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이야기 / 150 – 유럽의 도자기 (5)

식생활 도구의 한 범주 속에서 흔히 ‘그릇’이라 불렸던 도자기는 거기에 인간의 예술적 혼이 더해져 예술과 문화로 꽃피우게 된다.

한 민족의 정신과 사회적인 정서는 흙이라는 매체를 통해 표현되기 때문에 한 나라의 예술성과 감수성, 세련미를 알아보려면 그 나라에서 구워 낸 도자기를 척도로 짐작할 수가 있다.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도기와 자기의 구분 없이 일반적으로 도자기라는 용어로 통칭하여 사용하고 있다. 이는 독일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도기를 뜻하는 ‘Keramik’과 자기를 뜻하는 ‘Porzellan’이 정확히 구분되지 않고 혼용되고 있는 현실이다.

문화사업단에서는 먼저 도자기에 대한 일반을 살펴보고, 이후 유럽의 대표적 도자기인 마이센도자기, 본 차이나의 웨지우드, 네덜란드의 델프트 도자기, 덴마크의 로얄 코펜하겐 그리고 독일의 빌렌로이 보흐에 대해 살펴보도록 한다.

네덜란드의 델프트 도자기

델프트는 네덜란드 경제중심지이며 유럽에서 가장 큰 무역항인 로테르담과 정치 중심지인 헤이그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아기자기하고 오래된 네덜란드 풍경이 많이 남아 있는 도시로, 우리에게도 소설과 영화를 통해 잘 알려진 명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그린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고향이자 평생을 살았던 도시이고, 공과 대학으로도 유명하다.

델프트는 1070년부터 사람들이 정착하기 시작해 1246년 네덜란드의 도시로 편입된 고도(古都)다. 르네상스시대부터 19세기까지는 거미줄처럼 퍼진 운하망을 기반으로 네덜란드 무역의 중심지 노릇을 하기도 했던 도시다. 아시아 무역을 담당했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건물을 비롯해 도심 곳곳에는 17세기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영화를 품고 있는 화려하고 웅장한 건축물이 많다.

네덜란드 델프트 도기의 시작은 1584년 이탈리아 마욜리카의 도공(陶工) 키드디 사비노가 앙베르스(앤트워프)로 이사하면서 시작하여, 도자기 제작이 활발히 시작하면서이다.

델프트 도기(陶器) 제작기법은 스켈데 강변 투르네이의 도토(陶土)와 라인 강변 뮐하임의 도토를 섞은 것을 소지(素地)로 하여 얄팍한 원형을 만든 다음 유백유(乳白釉)를 발라 저열(低熱)로 구우며, 그 위에 코발트나 그 밖의 안료로 그림을 넣고 건조시켜 다시 투명유(透明釉)를 발라 고열(高熱)로 구워낸다.

1615년 경델프트 도공들은 백색 주석유약으로 표면을 하얗게 만들어 그 위에 코발트블루로 무늬를 그린 다음, 마지막으로 투명 유약을 또 한 번 칠함으로써 적어도 겉으로는 청화백자에 가까운 제품을 만들 수 있었다. 유럽 최초의 동양 자기 모방품이었다.

1640년부터 1800년께까지 델프트 사기장들은 대부분 중국 자기를 성공적으로 모방할 수 있었다. 자기가 아닌 도기라고 할지라도, 청화백자를 모방한 첫 상품이었으므로 델프트 블루는 점점 유명해졌고, 유럽에서는 푸른 염료로 그려진 도기 제품과 타일 모두를 일컫는 보통명사가 되었다. 설사 델프트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도 그렇게 불렸다.

델프트웨어는 소소한 가정용품부터 예술적인 장식품까지 모두 만들었다. 델프트웨어 전성기는 1640년부터 1740년까지 약 100년 정도다. 이때는 델프트 블루가 거꾸로 중국과 일본으로 수출되기도 했고, 중국과 일본이 델프트 모방품을 만들기도 했다.

네덜란드 현지뿐 아니라 세계적인 관심을 받게 되자, 델프트 도자기는 일 년에 수백만 개를 생산했다. 18세기부터는 컵 받침 세트나 꽃병같이 장식적인 효과가 있는 제품들보다는 약제용 병부터 잉크 스탠드(Ink stand), 저금통 등등 흔하게 쓰이는 가정용품이 주를 이뤘다. 차 문화가 소개된 이후로는 그에 관련된 용품들도 많이 만들어졌다.

전성기의 델프트는 32개의 도기 공장에서 핸드 페인트로 작업하며 만들어졌고 델프트 시의 4명중 한명은 이 도기와 관련된 업종에 속해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독일 마이슨(Meissen)에서 1710년 유럽 최초의 경질자기를 만들기 시작한 이후 유럽 각국에서 자기를 생산하기 시작하자, 이에 대항할 경쟁력이 없었던 델프트 도기는 쇠락할 수밖에 없었다.

1750년 무렵부터 델프트웨어는 식탁에 놓이는 그릇이나 접시보다는 주로 미적인 장식용품 생산 쪽으로 흘러갔다. 18세기 말쯤에는 장식용이 아닌 실용 도기는 영국(특히 웨지우드)과 독일 도자기에 밀려 거의 시장을 잃었다.

그러던 중 1876년 엔지니어 출신 Joost Thooft가 새롭고 더 강한 도기를 생산해 내며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1919년 네덜란드 여왕으로 부터 Royal이라는 칭호를 받아 Royal Delft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튤립꽂이 화반(花盤)과 피라미드식 화탑(花塔)

델프트 블루 제품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튤립꽂이 화반(花盤)과 피라미드식 화탑(花塔)이다. 네덜란드의 또 다른 대표 상품이라 할 수 있는 튤립이나 히아신스 등 꽃을 꽂을 수 있는 좁고 가느다란 대롱이 서너 개 혹은 예닐곱 개 달려 있는 화반과 이러한 화반이 마치 피라미드처럼 층층이 올라가는 탑을 말한다. 화탑은 꽃을 꽂는 대롱만 아니면 그 모양이 영락없는 동양의 파고다(佛塔)이다.

청나라 시대 파고다와 델프트 튤립꽂이를 비교하면 한눈에 보아도 매우 닮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층층 누각으로 구성된 튤립꽂이를 구상했다는 사실 자체가 동양 파고다에서 얻은 영감일 것이다. 튤립꽂이의 아래 기단에 중국 가정집 풍경을 그려 넣어서 동양적 느낌을 강조한 것을 보아도 그렇다.

까다로운 작업을 거쳐야 했으므로 튤립 파고다는 그리 많은 수가 제작된 것은 아니다. 실제 이런 대형 꽃꽂이를 세워놓을 수 있는 장소도 흔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신 단층의 몸통에 서너 개부터 열 개 미만까지 꽃을 장식하는 꽃꽂이가 쏟아져 나왔다. 이 제품들은 오늘날도 네덜란드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다.

1353호 23면, 2024년 3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