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회] 해로(HeRo) 특별 연재
– 병원 진료 예약이 이렇게 힘들어서야

“뚜- 뚜 – ”

전화 신호가 가지만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구글 검색으로 찾은 병원의 진료 시간을 다시 확인하고 시계를 보니 진료 시간이 맞는데 전화를 안 받는다. 벌써 3일째 진료 예약을 위해 같은 병원에 전화를 거는 중이다. 결국 전화 예약을 포기하고 인터넷 예약을 하기 위해 병원의 홈페이지를 찾아 열었다.

J 부인은 남편이 독일로 돈 벌러 간 후 혼자 한국에서 3남매를 키우다가 뒤늦게 아이들을 데리고 독일의 남편에게 합류하였다. 광주민주화운동이 발발했던 해, 계엄령 와중에 간신히 비행기를 타고 독일로 오셨다고 하니 벌써 독일에 산 지 벌써 40년. 내가 그분을 찾아뵈었을 때 원래 취지는 남편분에게 사단법인 <해로>의 선물을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그분이 나를 보시더니 새색시같이 부끄러운 얼굴로 ‚부인과 진찰을 받을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냐‘고 물으셨다. 보통은 아들이 병원을 따라와 주는데 산부인과 병원까지 같이 동행하자고 하기가 민망하다며 어려움을 털어놓으셨다.

부인과 정기검진을 받은 지 10년이 넘었고 최근 들어 불편하여 가보고 싶은데 어떻게 가야 할지 몰라 속만 태우는 중이시란다. 흔쾌히 같이 병원 방문을 해드리겠다고 하고 예전에 다니셨다던 동네 병원의 주소를 받아와 인터넷 검색으로 위치와 전화번호를 확인하고 예약을 위해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병원이 전화를 안 받는다. 자동응답기도 없다. 병원의 홈페이지를 찾아서 뒤지니 ‘진료 예약 신청란’이 있어 거기에 예약 신청을 하였다. 며칠 후 남겨둔 내 전화번호로 연락이 왔길래, “왜 전화를 안 받느냐”고 물으니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전화를 드리는 것 아니냐”며 심드렁하게 대꾸한다.

더욱 황당하고 어려웠던 것은 H 할머니의 종합병원 진료였다.

H 할머니는 2년 전에 동네 안과 의사의 권유로 큰 병원을 갔다. 찾아간 그 대학병원에서는 이 병은 자기네 제3 캠퍼스 병원의 모 박사에게 가야 한다며 진료를 더 이상 해주지 않았다. 그러나 제3캠퍼스 병원의 외래진료를 신청하고 병원을 찾아가는 것은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는 것이다.

가까운 거리도 바퀴 달린 보행기를 끌고 간신히 다니시는 여든이 넘은 할머니에게 베를린을 가로질러 저쪽 반대편에 있는 제3캠퍼스 병원까지 혼자 간다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었다. 그래서 그동안 진료를 포기하고 계시다가 마침 다른 일로 상담을 하러 온 내게 말씀을 하셨고 내가 같이 동행하기로 하여 드디어 큰 병원에 갈 결심을 하셨다.

할머니가 다니셨던 동네 안과에서 인터넷 예약 접수를 통해 ‘종합병원 진료의뢰서’ 발급받고, 2년 전에 받아 온 큰 병원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거니 음성 안내만 나온다. 현재 모두 바쁘니 연결이 될 때까지 계속 기다리거나 이메일을 보내라는 안내였다. 그래서 계속 기다리니 어이가 없게도 15분쯤 후 전화가 저절로 끊어져 버린다.

몇 번의 시도 끝에 포기하고 인터넷 예약을 하려는데 거기는 대학병원이라 홈페이지가 너무 복잡하였다. 3개의 병원 캠퍼스가 통합으로 들어있고 의료뿐만 연구, 서비스, 학사행정, 일반 행정 등이 섞여 있어서 원하는 외래진료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해당 진료과를 간신히 찾아서 샅샅이 읽어봐도 인터넷 접수창구는 없고 결국 이메일 말고는 다른 통로가 없었다.

병원 홈페이지를 빠져나와 따로 내 이메일 계정을 열고 예약을 원한다는 글을 보낸 지 며칠 후 “모월 모일 모시에 오라”는 일방적인 통보를 이메일로 받아 할머니를 모시고 갔다.

큰 병원이라 시간을 넉넉히 잡고 20분 전에 도착하였지만 우리는 시간에 맞춰 들어갈 수 없었다. 외래병동 앞에 입장을 위한 줄이 길게 늘어서 있어서 우리도 줄을 섰다. 한참을 기다려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자 간호사가 나와 번호표를 주면서 환자만 들어갈 수 있고 동행인은 밖에서 기다려야 한단다.

알고 보니 코로나로 외래 방문객 수가 제한되어서 적정인원 수 외에 사람은 모두 밖에서 기다리게 하고 간호사가 수작업으로 줄을 선 사람들에게 대기번호를 주며 입장을 시키고 있었다. 대기번호는 접수 시에만 사용할 뿐 다시 복도에서 무한정 차례를 기다려야 검사와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H 할머니는 큰 병원에 늦지 않게 오려고 아침 식사도 못하고 나오신 상태라 대기시간이 길어지자 많이 힘들어하셨다.

통역을 이유로 사정을 하여 간신히 입장한 내가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냐고 간호사에게 묻자, “예약을 하고 와도 보통 4시간”이라고 한다. 이메일로 통지할 때 그런 것도 미리 안내를 해 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불친절한 병원에 한숨만 나왔다.

“내가 이 나이에 얼마나 더 살겠다고 이 고생을 하며 병원에서 기다리나!”

H 할머니는 진료받기 전에 지쳐서 병나겠다며 하소연을 하신다. 같이 기다리며 아무리 궁리해도 답을 찾을 수 없다. 고령의 환우들이 진료를 받기가 쉽지 않은 종합병원 시스템. 그렇다고 진료를 안 받고 그냥 병을 키우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

이메일 계정을 아예 안 갖고 있는 노인이 많은데도 이메일이 아니면 아예 예약이 불가능한 병원들. 인터넷 사용이 익숙지 못한 고령자를 고려하지 않은 병원의 인터넷 예약 창구. 말하기보다 글쓰기가 더 어려운 외국인들이 소외되버리는 의료 시스템. 넘치는 환자로 여유와 배려가 없는 병원. 고령의 외국인에게 병원은 아득히 멀기만 하다.

휴대폰을 온종일 들고 다니는 젊은 사람들에게 전화예약보다 인터넷 접수가 더 쉽고 편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쉬운 일이 고령자에게는 너무 힘든, 아니 불가능에 가까운 어려운 일이다. 어르신을 돕는 젊은 자원봉사자들이 절실하게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정미/ 해로 호스피스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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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0호 16면, 2021년 3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