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연재] 해로 – 98회: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고대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가 한 말이다.

의사였던 히포크라테스가 한 말의 의미는 의술을 연구하고 정복하는 일은 끝없이 계속 해야 하는 일이지만, 그것을 하는 인간의 수명은 너무도 짧다는 의미였다고 한다. 따라서 히포크라테스의 말은 문맥상 예술이라는 말이 아니라 의술을 의미한다고 해야 하겠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어 ‘테크네(techne)’라는 말은 오늘날의 ‘기술’과 ‘예술’을 모두 포함하는 말이었고, 또 서구 역사에서 기술과 예술의 개념은 오늘날과 같은 미술의 개념이 분리된 18세기 중반 이전까지는 서로 섞여서 사용되던 말이어서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아무튼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은 히포크라테스가 처음 사용했던 맥락과는 다를지라도, 예술 작품의 영원성을 의미하는 명언으로 남게 되었다.

우리 어르신 중에는 고기를 드시지 않는 분들도 있다. 식사 메뉴로 고기반찬을 준비할 때는 이런 분들을 배려하여, 같은 반찬이지만 고기 없는 것으로 구분하여 두 가지를 준비하거나, 고기반찬 대신 다른 반찬을 한 가지 따로 준비하기도 한다. 어제 메뉴였던 ‘짜장면’도 고기 없는 짜장을 별도로 준비하여 드렸다. 옛날에 드셨던 짜장면과 같다고 하시며 모두 맛있게 드셨다.

고기를 안 드시는 분에게는 천국에 가면 하나님이 고기 맛이 어땠느냐고 물으시면 뭐라고 하실래요? 하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누리는 것도 축복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와 예술을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많이 보고 감상하는 것도 하나님이 이 땅에서 누리라고 주신 복이라고 생각한다. 독일에 와서 어르신들을 섬기는 동안에 시간이 되면 틈을 내어 하나님께서 주신 많은 것을 눈과 귀와 가슴에 담으려고 시간이 나는 대로 박물관이나 미술관 음악회에도 가려고 애쓰고 있다. 많은 역사적 문화와 예술이 풍성한 유럽에 있기에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서도 여기에서만 누릴 수 있는 볼거리들이 많이 볼 수 있어 힘든 사역 중에도 위로를 받는다.

“교포신문”에는 많은 읽을거리가 있어 좋다. ‘독일의 유네스코 유산’ 등 문화면에 나오는 많은 문화와 예술에 관한 정보는 매우 유익하기에 빠뜨리지 않고 자세히 읽는다. 이런 정보를 참고하여 가까운 곳에서 공연이나 전시회가 있다면 꼭 가보시기를 권한다.

3월 마지막 주 해로의 ‘화요 노래교실’에서는 특별한 이벤트가 있었다. 고난주간과 부활절을 보내는 시간과 어울리는 행사로 “그림으로 읽는 구약성서”라는 프로그램이었다. 해로에서 ‘요양보호팀’을 섬기고 있는 박노영 선생이 많은 시간을 들여 정성껏 준비한 시간이었다.

여행 가이드북 ‘트리플 베를린’의 작가인 박노영 선생은 그동안 “베를린 산책”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 해로의 어르신들과 함께 베를린의 역사와 미술을 현장에서 직접 함께 보면서 깊이 있고 생동감 있는 해설을 해주었고, 그때마다 우리 어르신들로부터 큰 호응과 칭찬을 받은 바 있었다. 아마도 해로에 나오시는 어르신들만의 혜택과 특전이 아니었나 싶다.

“그림으로 읽는 구약성서”는 미술작품을 통해 구약성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 그리고 하나님의 위대함을 알아가고 배우는 시간이 되었다. 세계 곳곳의 유명 미술관에 있는 명화들을 사진으로 가져다가, 구약성서의 이야기를 시대순으로 배열하여 중요한 사건과 인물을 한눈에 볼 수 있게 자세하게 설명해 주어서 신앙적으로도 매우 의미 있고 유익한 시간이었다. 미술 전문가의 뛰어난 안목으로 명화들을 설명할 때, 작가와 작품의 배경 스토리와 그림 속에 숨겨져 있는 여러 가지 의미들을 들으시는 어르신들의 입에서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해로의 그림으로 읽는 구약성서

한 예로,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에서 ‘아담의 창조’를 보면서 아담의 손끝과 하나님의 손끝이 갖는 의미를 들으며 하나님의 손끝에서는 부성애가 느껴졌다면, 그 마음을 알지 못하는 심드렁한 아담의 모습도 새롭게 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미술사와 관련한 그림의 변천에 대해서도 배우게 되었는데, 우리 어르신들이 의외로 큰 관심을 보이며 집중하며 들으셨고 중간중간 질문도 하셔서 놀랐다. 비록 시력이 약해지신 어르신들이지만, 마음은 여전히 젊은 시절의 열정으로 가득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날 본 명화들은 대부분 수백 년 전의 것들이지만 지금까지 오래도록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된 것들도 많아서, 그야말로 “예술은 길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어르신 중에는 어릴 적에 미술가의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형편상 꿈을 접고 독일에 파독 광부와 간호사로 오신 분들도 있다. 그러나 꿈을 간직하고 지금도 틈틈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면서 나름대로 작품 활동을 하고 계시는 분들도 많이 계신다.

S이모님은 90이 넘은 연세에도 문단에 글을 써서 발표하고 계신다. Y이모님은 80 중반을 넘긴 연세에도 첼로연주를 하고 계시고, K이모님은 멋진 한국화를 그리시면서 언젠가 그림 전시회를 하실 꿈을 간직하고 계신다.

우리 해로에서는 여러 모임과 활동을 할 수 있는 “쉼터”가 주어지면 우리 어르신들의 “예술혼”을 살려서 멋진 작품을 발표하고 전시회와 음악회를 하는 공간으로 활용하려는 꿈을 가지고 있다. 인생은 짧기에 우리 파독 어르신들의 아름다운 예술 작품과 활동들이 활짝 꽃피어 오래도록 기억되기를 기도한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전도서 3:11)

박희명 선교사 (호스피스 Seelsorger)

1358호 18면, 2024년 4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