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원 박사의 언어와 정체성 이야기(6)

언어와 언어의 사이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 – 엑소포니 작가

엑소포티 작가, 생소한 말이다. 아마도 이 말을 쓰는 사람들은 작가들뿐이리라. ‘엑소’는 그리스어로 밖이라는 의미이고 ‘폰’이란 소리, 목소리라는 뜻으로 ‘엑소포니’ 작가란 자기 소리 밖, 즉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문학을 창작하는 사람들이다. 번역문학과 다른 점은 처음부터 창작 자체를 모국어가 아닌 다른 나라 언어로 한다는 데에 있다.

엑소포니 작가 중에는 어려서부터 이중언어자 이거나 다중언어자로 자란 사람들도 있지만 성인이 되어 다른 언어로 작품 활동을 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외국어를 배워서 글을 쓰는 작가들도 있다.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독일어를 쓰고 배우는 것에도 허덕이는 나에겐 단순히 살기 위해 언어를 배우는 것이 아닌 문학작품을 창작하고 싶어서 외국어를 공부해 창조활동을 해 나가는 이 작가들은 저세상 사람들이다. 정말 대단하다, 외국어를 배워 문학작품을 써나갈 구사능력을 갖춘다는 것이.

잘 알려진 엑소포니 작가로는 자신의 모국어인 체코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작품 활동을 한 밀란 쿤데라, 프랑스어로 작품을 쓴 아이리시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 영어로 《롤리타》를 쓴 러시아 작가인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영어로 《어둠의 심연》을 집필한 폴란드 작가 조지프 콘래드 등이 있다.

이들 작가들은 왜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작품 활동을 했는가? 전쟁이나 정치적인 이유로 자신의 모국어로 작품 활동을 하는 것이 금지되어서 그런 경우도 있고 개인적 트라우마의 결과로 모어로 글 쓰는 것이 힘들어진 경우도 있다.

헝가리 태생인 아고타 크리스토프(Agota Kristof)는 전쟁으로 스물한 살에 남편과 어린 자식을 데리고 스위스로 망명하게 되었고 프랑스어를 뒤늦게 배워 작품 활동을 했는데 그녀의 자전적 작품인 《문맹에서 모국어를 잃고 새로운 언어로 작품 활동을 하는 것이 얼마나 고독한 여정인지를 잘 그려내었다.

폴란드 태생의 작가 아그니스카 레지빅(Agnieszka Lesiewicz)은 영어로 작품 활동을 했는데 그녀는 폴란드어에서 영어로 바꾸어 작업하는 것은 그녀를 더 자신감 있고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으로 바꾸는 인생 전환의 경험이었다고 말한다. 또한 다른 언어로 작품 활동을 하는 것은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고 늘 쓰던 방식과는 다르게 글을 쓸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즉 다른 언어로 작품 활동을 한다는 것은 모어로부터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글을 쓰면서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가는 실험이고 여정이라는 것이다.

베를린에 살면서 자유롭게 독일어와 일본어를 오가며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 다와다 요코는 독일어와 일본어 사이의 공간이 바로 자유와 창의성이 발휘되는 공간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원하는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자유…이것이 번역 작품과 엑소포니 작품의 큰 차이점이다.

엑소포니 작가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언어들 사이에서 실험을 할 수 있다. 글과 언어 사이 그리고 글과 정체성의 사이를 오가며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고 그 과정을 통하여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다와다 요코는 이렇게 말한다. “일본인과 일할 때는 내 안의 독일인은 내보내야 해요. 한 가지 언어에 익숙해지고 싶지는 않습니다.”

와세다대학에서 러시아 문학을 공부하고 독일로 건너와 함부르크에서 아버지 책방에 책을 공급하던 회사에 다니던 그녀는 1987년 일본어와 독일어로 된 첫 책 The naked eye를 출간하게 되었다. 이 소설은 다섯 문장 간격으로 독일어와 일본어를 번갈아 쓰고 있는데 독일과 일본에서 꾸준히 호평받았다.

퓰리처 수상자인 줌파 라리(Jhumpa Lahiri) 역시 엑소포닉 작가로 뱅갈리 부모 사이에서 런던에서 태어났다. 미국으로 건너가 영어로 작품 활동을 하다 로마로 이주하여 이태리어의 매력에 푹 빠져 이태리어를 열심히 배워 이태리어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다. 그녀는 새로운 세상에 자신을 던질 수단으로 이태리어로 글쓰기를 선택하게 되었다고 했다. 벵갈어와 영어는 그녀에게 배당된 언어이지만 이태리어는 새로운 길, 전혀 기대하지 않은 길을 내준단다.

