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연재] 해로 –
93회: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국제투명성기구(TI:Transparency International)는 독일 베를린에 본부를 두고 반부패운동을 하는 비정부기구(NGO)로, 매년 전 세계 국가들의 부패에 대한 인식을 조사하여 발표하고 있다. 이 단체는 부패를 “사익을 위해 위임된 권한을 남용하는 행위”로 정의하고 있으며, 공공부문의 부패에 대한 전문가와 기업인의 인식을 조사해 부패인식지수(CPI:Corruption Perceptions Index)를 발표한다. 부패인식지수 70점 이상은 ‘사회가 전반적으로 투명한 상태’이며, 50점대는 ‘절대 부패에서 벗어난 정도’로 해석하고 있다.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2023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에서, 대한민국은 100점 만점에 63점으로 조사 대상국 180개 나라 중에서 31위를 차지했다. 1위는 90점의 덴마크가 차지했고, 핀란드와 뉴질랜드가 87점으로 공동 2위, 독일은 79점으로 9위였다. 아시아 국가들의 순위는 홍콩(76점•12위), 일본(73점•18위), 타이완(68점•25위)으로 한국보다 좋은 평가를 받았다. 180개국 중 최하위는 11점을 받은 러시아였고, 179위는 12점을 받은 이란이 차지했다.

우리 대한민국은 빠른 경제성장으로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섰지만, 투명성의 잣대로 보면 아직도 선진국의 수준에 많이 못 미치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일반 시민들의 도덕성과 정직성은 세계도 부러워할 정도로 발전했지만, 공공부문의 영역에서는 투명성을 더욱 높여나가야 한다는 숙제를 여전히 안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의 ‘샘물호스피스’는 1993년 설립 초기 아주 영세하고 작은 비영리 단체일 때부터 1원짜리 하나까지도 투명하게 운영하고 보고했다. 그리고 공인회계사 감사를 받지 않아도 되는 작은 단체였지만, 자원하여 공인회계사의 감사를 매년 받아왔다. 감사 비용이 부담도 되었고 일도 많았지만, 그 덕분에 의료보험 문제나 세금 문제가 있을 때마다 정확하고 투명하게 회계 관리를 해 온 까닭에 매번 어려움 없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큰 유익은 투명한 재정관리를 한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믿고 후원할 수 있는 기관이 되었고, 그로 인해 후원이 증가하고 기관도 발전할 수 있었다. 투명한 경영이 성장과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다.

해로는 어떤가? 해로는 아직 재정이 부족해서 상근 직원의 급여를 자원봉사자 수준밖에 지급하지 못하고 있지만, 재정의 투명성만큼은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투명하게 운영하고 있다. 정기적으로 회계감사를 받고 있고, 매년 정기총회에서 회원들에게 투명하게 보고하고, 수시로 SNS를 통해 특별후원 내용을 보고하고 있다.

해로는 여러 봉사단체가 재정문제로 문을 닫은 사례를 잘 알고 있기에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재정관리에 민감하다. 해로의 재정은 상근 직원들은 물론 사무실에서 일하는 자원봉사자들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투명하게 관리되고 있다.

재정 수입의 대부분은 1년 60유로의 회원 회비와 후원금이다. 대표를 포함하여 3명의 상근 직원의 급여는 후원금이나 회비에서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의료보험에서 지급되는 봉사자들을 관리하는 행정비로 급여를 지급하고 있다. 상근 직원들은 석사 이상의 고학력에 베테랑 경력자들이지만, 의료보험에서 지급되는 급여는 자원봉사자보다도 작다.

해로의 봉지은 대표는 오늘 밤에도 호스피스 병실에서 임종이 가까운 파독 1세대 어르신의 병상을 지키고 있다. 해로의 봉사는 사명감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밤낮없이 파독 어르신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이들에게 하루빨리 정상적인 수준의 급여가 지급되는 날이 오길 바란다.

이렇게 해로가 어르신들을 섬기는 일을 많이 하니까, 독일 정부나 한국 정부에서 지원되는 재정이 당연히 있다고 생각하지만, 작은 봉사단체인 해로에 정부나 공공기관의 재정지원은 전혀 없다. 또 해로가 많은 일을 하고 있으니까, 해로가 재정도 풍성한 큰 단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파독 근로자 어르신들의 쉼터와 시니어 그룹홈을 만들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 재정이 넉넉지 않아 아직도 장소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절약하여 어렵게 모은 재정으로, 외롭게 지내고 계시는 우리 파독 1세대 어른들을 더 잘 섬기려고 여기저기 장소를 찾아 발품을 팔고 있지만, 아직은 힘에 겹다. 하지만 우리 해로가 가야 할 길은 우리 파독 1세대 어르신들, 특별히 질병과 여러 어려움으로 고통 받는 분들을 잘 섬기는 일이기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어떤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전진해 나갈 것이다. 우리는 믿는다. 우리가 투명하고 신실하게 우리에게 맡겨진 일을 한다면, 정의의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좋은 결과로 응답하실 것이다.

윤동주 시인은 “서시”에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라고 노래했다.

해로 봉사자들의 마음도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비록 아무도 돕는 이 없는 바람 부는 벌판에 서 있지만,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이, 민감하고 민첩한 마음으로 우리 파독 어르신들을 사랑으로 섬기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의 길을 흔들림 없이 걸어가려고 한다. 오늘도 바람이 스치운다.

“악한 자의 집은 망하겠고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하리라”(잠언 14:11)

박희명 선교사 (호스피스 Seelsorger)

1348호 16면, 2024년 1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