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를 소통 부재의 시대라고 한다.
각 분야의 전문화가 심화됨에 따라, 탈 중심, 분절화가 급속히 진행되어, 그 결과 각 개인의 삶은 공동체와 유리되어가고 있으며, 더 나아가 공동체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재독한인사회에서도 최근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1960년대에서 70년대 중반까지의 특정기간동안 동일한 연령대의 20000여명의 한인들이 독일에 진출하여 건설된 재독한인사회는 다수가 한국 또는 제 3국으로 떠나고 1000여명의 파독광부와 5000여명으로 추산되어지는 파독간호사들이 오늘의 재독한인사회를 발전시켜왔다.
그러나 이들 재독한인 1세대인 파독 광부와 파독간호사는 이제 내독 40년, 50년을 훌쩍 넘기고 70대 이상의 고령화를 맞이하고 있다.
한편 90년대 초반부터 급증하기 시작한 유학생과 주재원들, 그리고 전문직 종사자들이 20여년의 시간을 통해 상당수가 영주권을 취득하여 독일에 정착하여 재독한인으로 활동하여 왔는데, 2023년 현재 40-50대의 나이로 재독한인사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기 시작하였으며, 그 구성비는 이미 1세대를 넘어서고 있는 현실이다.
이와 더불어 20-30대의 한인들의 독일정착도 직업과 결혼을 통해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 재독한인사회는 이제 전 연령대가 고르게 분포되어 가는 전형적인 완성된 형태의 이민사회로서 변화하여 가고 있다.
그러나 현재 재독한인사회는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보다는 기존의 한인회 및 향우회 조직을 통한 유대강화의 틀을 답보하고 있어, 파독광부와 간호사들의 1세대 이외의 또 다른 한인사회의 구성원들의 참여를 유도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과연 이러한 현실에서 어떻게 서로간의 소통을 이루어야만 하는 것일까
소통이란 ‘막힌 것을 터 버린다’는 소(疏)와 ‘타자와 연결한다는’ 통(通)의 합 개념이다
다시 말해 나와 타인 사이의 벽을 터 버리고 서로 연결하여 상호 관련성을 갖는 것이다. 즉 ‘차이와 낯섦’의 상징인 타인과 나와의 결합이 소통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 한국인들은 이러한 ‘차이와 낯섦’의 수용에 유난히도 서툴기만 하여 온 것이 우리의 역사가 말해주고 있으며, 재독한인 사회에서의 많은 갈등도 이러한 ‘나와의 다름’을 수용하지 못해서 기인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또 다른 1세대(여기에서는 성인이 되어 독일에 온 세대를 1세대라고 칭한다)들의 한인사회 참여이다. 이들의 한인사회 참여 문제는 ‘재독한인사회가 앞으로 지속적으로 유지 발전될 수 있는가?’ 라는 재독한인사회의 실존적 문제이다.
한 도시에 한인들은 수 백, 수 천을 헤아리는데, 그들을 아우르는 한인사회는 존재하지 않는 기형적이고 불행한 시대가 어쩌면 우리의 목전에 다가왔는지 그 누구도 자신있게 부인하지 못하는 것이 현재 재독한인사회의 현실이고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여야만 하는 이유이다.
왜 문화인가
문화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편안함과 익숙함”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문화는 일반인과 유리되어 특정 전문가 집단들만이 향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익숙한 생활 그 자체가 고유 문화로, 사람들의 모든 활동을 아우르는 종합 예술이 바로 문화이다.
따라서 문화는 일반인 모두가 자신의 고유한 가치관과 삶의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감상할 수 있으며, ‘감상’이라는 수동적 행위를 넘어 ‘참여’라는 적극적 활동도 가능한 것이 문화활동이다.
이와 더불어 문화, 또는 문화행사는 같은 주제와 동일한 내용이라 할지라도 동일하게 모방되어지지 않고 늘 변화와 창조가 수반되어 항상 변화를 모색하는 형태로 나타난다는 사실은 ‘낯섦과 다름’을 수용하는데 익숙지 못한 우리들에게 변화를 통한 창조의 자연스러움을 일깨워주는 활력소로 작용할 것임이 틀림없다.
문화의 또 다른 특징은 다양함이 통합되어 전체적으로 표현된다는 점인데, 위에서 언급한 바, 소통이 자신과 타인을 가로막고 있는 벽을 허물고 서로 관련성을 맺는다는 점을 상기해 볼 때 문화를 통한 서로간의 소통이야말로 타인과 자신을 연결하여 서로의 주체성, 주관성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 자유로운 연대를 통한 통합을 이루는 가장 적합한 형태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문화를 통한 서로간의 소통은 서로가 조금씩 양보해 타협이라는 형식을 통한 부정적, 또는 소극적 통합이 아니라, 서로간의 개성과 전문성을 강화하는 시너지 효과가 함께 하는 긍정적, 적극적 통합을 이룩해 낼 수가 있다.
이를 통해 원심력적 문화편집현상을 극복하고 이해상충을 조절할 수 있으며. 나아가서 전문분야의 상식화 , 공론화를 통해 전문가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모든 구성원이 참여를 통해 전문분야의 일반화도 추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의 세계는 공간적 차이가 더 이상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지구 정반대에 있는 한국과도 전화는 물론 수 초 사이에 수백쪽 분량의 원고를 보내고 바로 답을 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으며, 인터넷을 통해 동시간적으로 모든 소식을 접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제는 이른바 “수만리 떨어진 이국땅에서…“라는 낡은 틀에서 벗어나 재독한인사회도 ’동포사회‘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동포사회‘의 특성을 살려가며 적어도 문화만큼은 한국의 현재의 모습과도 함께 하는 사회가 되어야만 하겠다.
이렇듯 새로운 변화가 절실히 요청되는 재독한인사회에 ‘문화를 통한 소통’이라는 기치아래 교포신문 문화사업단은 앞으로도 독자 여러분들과 재독한인들에게 다양한 문화 정보와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러한 시도가 재독한인 사회에 각계에 다양한 활동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1344호 23면, 2023년 12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