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문화사업단의 문화이야기 / 136

커피이야기(3)

인종도 문화도 다르지만 그들은 모두 커피를 사랑한다. 세계인의 사랑을 천년 넘게 받아온 커피. 복잡하고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커피 한 잔은 고단한 인생을 위로한다.
문화사업단에서는 커피를 주제로 다양한 시각에서 커피를 살펴보고자 한다.
커피의 종류는 물론 커피의 유럽 및 서구사회로의 전파과정을 살펴보고 공정무역과 관련 커피 생산과정을 살펴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 커피가 들어온 과정과 당시 우리나라에서의 커피 문화를 되돌아본다.

농부의 검은 눈물, 커피

손만 뻗으면 커피가 손끝에 닿는 세상이다. 실로 커피는 석유 다음으로 세계적으로 거래가 활발한 품목이다. 그러나 석유 솟는 나라에 ‘석유 재벌’이 있다면 커피 콩 떨어지는 세상의 한켠엔 ‘커피 빈민’이 있다.

전 세계가 소비하는 커피의 90%는 과테말라, 에티오피아, 네팔, 페루 등 경제상황이 어려운 제 3세계의 국가에서 재배하고 있다. 그들이 바로 부유한 국가에서 누리는 즐거운 커피문화를 제공하는 생산자들이다. 그들에게 커피는 생계의 수단이자 삶의 터전이다. 그러나 커피의 소비가 매년 늘어나고 그 가격 역시 나날이 상승일로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산자들은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지나치게 판매자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불공평한 유통구조 때문이다.

옥스팜(Oxford Committee for Famine Relief)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1-2002년에 영국의 소비자가 우간다산 커피에 지불한 돈 가운데 우간다에 있는 커피 재배 농민에게 돌아간 몫은 0.5퍼센트에 불과했다. 즉, 커피 제조기업이나 도매 무역업자가 우간다 농민에게 커피콩을 판매가의 0.5퍼센트에 불과한 헐값으로 사들이고 있는 것이다.

커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커피콩인데 농민이 가져가는 이익은 겨우 0.5퍼센트이고 나머지 99.5퍼센트는 유통과정에 참여한 도매 무역업자와 커피 제조기업이 가져가는 셈이다. 주객전도도 이 정도면 너무 심한 것이 아닐까?

이러한 통계는 실질적인 생산자의 몫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비슷한 예로 이디오피아 커피 경작 농민의 1년 수입은 60달러, 과테말라 집단농장의 농민들은 커피콩 100파운드를 수확해도 손에 쥘 수 있는 건 3달러에 불과하다. 1년 동안 농장을 떠나지 않고 재배해낸 노동의 대가로 보기에는 금액이 터무니없이 적다. 이러한 이유로 최소한의 생계조차 유지하지 못한 채 농사를 포기하는 농민들도 생겨난다.

커피 생두 가격이 역사상 가장 낮게 폭락했던 2000년대 초 ‘커피 위기’는 세계 무역구조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과테말라 정부는 기아로 인한 비상사태를 선언했고, 엘살바도르 커피 생산지역 아동의 85%가 영양실조 상태였다. 그러나 이 시기의 커피 소비자가격은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불공평한 무역 제도로 대부분의 커피가 들어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루 16시간을 일하고도 그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고작 밥 한 끼가 전부다. 그래서 기존 커피거래의 불공정한 유통구조를 타파하고 판매업자에게 지나치게 쏠려있는 이윤을 돌려 최초의 생산자들에게 적당한 수준의 가격을 지급하자는 목소리에 힘이 보태어졌다. 이것이 바로 공정무역운동이다.

공정무역(Fair Trade)

공정 무역을 통한 커피 수입 과정은 일반 커피 수입 과정과는 다른 원칙을 지닌다. 커피 원두를 생산하는 생산자와 그 원두를 구매하는 소비자 사이의 중간 거래인들을 배제하는 직거래가 바로 그것이다. 중간에서 커피 가격을 부풀리고 생산자들의 이익을 상당 부분 부당하게 가로채는 중간 상인들을 배제함으로써, 생산자에게는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을 수 있게 만들고 소비자는 조금 더 합리적인 가격에 소비활동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또한 공정 무역을 통해 커피 원두를 판매할 수 있게 지정해준 커피 농장에서는 농약과 화학 비료의 사용을 하지 않고 친환경 농법으로 커피 원두를 재배하기 때문에, 개발도상국의 토양 오염과 생산자의 건강 문제, 소비자의 건강 문제까지 한 번에 해결 해준다. 여기에 덧붙여 공정 무역은 최저 가격 보장제를 지지한다. 최저 가격을 두어서 시장가격이 이 수준 이하로 떨어질 경우에도 농민들이 지속 가능한 생산을 위한 비용을 지불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는 것이다.

이를테면 천재지변, 흉작 등으로 인해 생산자들이 생산해 낸 생산품의 시장 가격이 최저 가격보다 떨어질 경우, 이들이 여기에 타격을 입어서 앞으로 생산 활동을 포기하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보호해 주는 수단으로 볼 수 있다. 생산자의 입장에서는 어떤 상화에서든 최소한 생산 활동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의 가격을 보장받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의욕적이고 적극적으로 생산에 임할 수 있다.

커피 위기가 지나간 지금도 주요 생산지인 남미와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은 저개발국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유무역이 양국을 모두 부유하게 만든다는 ‘비교우위론’은 하루 3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세계 27억명 인구에게 말 그대로 ‘남의 나라’ 이야기다.

이런 저개발국 생산자들의 자립을 지원하기 위해 공정무역 커피는 커피 원두를 사들일 때 ‘최저가격’을 보장한다. 또한 생산자협동조합에 ‘공동체 발전기금’을 지원하는데, 이 기금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조합이 스스로 결정한다. 이뿐만 아니다. 노동자들도 공정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

알려져 있듯 대부분의 커피 재배 농가의 노동자들은 다국적기업과 종속적 관계에 놓여 값싼 임금을 받으며 혹독한 노동에 시달린다. 이에 유럽에서 공정한 가격에 커피를 거래해 전세계 소농들에게 더 나은 대가를 제공하자는 공정무역 운동이 일어나, 1988년 네덜란드에서 첫 공정무역 커피 브랜드인 ‘막스 하벌라르’가 탄생했다. 커피는 최초의 공정무역 상품으로 지금까지도 공정무역으로 거래되는 상품 중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한다. 300개 이상의 커피 생산자 단체가 국제 공정무역 조직으로 등록됐으며, 이들은 50만 농민 가구를 대표한다.

이러한 공정무역이 가장 활성화된 지역은 네덜란드와 독일, 영국, 프랑스, 스위스 등의 유럽이다. 그리고 여기에 해당되는 제품은 커피, 차, 설탕, 과일, 꽃, 의류, 화장품, 축구공 등 수백 종에 이르고 있으며, 영국과 프랑스 등에서는 대형유통매장에서 페어 트레이드 관련 제품만 따로 모아 파는 코너도 마련해두고 있다. 영국에선 소비되는 커피의 25% 이상이 페어 트레이드 커피일 정도로 주류가 되어가고 있다.

물론 일반 제품보다 가격은 약간 비싸지만, 비교적 적은 액수로 지구촌의 빈곤문제 해결에 일조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페어 트레이드 제품을 찾는 소비자가 증가하고 있다.

1328호 23면, 2023년 8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