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양자
숙자씨(75세)는 독일에 간호사로 와서 30년 이상 근무하고, 공부 더 해서 독-한 동시통역도 하고, 타우누스의 한-독 친선 부부 등 모임도 만들고, 재미있게 살다가 정년퇴직이 되어, 꿈에 그리던 한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녀는 한국에 가서 지금 10년째 살고 있으며 10일간 휴가를 나와서 꽃샘 추위인 날에 오버우어젤의 어느 카페에서 반갑게 만났다.
그녀는 얼굴색도 하얗고 명품 옷, 가방에 한국어, 독일어, 영어, 스페인어를 섞여서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한국에서 제일 먹고 싶었던 게 싸우워크라우트이고 아침의 말랑말랑한 부뢰첸 빵이라고 했다. 그곳의 이태원에서 먹는 것은 아무래도 그 맛이 아니라면서…
그녀는 한국에 가자마자 독일 남편과 함께 외국에 사는 교포들이 한국으로 귀하 하는 분들을 돕기 위해서 사무실까지 내고 봉사를 하기도 했단다. 그런데 이젠 자기도 미국으로 이민을 트럼프 대통령 되기 전에 이미 신청했다고 했다. 아들이 미국에 사는 이유도 있지만, 한국이 이젠 정이 떨어졌다고 했다. 살아 온 과정이 달라서인지 몰라도 한국의 정치 문화도 맘에 안 들고, 지금은 너무나 불편하고 불안한 한국 삶이라고 하소연을 했다.
더욱이, 요즈음의 한국 정치와 국민들의 분열과 갈등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극단에 처해있고, 말이나 행동 잘 못 했다가는(외국에서 오래 산 사람들은 직선적이기에..) 몰매를 맞아 죽을 수도 있다고 했다.(웃음)
언제부턴가 외국에서, 특히 독일에서 연금이 적고, 또 늙고 외로운 이들은 한국에 가서 동사무소나 재외동포청에 신청만 하면, 금방 살기 좋은 아파트도 나오고, 기초연금도 월 34만원 나오고, 여러 교통시설이나 공공 기관도, ‘경로’라는 이름으로, 공짜로 다 이용할 수 있다는 아름답고 고마운 소식이 들리기 시작했다.
경험자인 숙자씨의 말을 들어보니, 이미 많은 분들이 외국에서 정리를 하고 한국에 가서 도움을 청했으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제대로 혜택을 못 받아 고생 들을 많이 하고 있다고 했다. 병원보험도 해당사항이 안된다고 혜택을 못 받는 경우가 많으며, 많은 병원이나 요양원의 간호사나 보호사들이 한국말을 전혀 못 하는 외국인들이 많아진 이상한 나라가 되었다고 했다.
다행히도 예전의 거주지에 집을 그냥 놓고 가신 분들도 있지만, 미리 다 정리 하고, 연금 증명서만 딸랑 가지고 가신 분들은 가난에 쪼들려 죽을 지경이라고 했다. 그분들은 이젠 힘도 없고 창피해서 돌아올 수도 없다고 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최저 연금 799유로를 받는 분들은 한화로 약 110만원이 되지만, 한국에서의 돈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떨어졌다고 한다. 브로콜리 한 송이가 4000원, 조그만 부뢰첸 빵 한 개가 1500원이고, 스타벅스 커피 한잔이 7000이고, 김밥 한 줄에 5000원, 라면 한 봉지가 3000원이라고 했다. 그 외에도 독일보다 훨씬 비싼 게 많다고 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앵커 유재석씨가 길거리에서 ‘유 퀴즈’라는 방송을 하는 걸 보니, 아주 쉬운 퀴즈를 하고 맞히면, 그 자리에서 100만원을 주고 있었다. 100만원도 독일에선 아주 큰 돈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는, 아마도 중세기사람 취급을 받아야 마땅할게다.( 웃음)
욕심과 사치는 끝이 없고 인간을 불행하게 만든다. 하지만 평생 일하고 가족을 부양하고 나이 들어서 기본적인 인간 대우도 못 받으며 살아야 하는 인생이 도대체 무슨 삶의 보람을 느끼고 사랑받을 수 있단 말이냐?
숙자씨의 10년간의 한국생활 경험으로 알려준 사실들이 거짓말 이길 빈다. 그래도 예방차원과 노파심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우린 이제 고국의 하늘을 보고 김치 먹으며 편하게 고국에서 살다 죽고 싶다는 꿈은 접어야 할 것 같다.
숙자씨의 “799유로의 연금으로 한국에서 절대 못살아요” 하던 말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1405호 17면, 2025년 4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