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과정에서 동서독 정당체제의 변모 ②
신정치세력의 등장
사회주의통일당 일당 체제의 동독에서 사회주의통일당에 반기를 들거나 또는 체제개혁을 주장하는 단체의 구성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9년 여름 이후 동독에서는 광범위하고 다양하게 반체제그룹이 형성되기 시작하였고, 9-10월에는 반대 그룹들이 공식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베를린 장벽 붕괴 직후 동독인들의 개혁에 대한 요구는 크게 두 가지의 형태로 나타났다. 첫째로 동독의 정체성 확립에 대한 요구이다. 이러한 요구는 주로 과거 공산당 정권 시절 반대투쟁을 주도했던 예술인, 목사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는데 동독이 서독에 흡수되는 통일방식에 대해 거부하는 사람들이었다. 두 번째는 동독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동독 공산당 정권 독점 조항의 삭제였다.
12월 1일 동독 인민위원회의 조사위원회는 호네커 등 사회주의통일당 간부들이 당을 이용해 개인적으로 재산을 부정으로 축적하여 호화주택을 건설하고 서구의 사치품으로 장식하였으며, 불법적으로 많은 외화를 외국은행에 예치한 사건들을 발표하였다. 이에 12월 3일 사회주의통일당의 모든 정치국과 중앙위원회위원들이 사표를 제출하였고 크렌츠 또한 사임하였다. 동독 공산당의 이러한 부패와 관련된 사건들은 민주개혁의 필요성을 더욱 각인시킬 뿐이었다.
통일 전후 동독에서는 새로운 다양한 정치세력이 등장하였는데 이들은 다음과 같다.
① 뵐레너(Böhlener) 모임
9월초 동독의 뵐레너(Böhlener)에서는 동독의 정치, 경제, 사회 등 제반 분야에서 혁신의 필요성을 인식한 다양한 사회주의 단체들이 「동독에 있는 좌익 연합을 위하여」라는 호소문을 발표하였다.
② 신포럼(Neues Forum)
1989년 9월 10일 출발한 ‘신포럼’(Neues Forum)은 개신교인, 학자, 문인 들을 회원으로 한 단체로 동독인들의 대량 이주는 동독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으로 혁신을 통한 문제해결을 주장하였고 동독 정부에 정식 단체로서 인정받기 위해 신청서를 제출하였지만 반국가단체로 규정되어 인정받지 못했다.
이들은 1990년 계획된 선거를 위해 정당 창당을 준비하였는데 이들이 발표한 ‘정당 창당을 위한 호소문’에 의하면 신포럼의 자매단체인 ‘신포럼당’ 이 설립되어야 할 이유로 첫째, 창당을 통해 국가 정부의 책임을 인수할 가능성이 마련될 수 있으며 둘째, 신포럼은 계속해서 많은 시민을 위한 폭넓은 플랫폼으로서의 기능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③ 민주주의 지금(Demokratie Jetzt)
‘민주주의 지금’(Demokratie Jetzt)은 9월 12일 「국내정치 참가를 위한 호소」라는 성명서를 통해 5월 7일 지방선거12에서의 부정선거를 규탄하면서 사회주의통일당은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기 때문에 교인들과 비판적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연합을 주장하였다. 더불어 동독체제의 민주주의적 변혁을 위하여 첫째, 권위주의 국가에서 공화국으로, 둘째, 생산수단의 민영화, 환경파괴와 오염으로부터 자연과 영구적인 조화 등의 3가지를 동독체제의 민주주의적 변혁을 위한 과제로 제시하였다.
④ 민주주의 혁신
‘민주주의 혁신’은 10월 초 “민주주의 출발-사회적, 환경적”을 위한 호 소문을 통해 쇄신된 민주주의를 위해 첫째, 국가와 정당의 분리, 둘째, 자유로운 여론의 발전과 여론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 셋째, 자유로운 의사 형성, 넷째, 산업 사회의 친환경적 개혁을 요구하였다. 이후 베를린 장벽의 붕괴 이후 민주주의 혁신은 라이프치히 강령을 발표하였다. 이 발표는 크게 다섯 가지로 정리된다. 먼저 국가와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자유, 평등, 비밀 선거를 통한 정치적 대변, 입법, 행정, 사법의 분리, 법치국가 그리고 사회적 시장경제를 주장하였다. 둘째, 경제의 역동성 강화와 산업 사회의 친환경적 개혁을 위해 소유권 형태에 있어 동등한 권리가 부여된 다양한 소유권 형태의 존재를 주장하였고 피할 수 없는 독점은 민주적으로 감독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또한 법적으로 구속력 있는 시장 경제를 지향하면서도 환경적 요구를 경제 메커니즘에 통합하고 국제적 분업에 적극 참여할 것을 주장하였다.
셋째, 연대 적인 사회의 추구 넷째, 쇄신된 사회 내에서의 개인과 공동체를 위한 자유를 주장하면서 교육 분야의 재편성, 언론과 정보교환의 자유 그리고 종교의 자유와 헌법을 토대로 하는 모든 교회와 종교의 동등한 권리의 지향을 주장하였다. 다섯 번째로 유럽 평화 질서 속에서의 독일 국가의 국가적 통일을 위 하여 노력할 것을 주장하였다.
⑤ 카네이션
마르크스주의적 정당의 창당을 위한 그룹인 카네이션은 1989년 12월 10일 통일과정에서의 동서독 정당체계의 변모와 정책적 시사점일 광범위한 경제, 사회 개혁을 주장하면서 역사청산, 국가에 대한 국민의 광범위한 감독, 권력 분립을 위한 법 체제의 완성, 개인 정보 보호법 도입 그리고 법치국가적 원칙을 요구하였다.
⑥ 독립 노조
독일자유노조연맹의 무능력으로 인한 개혁의 한계를 지적하며 새로운 조직의 필요성을 느낀 40개 사업장과 기관의 동료들은 1989년 12월 20일 근로자의 이익 대변을 위한 논의를 통해 독립 노조의 설립을 호소하였다.
이들은 호소문에 자신들의 주장을 크게 3가지로 설명하였다.
첫째, 자신들은 오직 근로자의 이익만을 대변하기 위해 근로자의 이익은 기업경영진·국가의 이익 간에 대립이 존재하는 사실에서 출발한다고 밝히고 있다. 둘째, 친환경적일 경우 경제에 있어 효율성에 반대하지 않지만 경제 발전이 근로자의 부담으로 전가되는 것은 저지할 것이라고 하였다. 셋째로 그들은 사업장에서부터 인민의회에 이르기까지 생산의 목표와 형식을 공동 결정하며 국영 관리자의 선출과 해임 권리를 주장하였다.
1215호 30면, 2021년 4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