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환보다 대여 택한 영국 ➀
약탈품 반환의 역사는 깊다.
기원전 1세기 로마 공화정 시대 유명 정치인이자 작가였던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 BC 106~BC 43)는 기원전 73년부터 3년간 시칠리아 총독을 지낸 베레스(Gaius Verres, BC 120?~BC 43)를 유물과 예술품을 훔쳤다며 재판에 넘겼다. 전쟁이 아닌 평화시의 약탈과 절도이지만 베레스는 ‘로마에 대한 불충’으로 유죄 선고를 받았다.
판결 직후 그가 시칠리아 사원 등에서 탈취한 유물들은 그대로 복원되었다. 문화재와 예술품 반환의 최초 기록 사례다. ‘정복 제국’ 로마에도 반환의 전통이 면면히 이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가 약탈한 문화재와 예술품이 속속 원래의 합법적 소유자나 그 상속인들을 찾아간다. 특히 반환 문제가 제기된 예술품과 문화재 소장자가 그 취득 경위와 역대 소장자의 획득 정당성을 입증하라는 ‘워싱턴 원칙’ 합의 이후 나치 시대 약탈품의 회복이 가속화하고 있다.
약탈 문화재 환수는 유물이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이동하는 단순한 물리적 위치 변경이나 한 나라의 컬렉션 부족 부분을 채운다는 문화적 자존심 높이기 차원을 넘어서는 문제다. 있어야 할 곳으로 되돌아가는 제자리 찾기라는 도덕적 당위성뿐만 아니라 약탈에 스며든 역사적 핏빛 폭력과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어루만지고 쓰다듬는 힐링의 길이다.
■ 영국의 반환 요구 처리 방법은 ‘대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쏘아 올린 식민주의 유물 반환 선언은 영국도 강타했다. 런던에 있는 세계 최대급인 영국박물관(British Museum)은 서브 사하라에서 가져온 수많은 유물을 소장하고 있지만, 접근법을 달리하고 있다. 아프리카 국가에 돌려주는 회복은 영국의 선택지 안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영국법은 국립 박물관과 미술관은 그 컬렉션을 처리하지 못하도록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신 아프리카 국가들과 파트너십 프로그램을 통해 소장품 대여와 박물관 건립, 컬렉션 구성과 큐레이터 교육 등을 자문하고 있다. 한 해 600만 명이 찾는 영국박물관은 지금은 나이지리아로 바뀐 베닌 왕국에서 약탈한 유물 700여 점을 보유하고 있다.
하트윅 피셔(Hartwig Fischer) 영국박물관장은 “컬렉션의 가치는 그 폭과 복합성, 통일성에 있다. 박물관을 누가 소유하든 그 혜택이 결국 세계 시민 모두에게 돌아가는 보편성을 추구한다”라며 프랑크 리스테르 프랑스 문화부 장관과 비슷한 투로 말한다.
영국박물관은 ‘상당수의 유물’을 2023년 나이지리아 베닌시에서 문을 여는 박물관에 대여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서부 아프리카 가나 수아크라에 박물관을 건립하려는 가나 관료들과도 비슷한 이야기, 즉 대여 형식의 유물 반환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아프리카로 가는 모든 유물의 소유권은 영국박물관이 보유한다(<뉴욕타임스>, 2019년 11월 22일자 기사).
■ “사과는 싸구려 ⋯진정한 사과는 유물 반환”
호주에서 태어난 영국 인권 변호사이자 『역사는 누구 소유인가(Who Own History)?』의 저자 제프리 로버트슨(Geoffrey Robertson)은 영국박물관의 이런 논의는 한참 부족하다고 비판한다. 로버트슨은 영국박물관은 나이지리아에 1897년 영국이 약탈한 조각과 황동 평판인 베닌 브론즈를 모두 반환하라고 촉구한다.
로버트슨은 “식민시대의 야만성에 대해 거의 매주 사과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런 사과는 싸구려”이고 “진정한 유일의 사과는 약탈품을 돌려주는 것”이라고 유럽 박물관을 강하게 다그친다. 그는 유럽 박물관들은 폭력적인 식민지 상황을 진지하게 마주 보려 하지 않다고 꼬집는다. 박물관들은 약탈한 유물에 대해 ‘절반의 진실’과 ‘자화자찬’으로 가득한 설명을 붙여둔다고 비판한다.
‘사부아-사르 보고서’의 공동 저자 베네딕트 사부아는 “유럽 박물관은 이런 유물들이 처음 있었던 곳에서 어떻게 획득했는지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라고 뼈있는 한마디를 더한다.
서브 사하라 국가들이 반환을 요구하는 대표적인 문화재와 유물을 살펴보기로 한다.
■ 서브 사하라 최고의 예술품 ‘베닌 브론즈’
“왕궁은 사각형이고, 하를럼네덜란드 서부 도시 크기다. 사방은 마치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특별한 벽으로 둘러져 있었다. 많은 호화 궁전과 저택, 신하들의 거주지, 아름답고 긴 네모난 회랑으로 구분되어 있다. 나무 기둥이 받치고 있는 그 회랑은 위에서부터 아래에 이르기까지 청동 조각으로 덮여 있다. 청동 조각에는 그들이 치러 이긴 전쟁과 전투 장면이 새겨져 있었고, 매우 깨끗하게 관리되어 있다.”
네덜란드 의사이자 작가 올페르트 답퍼(Olfert Dapper, 1636~1689)가 1668년에 펴낸 『아프리카 설명(Description of Africa)』에서 베닌 왕국을 묘사한 대목 가운데 일부다. 17세기 유럽인이 베닌 왕국을 받아들인 인상이다.
사하라 이남 서부 아프리카의 가장 대표적인 예술품이자 문화유산으로 꼽히는 베닌 브론즈(Benin Bronzes)는 12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번성했던 베닌 왕국에서 만든 예술품이다. <BBC>가 영국박물관과 공동으로 선정한 ‘세계사 100가지 유물’의 하나로 소개할 정도였다(<BBC>, 2010년 9월 11일자 기사).
베닌 왕국에서 제작한 정교한 동판 조각인 베닌 브론즈는 나이지리아가 독립한 1963년부터 줄기차게 반환을 요구해 왔다. 나이지리아는 베닌 왕국에서 약탈한 인간과 동물의 유해를 비롯해 유물 5000여 점을 반환하라고 서구 사회를 향해 공식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이에 영국박물관은 3년 이내에 나이지리아 남부 에도 주에 있는 ‘신베닌 왕실(New Benin Royal) 박물관’에 “일시적으로” 돌려주겠다고 2018년 12월 발표했다. 완전 반환이 아닌 대여와 같은 미봉책이지만 그래도 나이지리아는 베닌 브론즈 환수의 전기를 맞은 것으로 간주한다.
1328호 30면, 2023년 8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