다른 언어는 우리에게 각기 다른 방법으로 말할 힘을 선사해 주고 우리의 생각에 더 많은 의미를 주입하고 대화를 더욱 풍부하게 해준다. 언어와 정체성의 유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엑소포닉 작가는 모국어의 한계에서 해방되어 새로운 방법으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치열하게 그 기회를 테스트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 말로 작업하는 서양의 엑소포니 작가가 있을까? 아직 등단 작가 중에는 잘 알려진 작가는 없는 듯하다 (혹시 독자 중에 이런 작가를 아시는 분이 계시면 제게도 꼭 알려주셨으면 한다). 한국어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한국어로 창작을 하는 작가들이 꾸준히 나오지 않을까 희망을 걸어보면서 독일에서 한국어로 작품 활동을 하는 신진작가, 마이케 올스기스를 소개하고자 한다.

작가의 말

안녕하십니까? 저는 독일에서 3년 동안 한국학과 일본학을 전공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단편소설을 썼을 때가 언제였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저는 단번에 단편 소설의 세계에 매료되었습니다. 단편 소설은 좀 더 편안하고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저는 주로 한국과 일본의 단편소설을 좋아하는데 단편 소설은 장편소설과 달리 문화적 배경과 작가의 사고방식을 더 간결하면서도, 인상적인 방식으로 전달합니다. 특히, 저는 한국어의 독특한 특징과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좋아합니다.

마이케 올스기스

한국어로 글을 쓸 때 굳이 한국식으로 쓰려고 노력하지는 않지만 신기하게도 그 문체와 글쓰기가 독일어와 글 쓸 때와는 많이 달라집니다. 독일어로 글을 쓸 때는 저의 글은 매우 길고 묘사적이며 낭만적인 문장으로 써지는 반면 한국어로 글을 쓸때는 짧고 무뚝뚝하고 간결한 문장으로 바뀝니다.

지금 소개하고자 하는 단편소설은 말씀드린 변화를 잘 보여줍니다. 저는 등단 작가가 아니라 부족한 한국어 실력으로 열심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초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들께서 제 작품을 즐기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제 작품은 저의 주체할 수 없는 상상력과 한국에 대한 엄청난 사랑의 표현입니다.

단편소설 라스트

위태로운 불안스러운 흐트러진 아침. 덧없는 매일. 원망. 한. 내 안에, 게 누구인가? 이 잘못된 세계에서. 누가 왔다. 변화를 주러 온 거다. 변화를 시킬세. 누군가 시작했지만…누가 끝낼까? 리성은 매일 아침 기억 상실로 고통받는 평범한 회사원이다. 최근, 근처에서 이상한 연쇄 살인사건들이 일어난다. 이건 그냥 우연인가?

9시 15분. 화요일.

깨고 일어났다.

오늘도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어제 뭘 했는지,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 왜 옷을 입고 침대에 누웠는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피. 피가 묻어 있다. 신발에. 왜 그럴까? 난 다친데 없다. 이상하다.

한번 더 내 마음은 날, 내 감각을 가지고 논다. 난 이길 수 없다. 한번 더 졌다. 완전히. 미칠 것 같다.

그냥 포기할까? 내 운명을 받아들일까? 흠… 그런 생각이

무섭다.

오리성 傲俚性. 28세. 회사원.

„리성아!야, 리성아! 빨리 와! 지금 몇 시야, 어?! 문 열어!“

누군가 내 문을 두드리고 있다. 아, 누군가 아닌, 내 친구… 아니, 내 동료 박대휸이다. 매일 날 데리러온다. 우린 그렇게 친한 사이 아닌데 얘가 왜 늘 오고 날 괴롭하고 내 커피를 가져가 마시는지 잘 몰라. 나한테 상관없는데 얘한테 귀찮지 않아? 난 말이야, 친절한 사교적인 사람도 아니고 감사하라는 말도 안 하고 그냥 혼자만 생활하는 걸 좋아한다. 얘와 반대야. 너무 밝고 사랑스럽고 사귀기 쉬워서 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니까 도대체 왜 여기, 내 집으로 오는 거야? 매일 똑같다. 얘 오고 아침 먹고 담배 피우고 같이 버스 타고 같은 회사 가서 일 하고 저녁 먹고 끝. 다음 날도. 똑같다. 얘는 내 음식, 내 돈을 먹고 난 무시하다가 난 얘를 푸대접하고 얘는 전혀 개의치 않아. 우리 둘 중에 누가 제일 바보인지 말할 수가 없어. 난 그런 거, 그런 생활 좋아해. 명확한 역할 분담. 정확한 일상. 정돈된 상태를 위해 순서대로 해야 하는 것이다. 깔끔한 잘 정돈된 인생. 완벽해. 그래서 나한테 좋지. 아주 좋아.

그런데, 얘는? 얘랑 그런 인생은 전혀 어울리지 않아. 궁금해. 뭘 생각하는지 왜 왔고 오고 다시 올지 진짜 궁금해서 죽겠네. 그런데, 알고 싶어도 물어보려고 하지 않아. 절대 안 해. 그 질문의 답은 날 실망시킬지도 모르니까. 그냥 모르는 것이 낫다. 일단은.

천천히 내 몸을 문으로 끌고 가서 연다. 큰 미소로 그의 얼굴은 빛난다. 흠… 남자지만 예쁘다. 대휸이 보면 항상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남자다. 근데 예쁘다. 막 예뻐. 남자가 이렇게 예쁠 수 있나?

