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카페 이야기 (3)

100년의 역사를 지닌 카페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프랑크푸르트 ‘라우마카페 (Cafe Laumer)’

재독화가 황수잔

유럽인들에게 카페는 생활하는데 없어서는 안되는 밀접한 관계가 있는 기호식품이다. 카페는 인간이 찾아 낸 것 중 가장 향기가 많은 식품이라 한다. 그들은 카페의 진한 아로마 향기와 독특한 맛으로 정신을 맑게 해주는 한잔의 카페로 하루의 일과가 시작된다.

프랑크푸르트 Bockenheimer Landstrasse 67에 위치한 ‘라우마 카페‘는 100년의 역사를 지닌 오래된 전통 카페이다.

라우마 카페는 1919년에 설립되었다. 1920년대부터 프랑크푸르트 대학의 좌익 지식인들, Kurt Riezler, Paul Tilli, Max Horkheimer, Karl Mannheim 등 주요 인물들이 이곳에서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졌다. 1950년 헬무트 콜 연방 총리는 공부하는 동안 라우마 카페를 자주 드나들었다.

1950년부터 1960년대에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중요한 대표자들을 위한 만남의 장소로 사용되었다. 테오도르 W. 아도르노가 단골손님이었고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막스 호르크하이머, 쿠르트 리즐러도 방문객이었다.

이 기간 동안 라우마 카페는 Cafe Marx로도 알려졌다. 1970년부터 프랑크푸르트 앙 마인 시는 이 건물을 소유하고 있다. 1980년 연례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당시 카페는 Rowohlt 출판사의 본부였으며 도서전 기간 동안 ‘Cafe Rowohlt‘라고도 불렀다.

30년 전 햇빛이 유난히 찬란하게 비치는 화창한 여름, 우리들 부부는 오랜 역사를 지닌 전통카페로 유명한 ‘라우마카페‘를 방문했다. 웅장한 외관 건물부터 옛정취가 물씬 풍겼다.

카페에 들어서니 오랜 추억을 간직한 옛 주인들의 손때가 묻은 고가구가 설치 되어있고 벽에 걸려있는 당시, 문인들, 예술가, 정치가등 오래되어 퇴색한 흑백 사진들을 볼 수 있었다. 그 옛날의 추억과 함께 학구적이고 지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은은히 비치는 램프빛과 어울리는 전체적인 브라운 톤이 분위기를 아늑하게 해준다. 풍요로운 아름다운 꽃들의 향기가 정원을 가득 채운다. 정원에서 카페를 마신다. 사랑하는 연인들, 대학생, 나이가 지긋한 노부부, 정치가, 예술가, 가족과 함께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정겨운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맛과 품격이 다른 우아하고 고풍적인 전통 카페가 좋아서 가까운 곳에서는 물론 멀리서도 찾아오는 단골손님들이 많다. 전통적인 다양한 전통 케이크(Kuchen)를 맛볼 수 있으며, 신선한 샐러드와 함께 간단한 식사도 할 수 있다.

우리 부부는 카페라테(Cafe Latte)를 마셨다. 프랑스에선 카페오레 라고 한다. 카페라테는 뜨거운 카페에 따뜻한 우유를 가미한 머그잔에서 마시는 카페이다. 하와이언 밀크커피, 중국 밀크커피, 서인도풍 밀크커피등은 카페라테(Cafe Latte)의 응용이라고 한다. 카페라테는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있다. 라테마키아토(Latte Macchiato)는 에스프레소 자체의 쓴 맛을 살리면서 부드러운 거품 낸 우유를 가미한 이탈리아 카페도 요즘 사람들이 많이 찾는 단골메뉴다.

라우마 카페는 종업원들이 친절하고 손님들과 격의 없이 어울릴 수있어 언제 찾아가도 편하고 마음이 따뜻해서 우리들 부부는 ‘라우마 카페’의 단골손님이 되었다.

Baeckerei (빵집), 라우마카페의 역사

1919년 문을 연 ‘라우마카페’, 그 옛날 이곳은 자갈길 이였다. 사람들은 마차를 타고 다녔다. 처음 카페이름은 빵집 ‘리스벳(Lisbeth)’이라고 불렀다. 종업원들은 일요일이 되면 부유한 귀족마나님들의 주문한 빵과 케이크(Kuchen)을 커다란 바구니에 넣고 집집마다 배달 하였다.

당시 예술가나, 정치가, 문인들이 이곳에서 만나 예술을 논하고 정치를 이야기 하고 문학을 논하는 만남의 장소였다고 한다. 100년이 지난 오랜 역사이며 카페의 발자취, 라우마 전통카페는 단순한 카페가 아니라 프랑크푸르트의 기관으로 모든 세대의 만남의 장소가 되었다.

