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경민 (칼스루에)
독일 교민들은 물론 업무로 독일에 단기 거주하는 ‘국외 부재자‘는 지난 2월 23-28일에 각 주재공관에 설치된 “재외 투표소“에서 귀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 이제 3월 9일이면, 본투표와 개표를 통해 제20대 대통령이 결정된다. 민주화 과정을 거쳐 재외국민들에게까지 선거권이 주어진 과정을 살펴보고, 재외 한인사회에서 재외 선거에 “우편 투표” 도입 필요성을 공론화해 보고자 한다.
검정고무신을 신던 어린 시절에 선거는 흰고무신을 돌리고 막걸리 몇 잔으로 후보자들이 매표하던 일들이 비일비재했었다. 고등학교 시절에 유신독재가 시작되었고 이런 선거가 “체육관 선거“로 바뀌는 바람에 선거권을 채 얻기도 전에 선거권을 이미 강탈당했다. 1987년 민주화 운동의 결과로 선거권을 다시 찾았지만, 이미 독일로 유학와 있었던 필자는 외국에 거주한다는 이유로 또다시 선거권을 자동적으로 잃고 말았다.
2012년, 제18대 대선 때부터 마침내 재외국민들에게도 선거권이 주어짐으로써, 쉰을 훨씬 넘긴 나이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선거권을 처음 찾게 되었다. 하지만, 유신 독재자의 딸 박근혜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출마했기에, 국내에서 사는 국민들이 결정할 문제라 여기고 처음으로 주어진 “선거권”조차 기꺼이 포기했었다. 결국 환갑이 된 제19대 대선 때, 태어나 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했다.
이런 귀중한 “선거권”을 기꺼이 포기했던 이유는 본 글에서 제기하는 근거와 비슷하다. 그 당시 재외국민이 선거권을 행사하려면, 본인이 직접 재외공관에 찾아가 사전에 선거인 명부를 등록하고 투표일에 공관에 설치된 투표소에서 투표해야 했다. 이번 20대 대선에서는 온라인으로 사전 선거인 명부를 등록하고 공관에 설치된 투표소에서 투표하도록 다소 개선되었다. 민주주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선거법은 유독 “재외 유권자“들에게 개인 비용으로 “비싼 투표권“을 행사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현 재외 선거 제도는 과연 “평등선거” 원칙에 준하는가?
소위 평등선거는 유권자 개개인의 투표권이 재산, 신분, 성별, 교육 정도, 종교, 문화 등의 영향받지 않고, 유권자가1인1표를 행사할 수 있도록 국가가 유권자에게 편리를 제공하는 선거이다. 그런데, 현 선거 제도는 ‘관리상 편의’를 위해 사전 “선거인 명부 등록제”를 둠으로써, 실제로 자발적으로 등록하지 않거나 채 등록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선거권을 박탈하고 있다.
사전에 등록해도 유권자가 시간과 금전적인 지출을 감내해야만 선거권 행사가 가능한 것이 현행 “재외선거 제도”의 실상이다. 뒤집어 말하면, 대한민국 국민이며 선거권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당연하게 행사할 선거권을 사전 “선거권 명부등록제”를 통해 선거권을 제한 내지 박탈하는 결과를 낳는다. 더군다나 재외공관이 소재하는 도시가 아닌 다른 도시에 거주하는 유권자들이 적게는 몇 시간, 많게는 하루를 선거에 투자해야 하며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 (유학생)에게 투표권을 제한하거나 선거포기를 유도하는 결과를 낳게 되며 자칫 ‘위헌적’ 요소까지 담고 있는, “평등선거” 원칙에 반하는 선거 제도이다.
평등선거에 준하는 “재외 선거“를 위해 ‘우편 투표‘ 도입이 정답이다
독일 선거제도를 살펴보면, 이미 1957년부터 “우편 투표”를 실시하고 있다. 이 제도는 독일 연방의회 선거 뿐만 아니라, 군소 지방자치 선거에도 보편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우편 투표”의 취지는 주일에 실시하는 선거에도 불구하고, 거주지 투표소에서 투표할 수 없는 유권자들이 사전 등록해 우편으로 투표하는 “선거관리 편의”가 아닌, “주권자 편의”를 위한 제도이고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선거에 참여할 수 있게 한다. 우편으로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 이외는, 현재 한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사전 투표”의 취지와 거의 같다고 볼 수 있다.
독일에서 1957년부터 도입해 시행하고 있는 “우편 투표”를 선진국이라 자부하는 현 대한민국에서 도입하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본다. “우편 투표”의 장점을 나열해 보면 아래와 같다.
1) 우편 투표는 단 1분 선거권 행사를 위해 재외 주권자의 시간과 금전적 부담을 최대한 줄일 수 있다. 우편 투표는 주권자 국민을 위한 선진적 선거제도의 도입이자 앞에서 지적한 평등선거 원칙에 100% 가까워지는 제도적 해결이기도 하다.
2) 우편 투표는 재외 투표소에서 현재 선거 기간 동안 소요되는 불필요한 다양한 세비와 인력 낭비를 최대한 줄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또 있을지도 모를 팬데믹과 같은 위기 상황에 적합한 제도이다. 우편 투표제를 도입했더라면, “코로나19” 핑계로 21대 총선때 재외 투표소를 일방적으로 폐지하는 반민주적 행태가 사라질 것이다.
3) 평등선거 원칙에 따라 각 공관에 등록된 재외국민 모두에게 “우편 투표” 용지를 송부하거나, 현행처럼 온라인으로 사전에 “우편 투표 사전 등록”을 하는 유권자에게 투표지를 보내고 지금처럼 투표한 용지를 재외 개표소로 재송부하면, 재외 선거가 현행 선거보다 훨씬 더 간편해질 것이다.
4) “우편 투표”의 도입은 재외 선거뿐만 아니라 결국 국내 선거에도 “사전 투표” 대신에 도입해야 할 제도이다. 이런 제도를 통해 법정 토론을 끝내고 사전 투표 하루 전에 윤석열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단일화를 통해, 재외 국민들이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들인 귀중한 1표가 무효표가 되는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재외 선거가 도입된 이후로, 선거때마다 국내 언론과 정치인들은 “몇 천 킬로를 달려와 투표한 장한 애국자”란 말을 남발했었다. 이와같은 논리대로라면, 애국자들의 귀중한 표를 무효표로 만든 안철수와 윤석열 후보의 단일화는 결국 “비난 받아야 할 매국 행위”가 된다. 또 이들이 정권을 잡게 된다면, “매국 행위”의 결과로 권좌에 오르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결론적으로 앞서 열거한 장점들을 고려해 지금이라도 “(재외) 선거법 개정”을 서둔다면, 세비 절약은 물론 반민주적이며 후진 정치적 모순에 더 이상 빠지들지 않게 될 것이다. 점점 고령화되는 재외 한인 단체들은 물론이고, 국회를 위시한 한국 정치권과 선거 관련 당국들이 앞으로 있을 선거에서 “주권자의 편의”를 최대한 배려하는 “우편 투표 제도“에 대해 이제라도 지혜를 모아 깊게 고민할 때가 왔다고 본다.
1258호 면, 2022년 3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