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전쟁 – 전쟁과 약탈 그리고 회복 (16)

사상 첫 문화재 구출 부대 ‘모뉴먼츠 맨’ ➃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가 약탈한 문화재와 예술품이 속속 원래의 합법적 소유자나 그 상속인들을 찾아간다. 특히 반환 문제가 제기된 예술품과 문화재 소장자가 그 취득 경위와 역대 소장자의 획득 정당성을 입증하라는 ‘워싱턴 원칙’ 합의 이후 나치 시대 약탈품의 회복이 가속화하고 있다.


■ 명작을 불태우라는 명령에 ‘기지’로 대처한 농부의 정체는

1944년 여름, 철수하던 나치 독일군은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 파괴하고, 이탈리아인들을 상대로 온갖 범죄를 저질렀다. 그러다가 독일 낙하산 부대가 방어 요새로 사용하기 위해 몬테구포니 성을 장악했다. 공간이 필요했던 독일군 지휘관은 피난민을 다 쫓아내고 그곳 한 농부에게 복도에 빼곡히 세워져 있는 작품들을 중정(中庭)에 모아 불태우라고 명령했다.

인류의 유산이 한순간에 재로 변할 비극이 일어날 참이었지만 농부는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그는 유명한 토스카나 지방의 적포도주로 부대원들을 극진히 대접했다. 부대원들이 술에 곯아떨어졌을 때 작품들을 보이지 않게 치웠고, 결국 계속 와인을 마신 군인들은 눈앞에 사라진 걸작들을 파괴하지 못한 채 며칠 뒤 그 성을 떠났다.

위기의 순간, 기지를 발휘한 그 농부는 미술품을 지키는 책임자였을 수도 있겠다. 사실 전쟁말기 철수하던 독일군에겐 미술품을 운반할 트럭도, 트럭을 움직일 연료도 부족한 터였다.

몬테구포니 성에서는 1944년 7월 20일까지도 연합군의 공습 포격 소리가 들렸다. 독일군이 물러나자 이런 명작들이 몬테구포니 성의 평범한 가구 옆, 벽에 비스듬히 세워져 있었다.

‘문예 부흥의 아버지’ 치마부에(Cenni di Pepo Cimabue, 1240?~1302)와 보티첼리 등의 일부 작품은 나무 천장 아래의 벽에 걸려 있었다. 포탄 한 방이면 이런 대작들이 바로 불에 탈수도 있었다. 명작 파수꾼들은 그림 앞에서 기도했고, 마침내 응답을 받았다.

연합군 지중해 작전 최고사령관인 해럴드 알렉산더(Harold Alexander, 1891~1969) 영국 장군이 1944년 8월 3일 지프를 타고 몬테구포니 성에 도착했다. 포성은 멈추었고, 인류의 유산이 전쟁의 화마에서 사라질 위기도 넘겼다. 세 대의 지프에는 MFAA 요원 프리드리히 하르트Frederick Hartt 소위도 있었다.

알렉산더 장군은 보티첼리의 ‘봄’ 앞에 서서 경탄의 눈길로 한참 바라보았다. 키가 크고 흥분을 잘 하는 예일대 출신 사학자인 하르트 소위는 코나의 빌라 디 토레의 창고에서 나무 상자에 포장 된 미켈란젤로 조각들을 발견했다.

몬테구포니 성 주위에는 여전히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지만 MFAA 요원들과 마을 주민은 성안에서 숙식하며 263점을 찾아냈다. 작품들은 다행히 조금도 변하지 않아 피해가 없었다. 1944년 8월 4일 연합군이 처음 피렌체에 들어왔다. 북쪽은 여전히 독일군과 교전 중이라 도시는 안전지대가 아니었다. 작품들의 중요성을 아는 모뉴먼츠 맨은 1945년 7월

22일 기차 열세 칸에 예술품들을 실어 고향인 피렌체로 보냈다.

■ 퇴각 나치군이 슬쩍한 ‘꽃병’ 자리에 “도난당함”

그러나 모든 작품이 다 회수된 것은 아니다. 1943년 후퇴하던 나치 독일군이 피렌체 팔라티나 미술관이 1940년 인근 시골에 대피시켰던 18세기 네덜란드 바로크 대가 얀 반 하위쉼(Jan van Huysum, 1682~1749)의 정물화 ‘꽃병’ 한 점을 들고 가버렸다. 토스카나 지역을 다스리던 대공 레오폴드 2세가 1824년 구입한 그림으로, 전쟁 전에 다른 네덜란드 화가들의 작품과 나란히 걸려 있었다.

전쟁 후 ‘꽃병’ 그림은 한 독일 가정이 소유했다. 이 가정의 변호사는 군인이 그림을 훔친 것이 아니고, 부인에게 선물하기 위해 장터에서 샀다고 주장했다. 그러곤 중개인들을 내세워 팔라티나 미술관에 되팔려고 했다. 그러나 미술관은 “그림은 이미 이탈리아 국가가 소유한 도난품이 라서 되살 수 없다”라며 이 제안을 거부했다.

이 그림은 1991년 독일이 통일되면서 반환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반환 노력은 모두 헛일로 돌아갔다. 이후 1990년대에 런던 경매회사에 나오기도 했지만 낙찰되지 않았다. 독일 정부도 취득시효 30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개인 소유물에 대해 개입하지 못한다며 수수방관했다. 작품 가격대는 230만 달러로 추정된다.

이에 독일 출신인 아이케 슈미트(Eike Schmidt)가 우피치 미술관장이 되면서 반환 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했다. 팔라티나 미술관이 있는 피티 궁을 책임진 슈미트는 2019년 1월부터 환수 활동을 시작하면서 ‘꽃병’ 그림이 있었던 원래 자리에 흑백 사진을 붙여두고 이탈리아어, 영어, 독일어로 “도난당 함”이라고 써 붙였다

슈미트는 성명에서 그림 도난과 관련해 “제2차 세계대전과 나치 공포의 상처가 아직도 치유되지 않았다. 독일은 우리 미술관에 작품을 반환할 도덕적 의무가 있고, 나는 되도록 빨리 나치가 약탈한 다른 작품과 함께 이 작품이 돌아오기를 희망한다”라고 밝혔다.

결국 그림은 원래의 위치로 회복되었다. 2019년 7월 19일, 문제의 그림은 공식적인 절차를 거쳐 미술관으로 돌아왔다. 슈미트의 환수 노력은 6개월 만에 결실을 보았다.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이 그림을 피렌체에서 엔조 모아베로 밀라네시 이탈리아 외무장관에게 반환했다.

시효를 이유로 팔짱만 끼고 있던 독일 정부가 개입하면서 75년 만에 반환된 것으로, 나치 전시 약탈품에 대해 취득시효 제한을 철폐하라는 목소리가 국제 사회에서 힘을 더했다. 슈미트는 “마침내 작품이 돌아왔다. 그 싸움은 험난했다”라면서도 독일 정부에 감사를 표했다.

1295호 30면, 2022년 12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