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연재] 해로 (Kultursensible Altenhilfe HeRo e.V.)

37회: 다문화 축제 마당에서

지난 토요일 오후, 베를린 한 귀퉁이에서 작은 동네 축제가 열렸다. 외국인이 많이 사는 베를린답게 축제 이름이 “다양성 축제”. 베를린 빌머스도르프 구에서 주최한 이 축제는 오대양 육대주에서 모인 다양한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축제를 주관하고 진행한 곳은‚판게아 하우스‘에 둥지를 튼 이민 단체들로 지역 사회에 기여하는 활동가들이다.

먼 옛날, 지구의 땅덩어리가 한 덩어리로 붙어있던 시절의 초대륙을 일컫는 ‘판게아’라는 이름처럼 ‘판게아 하우스’는 여러 대륙에서 온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더불어 살아가는 길을 모색하는 곳이다. 이들이 주관한 축제 마당에 사단법인<해로>도 초대되어 행사의 한 꼭지를 맡게 되었다.

두 개의 지하철역 사이의 길을 막아 행사장을 만들었지만 아무도 불평하는 사람은 없다. 자기네 전통 의상을 판매하는 아랍 여인들, 독일 내 소수 민족의 인권 신장을 도모하는 단체, 고국의 민속춤을 준비한 사람들, 제3국과의 공정무역을 촉구하는 단체 등등 각양각색의 무대와 좌판이 펼쳐졌다.

이민자를 위한 독일어 교실을 운영하는 한 단체는 엄마가 독일어를 배우는 동안 아가들을 맡아 돌보는데 축제 마당 안에서도 이를 재현하여 아기들이 복작거리는 귀여운 놀이방을 만들어 놓았다. 다채롭고 흥미로운 모습의 축제는 일부러 찾아온 주민은 물론 지나가던 행인까지 더하여 간간이 비가 흩뿌리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성황을 이루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분주한 곳은 한국 먹거리를 판매하는 <해로 분식점>. 주어진 공간의 절반에는 해로 활동을 소개하는 인쇄물을 진열하고 나머지 절반에서는 한국 부침개와 만두를 팔았다. 곁들이 음식으로 준비한 김치는 한류 열풍 덕분인지 많은 사람이 이미 알고 있었으며 인기를 누렸다. 둥굴레차 맛을 본 후 맛있다고 다시 와 추가로 사 가는 사람도 있었다.

“한국 음식은 역시 젓가락!”이라며 포크 대신 소독저를 달라는 독일인들에게 젓가락을 건네주며 “역시 준비하길 잘했어.” 하며 스스로 대견해하기 무섭게 발생하는 돌발 상황들.

“어머, 전기가 안 들어와요. 전기 프라이팬이 작동되지 않는데 어떡하죠?”

“주최 측이 마련한 쓰레기통이 너무 부족해요. 우리 판매대 바로 곁에 쓰레기통이 하나 있으면 좋겠어요!”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잠깐 앉으실 수 있게 의자를 구할 수 있을까요?”

해로 분식점 일일 봉사자들이 어려움을 토로하지만, 길거리 한복판에서 생긴 문제라서 해결이 난감하기만 했다. 그때 마침 인근에서 한국 식당 ‘신라’를 운영하시는 사장님이 기꺼이 도움을 손길을 내밀어 주셨다. 이동식 가스레인지와 프라이팬을 빌려주시고 매장의 쓰레기통을 비워 선뜻 내어주시고 접이식 벤치도 직접 들고 와서 설치해 주셨다.

“한국 사람들끼리 서로 돕고 살아야죠. 남의 나라에 와서 이민자로 어렵게 사는 같은 처지인데.”

격려해 주시는 덕분에 힘이 솟았다.

사단법인 <해로>의 문화 교실을 수강하고 계신 어르신들도 멀리 발걸음을 해주셨다.

“언니, 근처까지 왔다고요? 입구에서 코로나 접종 완료 확인받고 들어오시면 태극기 걸린 가판대가 보여요. 거기에 우리는 벌써 와서 모여 있어요.”

핸드폰으로 통화하며 서로 위치를 확인하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해로 가판대>를 찾아주신 어르신 중에는 아예 프라이팬 뒤집개를 이어받아 부침개를 부치다가 가시는 분도 계셨다. 또 판매에 뛰어드시는 분도 계셨다.

Mandu가 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독일 남부 지방의 유명한 토속음식, 마울타쉐에 비교하는 친절한 설명에 판매에 가속도가 붙었다. 주름진 고운 얼굴로 신뢰감을 뿜어내는 미소를 머금고 한국식 길거리 음식을 완판하는 그분에게 우리는 ‘판매 여왕’이라는 별명을 붙여드렸다.

평생 간호사로 사셨고 교회에서 궂은일만 묵묵히 봉사하시는 얌전한 그분은 “본인에게 장사 재능이 있는 줄 미처 몰랐다”고 하시며 호호 웃으셨다. 70대에 이르러서도 자신의 새로운 재능을 발견하는 기회가 주어지니 고맙고 반가운 일이다.

‘국제화’라는 말이 새삼 식상할 정도로 다민족과 다언어가 당연해져 버린 대도시. 세계화는 이미 시작되었고 우리는 서로 다른 모습을 한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살고 있다. 독일이라는 먼 나라에 와서 한민족 고유의 색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타민족 고유의 색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이웃들과 어떻게 더불어 살아가야 할지 살짝 고민하게 해주는 축제였다. 또 사단법인 <해로>가 지역 사회에 어떻게 자리매김해야 할지 숙제를 던져주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정미/ 해로 호스피스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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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6호 16면, 2021년 9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