필자가 서울에서 고등학교 미술교사로 있을 당시 가난했던 60ㅡ70년대가 지나고 80년대 부터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 보니 소비문화가 발달하기 시작했다. 만남의 장소로 화려하고 분위기 있는 커피숍으로 명품으로 유명한 번화가 명동, 대학가에 많이 있었다. 필자는 워낙 커피숍에 관심이 많다보니 만남의 장소로 분위기 있고 실내장식이 잘된 명동과 신촌에 있는 유명한 커피숍은 거의 다 다니곤 했었다. 명동에는 팝송이 있는 음악 커피숍이 있었는데 그곳에 가면 흘러간 팝송부터 최신 유행하는 팝송을 고루 들을 수 있었다. 그날의 주 레퍼토리 신청곡을 중심으로 선정해서 들려주었다.

손님들은 대부분 대학생이나 예술가, 젊은이들이 만나 대화를 나누고 음악을 듣는다. 일반 다방에서는 볼 수 없는, 머그잔에 따뜻한 커피 위에 생크림을 얹는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카페 (Wiener Kaffee)가 대인기였다. 실내장식도 강렬한 칼러로 이탈리아의 분위기로 모던하게 해놓고 은은한 불빛 속에서 음악과 함께 마시는 그 맛이 일품이였다.

필자는 공휴일이나 방학에는 혼자서 또는 친구와 함께 그곳에서 대화를 나누고 팝뮤직을 듣곤 했다. 이화여대 근처에는 클래식 음악 커피숍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그날의 클래식 음악제목과 함께 해설이 칠판에 써 있었다. 주제곡 마다 해설을 읽으면서 커피를 마시고 음악을 듣는 아카데믹한 분위기였다. 프랑크푸르트에 그런 멋진 커피숍이 있다면 필자는 지금도 꼭 가보고 싶다.

이화여대에서 신촌 방향으로 가다보면 음악카페가 있는데 이곳에서는 밤마다 피아노 연주가 있었다. 연인들이나 대학생들이 열 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좁은 공간인 카페에서 피아노 주위에 둘러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아름다운 선율의 피아노 연주를 듣는다. 그들의 감상하는 모습이 얼마나 낭만적이고 멋있었는지. 커피는 마시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분위기가 중요하다.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서 잠시 일상생활을 접고 마시는 것이 제격이다.

지난날을 기억하다 보니 잊지 못할 추억이 있다. 신촌에 미술대학 입시생들을 위한 뎃상을 배우는 갤러리가 있었다. 필자는 시간이 있을 때면 이곳을 방문하고 화가들과 미대생들도 만나곤 했다. 그들과 미술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고 대학입학을 위한 뎃상을 배우는 학생들과 어울려 라면을 먹곤 했다. 그들과 함께 미술교사로,선배로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커피이다. 우리들은 물이 펄펄 끊이면 컵에 부어 인스턴트 커피에 크림과 설탕을 넣고 적당히 휘저어 마셨다. 다방커피로 소박한 우리식 커피 한잔이 그렇게 맛있었던 그 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림 그리는 대부분 학생들은 여유가 있고 자유를 즐긴다. 작품 하는데는 열심이지만 자유인 똘레랑스로 그들은 얼마나 게으른지 커피잔들이나 라면 그릇을 씻지 않고 계속 먹다가 더 이상 그릇이 없을 때야 한꺼번에 씻었다. 그렇게 지냈던 그들이 지금쯤 대학을 졸업하고 화가가 되었거나 미술교사로 지내고 있으리라.

그 근성이 필자에게도 있어서 일본 유학시절에 부지런한 엔지니어 독일남편을 만나 살면서 무척 힘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서로 공감대가 많아서 행복하다. 카페, 미술전시, 콘서트, 여행을 좋아하기 때문에 우리들은 언제나 지루하지 않고 대화가 풍부하다. 유럽여행을 주로 하는데 뉴욕, 아르헨티나, 터키, 체코, 등 끝이 없다. 가는 곳 마다. 특이한 카페를 방문한다.

우리들이 방문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토르토니 카페’는 모든 것이 완벽한 예술작품이다.

토르토니 카페는 1858년 건축가 Christophersen에 의해 예술 문학, 철학, 건축등 모든 분야가 최고 절정을 이루었던 당시 오스트리아 비인의 우아하고 고품격인 유럽 전통적인 양식으로 건축되었다. 당시 예술인들, 유명 인사들이 만나는 만남의 장소였다. 적브라운 톤의 내부 전체가 갤러리처럼 많은 그림들이 걸려있고 토르토니 카페역사를 설명한 글들이 실려 있다.

지금은 관광지로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매일 방문하고 있다. 크고 작은 룸들을 갖춘 이곳에서 탱고댄스를 가르친다. 재즈, 콘서트, 독서 발표도 하는 문화카페이다.

1295호 20면, 2022년 12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