에 기증했다. 호비 로비 회장인 데이비드 그린(David Green)이 성경박물관 회장을 겸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증 이유가 설명된다.

3년 뒤 유물을 조사하던 성경박물관 큐레이터가 이 점토판의 출처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확보하게 되었다. 박물관은 2017년 이라크 대사관에 “우리가 「길가메시」 점토판을 소장하고 있지만, 전시하기 전에 출처를 확실히 할 광범위한 조사가 필요하다”라고 알렸다. 반면, 경매회사는 박물관과 호비 로비의 문의에도 점토판의 출처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

미국 법무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길가메시」 점토판은 오늘날 이라크 지역에서 나왔으며, 미국으로 반입한 것은 연방 법률 위반이었다. 국토안보부는 2019년 9월 성경박물관으로부터 문제의 점토판을 압수해 이라크 반환을 위해 안전 창고에 보관하고 있다.

■ 「길가메시」 판매한 경매회사 크리스티, 소송 당해

이에 호비 로비는 2020년 5월 크리스티를 상대로 점토판 낙찰가인 167만 4000달러의 환불을 요구하면서 사기와 계약 위반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샬럿 클레이(Charlotte Clay) 성경박물관 대변인은, 박물관은 「길가메시」 점토판을 이라크로 반환하려는 미국 정부 방침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도너휴 검사는 “이번 사건에 대형 경매회사가 중요 이라크 문화재의 출처가 조작되었을 것이라는 우려를 무시하고, 구매자에게 출처의 신뢰성을 훼손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의무 준수를 위반했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크리스티 대변인은 성명에서 “크리스크리스티가 출처 사기나 불법 반입을 알았다는 어떤 주장도 근거가 없다”라며 “우리는 우리에게 넘어오기 이전에 거쳐 간 모든 소유자의 취득 경위를 검토하고 있으며 ,이 문제와 관련해 우리의 권리를 지킬 것”이라고 반발했다.

크리스티가 반환 논란 대상이 된 유물을 경매로 판 것은 이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2020년 6월 나이지리아에서 약탈된 문화재인 목제 인형 두 점을 파리에서 경매로 파는 바람에 나이지리아의 반감을 샀다. 성물(聖物) ‘이보(Igbo)’로 알려진 한 쌍의 목제 인형은 1960년대 후반 나이지리아 내전 당시 지역의 사원에 있던 것들로 약탈된 유물이었다. 이보는 높이 1.5미터의 남녀가 손바닥을 하늘로 향해 축복을 받고자 기다리는 모습이다(<BBC>, 2020년 6월 19일자 기사).

크리스티와 같은 세계적인 경매회사들도 약탈 문화재와 예술품의 음습한 유통 창구가 아니라 밝은 빛으로 안내하는 등대로서 반환과 회복에 앞장설 의무가 있다고 하겠다.

호비 로비 역시 이런 종류의 불법 문화재 사건에 연루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이 회사는 이라크 유물 수천 점을 압수당했으며, 2017년에는 300만 달러의 벌금도 납부했다. 2018년 호비 로비는 불법 밀수품을 포함한 3800점의 고대 유물을 이라크로 반환하는 등 모두 5500점을 되돌려주기로 약속했다. 호비 로비 대표 스티브 그린(Steve Green)은 “많은 사람이 나를 잘못 인도했다”라며 더 많은 유물을 이라크와 이집트 등에 반환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1336호 30면, 2023년 10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