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유럽 특허출원에서 명세서의 보정과 한국어 명세서 출원

IP 전문가 협회 KIPEU의 지식재산 상식

기술내용을 담은 특허명세서(이하 “명세서”라 합니다)를 제출하여 유럽특허출원을 한 후, 출원인은 유럽조사보고서를 받은 후와 심사과정에서 명세서를 보정(수정; amend)할 기회를 갖게 됩니다 (유럽특허조약 제123조제1항; 이하 Art. 123(1) EPC와 같이 표기합니다).

이때 비단 유럽특허 뿐 아니라도, 명세서의 보정에 가장 중요한 원칙은, 출원 당시의 내용을 넘어서는 내용을 포함하는 방식으로 수정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Art. 123(2) EPC). 다르게 말하면, 출원할 당시 제출한 명세서(이하 “최초명세서”라 합니다)에는 기재되어 있지 않았던 내용(신규사항; new subject-matter)이 추가되거나, 그러한 내용으로 변경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부분의 국가가 그 특허제도에서 택하고 있는 선출원주의(first-to-file rule)에 기인합니다. 즉, 동일한 기술이라면 먼저 출원한 사람에게 권리를 부여한다는 원칙이지요. (참고로, 이에 상대되는 개념은 선발명주의(first-to-invent rule)입니다.) 따라서, 특허출원한 날짜, 즉 출원일은 해당 출원과 관련된 권리를 부여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날짜가 됩니다. 이렇게 중요한 출원일을 좀더 이른 시점으로 확보할 수 있는 대표적인 제도가 우선권, 분할출원, 국제특허출원(PCT) 등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선출원주의의 배경에서 생각해보면, 보정에서의 위 원칙이 자연스럽게 도출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즉, 최초명세서의 내용을 넘어서는 보정이 허용된다면, 선출원주의는 사실상 무의미해지게 되니까요.

이 때문에, 출원할 당시에 제출하는 명세서가 오류가 없이 작성되는 것은 당연하게도 매우 중요합니다. 만일 오/탈자 등의 수준을 넘어서는 오류가 최초명세서에서 발견된 경우, 보정의 근거를 최초명세서에서 찾을 수 없다면, 이의 보정을 위해서는 유럽특허청과의 보장 없는 매우 험난한 설명과 설득의 과정을 밟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최초명세서의 오류는 어려가지 상황에서 생겨날 수 있지만, 이번 회에서는 번역과정에서 생기는 경우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유럽특허청에서는 세가지의 언어, 즉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가 공식적인 언어로 사용됩니다 (Art. 14(1) EPC). 따라서, 최초명세서는 보통 이 공식언어들 중 하나로 작성됩니다. 따라서, 한국 출원인의 경우에는 한국어로 작성된 명세서를 영문으로 번역하여, 이 영문 명세서를 유럽특허청에 제출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때 이 번역된 영문 명세서가 해당 출원의 최초명세서가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특허청은 공식언어 이외의 언어로 작성된 명세서로 출원하는 것도 허용하고 있으며(Art. 14(2) EPC), 이때 이 명세서가 최초명세서가 됩니다. 물론 공식언어 이외의 언어로 작성된 최초명세서에 대해서는 출원후 2개월 이내에 공식언어로 번역된 명세서가 제출되어야 하고(규칙(Rule) 6(1) EPC), 이 번역된 명세서로 이후 단계가 진행되지만(Art. 14(3) EPC), 이 번역된 명세서는 여전히 최초명세서의 번역문에 불과한 지위만을 갖게 됩니다. 당연히 한국어로도 명세서를 작성하여 출원시 제출할 수 있으며, 이 경우 한국어 명세서가 최초명세서가 됩니다.

그렇다면, 한국어 명세서를 출원시 제출하고 추후 번역문을 제출하는 방법은 어떤 이점이 있을까요?

우선은 앞서 말씀드린 번역시의 오류를 보정하기가 매우 수월합니다.

비록 출원후 조사 및 심사 과정이 번역문으로 진행되지만, 번역문의 오류가 있는 경우, 한국어 최초명세서를 보정의 근거로 하여 이를 보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출원후 번역문을 제출할 수 있는 시간(2개월)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우선권 주장을 하지 않는 경우에는 출원일을 앞당길 수 있다는 중요한 이점을 가질 수 있고, 우선권 주장을 하더라도 좀더 여유있게 번역문을 준비할 수 있게 됩니다.

참고로, 이와 달리 국제특허출원을 이미 한 후에 유럽특허청에 번역문을 제출(유럽특허청 진입)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이 번역문이 공식언어이어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한국어 명세서를 제출할 수 없습니다.

한국어 명세서가 준비된 상황에서 유럽특허출원을 위해 우선 번역부터 시작하기 전에, 한국어 명세서 출원이라는 선택지도 고려해 보시기를 바라며 글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저자: 박진
한국 변리사, 화학공학 박사
전문기술 분야: 이차전지, 입자 제조/분산, 전자/광학 소재 및 공정
거주지: 독일 뮌헨
소속: isarpatent Patent- und Rechtsanwälte Barth Hassa Peckmann & Partner mbB (www.isarpatent.com)
연락처: jin.park@isarpatent.com

1379호 16면, 2024년 9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