„형! 뭐해, 문 안 열고. 형을 기다렸잖아. 벌서 10분이야.“

„미안.“

„됐어. 형 마음을 알아. 사과할 때도 미안하지 않으니까. 그렇지? 난 다 알거든.“

다 알면서 왜 왔니?

„오, 이 표현 봐! 내 말이 맞네. 형, 내가 불쌍하지 않아?“

불쌍한 새끼.

„근데, 눈이 왜 이래? 완전 다크서클이네. 잠을 잘 못 잤어? 아님 악몽을 꿨어? 흠?“

„들어올래, 갈래? 여기 서 있지 마.“

„아, 잠깐! 알았어! 문 닫지 마. 들어올게… “

오늘 아침, 피로 얼룩진 신발을 숨겼다. 옷을 갈아입자마자 다 옷장에 깊이 숨겼다. 왜 했는지 나도 몰라. 난 잘못한 일이 없으니까. 근데 그 옷, 피를 볼 때마다 악감정이 계속 괴롭혔다. 짜증나게. 그래서인지 원칙적으로 습관적으로 그냥 숨겼다. 잘못한 일이 없으니…

„리성아, 담배 어딨어? 찬장에 찾을 수 없네…“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고 했지.“

„왜 안 되는데? 좋은 이름이면서.“

„담배는 부엌 수납장에 있어.“

„고마워!“

좋다고? 바보. 공부 안 했군. 사람들이 그 이름이 들을 때마다 눈살을 찌푸린다. 어머, 무슨 이름이 그래? 내 이름이 그래. 근데 할 수 없지 뭐. 내 부모님 짓이 아니었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아지진 않아. 변하지 않아. 그래서 싫어.

10시. 대휸과 같이 식사 하고 있다. 순서대로. 좋은 시작이다. 오늘도 완벽한 날이 될 거야. 이전의 문제를 잊고 그냥 없었던 일인 척한다. 제일 나은 선택이다.

담배를 잡아 피우려는데 대휸이 내 동작을 멈춰 말렸다.

„형, 뭐해?“

„뭘 하긴.“

„형 설마… 피우려고…?“

„어. 왜?“

„안 돼! 담배를 끊었다면서.“

„이건, 내 마지막이야.“

„어제도 마지막이었어! 오늘도. 내일도. 이렇게 하면 절대 끊을 수 없단 말이야. 난 형이 걱정돼.“

„너나 잘해. 그럴 만큼 피우면 폐는 곧 검게 될 거고 넌 죽을 거야. 네가 걱정돼. 네가.“

눈을 굴리며 담배 연기를 내뿜는다. 고집스러운 새끼.

„아, 참! 뉴스 봤어? 그가 다시 왔대.“

„누가?“

„부처살“

„아, 그래?“

부처살. 부처님의 살인자. 언론은 그 사람에게 그런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 사람은 연쇄 살인범이다. 여기, 이 도시, 우리 근처에서 일어난 미제 연쇄 살인사건들.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이코패스가 멋대로 돌아다니고 있다니. 공포를 일으켰고 모두가 두려움에 떨고 있다.

경찰은 어떤 구체적인 정보도 밝히지 않았다. 딱 하나만. 그는 부처님을 굳게 믿는다. 그 살인사건들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죽었던 사람들은 5명이다. 지난달부터. 매주 한 명. 보통 경찰은 범죄 현장의 사진을 보여주지만… 이번 사건에는 그렇지 않었다. 왜? 고인의 얼굴이 보일 상태가 아니래. 흠…

몸은 얼마나 손상되어야 하는가? 시신은 얼마나 훼손되어야 하는가? 상상하여 보고 싶지 않아도 궁금해. 그것은 단지 맹목적인 대학살일까 아니면 살인에 의미가 있을까? 피해자들을 선택할 때 동기, 이유가 있나 아니면 완전히 무작위인가? 희생자들을 어떻게 죽일지 생각하고 생각하는 그림을 만들었을까 아니면 그냥 그들을 학살하여 죽였을까? 빨리 끝내고 했나 아니면 그들을 천천히 고문했나? 고통스럽게. 괴롭게. 참혹하게. 어떤 종류의 고문을 즐겼을까? 어떤 도구를 사용했을까? 물고문? 인두 고문? 주리 틀기 고문? 손톱 찌르기 고문. 가늘고 날카로운 꼬챙이를 손톱 밑으로 찔러 고통을 주는 방법. 손톱뿐 아니라 입 속까지 마구 찔러 그 고통으로 기절하는 맑고 바르며 우아한 방식. 아… 정말 너무 궁금해.

그가 진짜 부처님의 살인자, 그냥 도살인가, 아님… 우리 생각보다 목표가 있는 사람. 확실한 정해진 목표. 수심에 찬 사색적인 사람인가. 나처럼.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 겁 없는 새끼.

소설전체: novel.naver.com/challenge/list?novelId=1038528

1293호 14면, 2022년 12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