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전쟁 – 전쟁과 약탈 그리고 회복 (37)

구트만 가족의 회복 이야기 ➁

오락가락 회복 정책에 뭇매 맞는 네덜란드

시몬 굿맨은 1995년 10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발간한 1994년 전시회 카탈로그 사진의 작품 한 점이 가문의 것임을 바로 알아보았다. 에드가르 드가가 1890년에 그린 파스텔화 ‘굴뚝이 있는 풍경화’로, 카탈로그에는 시카고 근처에 사는 제약업계의 억만장자 대니얼 설(Daniel C. Searle)의 소유로 되어 있었다.

작품 이력에 독일 화상인 한스 벤드란트(Hans Wendland, 1880~1965)라는 이름이 눈에 띄었다. 나치 강탈 예술품 회복 전문 변호사인 윌리 코트(Willi Korte)는 “벤드란트는 프랑스에서 나치가 약탈한 예술품을 스위스로 밀수해 판매하는 데 누구보다 책임이 크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림의 현재 소유자를 확인한 굿맨 형제들은 설에게 반환을 주장했다. 이들은 “정의가 실행되는 것을 보고 싶다”라며 합법적 원래 소유자에게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설은 변호사를 통해 “나치 정권의 희생자에게 동정심을 느낀다. 그러나 이번 경우에는 예술품 도난 사건과는 다르다”라며 반환 요청을 거절했다.

이에 굿맨 형제들과 설 간의 소득 없는 소통 끝에 1996년 굿맨 형제들이 뉴욕과 시카고 법원에 작품 반환 소송을 제기하면서 법정으로 넘어갔다. 이 소송은 미국에서 전시 예술품 약탈과 관련해 개인이 제기한 첫반환 분쟁 사례여서 국제적으로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 이전에는 피탈국가가 미국의 미술관을 상대로 반환 소송을 냈다.

해결, 후손과 현재 소장자 절충, 그리고 기록

반환을 거부하는 설에 대한 비판이 커지면서 영국 런던에 있는 국립미술관은 소장품에 나치 약탈품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모든 소장품을 조사했다. 이런 조사는 당시로서는 세계에서 처음이었다. 그 결과 독일 당국에 의해 약탈된 고흐 작품 한 점을 찾아내어 반환했다.

1998년 8월 7일 굿맨은 설에 전화했고, 몇 시간 뒤에 설은 “우리는 합의했다”라고 발표했다. 그림 소유권은 설과 굿맨의 상속자들이 공동으로 소유하기로 했다.

설이 그림에서 자신의 지분을 미국의 3대 미술관으로 꼽히는 시카고 미술관에 기증함에 따라 시카고 미술관은 구트만 후손들에게 24만 3750달러를 지불했다. 설은 그만큼의 금액을 소득세 공제를 받았다.

드가의 이 작품은 1999년 6월 11일 시카고 미술관에 전시되었다. 전시 작품 아래에는 합의한 조건에 따라 다음과 같은 설명이 붙었다.

“프리드리히, 루이스 구트만 구입, 대니얼 설 기증.”

구트만 가문이 소유했던, 450년 전에 제작된 황금 시계인 ‘오르페우스 시계(rpheus Clock)도 회복했다. 2011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미술관은 르네상스 시대에 제작된 그 시계를 수십 년간 간직하다 그 가격을 지불했다. 지불과 관련하여 독일이 공식적으로 사과했다고 시몬 굿맨은 가문의 컬렉션 약탈과 회복 과정을 서술한 가문의 일대기 『오르페우스 시계』(1996년)에서 밝히고 있다. 독일의 사과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귀하의 가족에 발생한 일에 유감을 표합니다. 또한 우리는 이 문제를 최소한으로나마 바르게 해결할 기회를 갖게 된 것에 감사합니다.”

경매에 나타난 그림을 되찾는 행운도

거의 80년간 행방불명되어 굿맨이 추적했던, 아버지 루카스 크라나흐(Lucas Cranach der ltere, 1472~1553)가 1530년대에 그린 ‘작센 선제후 요한 프리드리히 1세의 초상화(ortrait of John Frederick I, Elector of Saxony)가 미국에서 발견되었다. 초상화 주인공 프리드리히 1세(1503~1554)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선출하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일곱 명의 선제후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는 종교개혁과 루터의 열렬한 지지자였고, 비텐베르크대학 설립자 가운데 한 명으로 알려졌다.

크라나흐는 궁정화가로서 선제후 부부의 그림과 초상화도 많이 남겼다. 작품 반환에 중재 역할을 한 크리스티는 2018년 11월 10일자 자료에서 “프리드리히는 크라나흐의 최고 지원자이자 친구로 그의 초상화는 크라나흐의 가장 세련된 묘사력을 보여준다”라고 설명했다.

요한 프리드리히 1세 초상화는 1922년 하반기 프리츠 구트만의 집으fh 들어갔다. 그러나 1940년 이후 프리드리히 1세 초상화의 행적이 어둠속에 묻혔다. 후손들은 두 세대에 걸쳐 프리드리히 1세를 추적했지만 허사였다. 이들은 작품을 미국 모뉴먼츠 재단과 독일 분실 예술품 재단에 분실예술품으로 등록해두었다. 굿맨이 쓴 『오르페우스 시계』에서도 이 초상화를 포함한 작품들을 추적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뜻밖의 반전은 2014년 경매회사에서 벌어졌다. 크리스티는 “놀랍게도 이런 작품이 살아남은 것은 크라나흐의 혁신과 독특한 화풍 덕분”이라며 “과거 흑백 사진으로만 보던 그림을 다시 볼 수 있어 흥분된다”라며 작품 발견 사실을 굿맨에게 알렸다.

크리스티의 회복위원회 국제담당 이사 모니카 드곳(Monica Dugot)은 작품 판매 이후 “이 그림이 다시 등장한 것은 선의와 인내, 협조를 통해 우호적이고 공정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라며 “나치의 박해와 그 후 수십 년이 흘렀지만 복잡한 회복 과정에서도 합법적 소유자가 분실 예술품을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크리스티는 이 작품을 획득했으나 나치의 손에 가족이 희생된 고통을 아는 사람이 접근해 왔기에 구트만 후손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중재했다고만 밝힐 뿐 자세한 반환 과정은 소개하지 않았다. 굿맨은 “우리 가족은 이 초상화가 발견되어 너무 흥분했다. 작품을 전달한 사람과 회복할 수 있도록 중재해준 크리스티에 감사하다”라고 밝혔다.

요한 프리드리히 1세 초상화는 2014년 4월 경매에 등장해 770만 달러의 몸값을 자랑하고 새 주인을 찾아갔다.

1318호 30면, 2023년 6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