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82)

독일은 서독 시절이던 1976년 8월 23일 유네스코 조약에 비준한 이래, 48건의 문화유산과, 3건의 자연유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탈리아와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세계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교포신문사에서는 2022년 특집 기획으로 “독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문화유산을 매 주 연재한 바 있다.
2023년에는 2022년 기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신청된 8곳과 신청 후 자진 탈퇴, 또는 유네스코에 의해 등재 거부된 문화유산을 살펴보도록 한다. -편집실

독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살고 싶은 도시로 손꼽히는 하이델베르크. 독일에 거주하는 한국 사람들은 아마도 모두가 이곳 하이델베르크를 한 번 이상 방문하였을 것이다.

하이델베르크 도시에는 아름다운 고성과 강 그리고 자유로운 도시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고성에는 독일과 유럽이 간직한 종교와 전쟁에 관한 역사가, 대학에는 자유로운 사색과 자치의 기억이, 그리고 정갈한 구시가지에는 유럽의 활기와 전통을 그대로 보존하는 여유로움이 있다.

이 작은 도시는 늘 학생과 외국인으로 북적인다. 대학의 도시, 철학의 도시인 이곳에 하루 수천 명의 관광객이 다녀가지만 어느 골목 어느 광장에서든 차분하고 기품 있는 공기를 호흡할 수 있다. 칼스버그 황태자가 첫사랑에 빠지고, 괴테가 빌레머 부인과 밀회를 즐기고, 야스퍼스가 목숨 걸고 사랑을 지킨 곳이 바로 이 도시다.

“오래 전부터 난 그대를 사랑했다네.
나 그대를 어머니라 부르고 영원히 노래를 바치리.
그대, 내가 아는 한
조국의 가장 아름다운 도시여!”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로부터 ‘시인 중의 시인’이라는 찬사를 받은 독일 시인 횔덜린. 그가 지은 ‘하이델베르크’라는 송가의 한 구절이다. 횔덜린뿐만 아니라 많은 예술가들이 하이델베르크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문장을 남겼다.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도 ‘세상 모든 다이아몬드를 뿌려놓은 듯 아름다운 곳’이라고 극찬한 바 있다.

광장문화인 유럽의 중세도시답게 하이델베르크의 구시청사 앞에도 직사형의 마르크트 광장(Marktplatz)이 있으며, 광장 한 가운데에는 헤라클레스 동상과 분수대가 있다. 유럽인들은 헤라클레스를 매우 좋아해서 그리스 아테네는 물론 로마, 피렌체 등 유럽의 나라를 불문하고 주요도시마다 헤라클레스 상을 세웠다.

한편 이 광장에서는 중세에 이교자들과 마녀로 낙인 직힌 자들을 공개 재판후 화형 시켰다고 한다, 광장 한쪽에는 1685년 가톨릭을 신봉하는 군주가 선제후가 되어 개신교들을 가톨릭으로 개종시키려고 세운 성모마리아 상이 있는 등 하이델베르크는 종교개혁의 출발지이자 다시금 가톨릭으로 복귀한 도시이다.

광장 서쪽의 성령교회(Heiliggeistkirche)는 1398년 선제후 루프레히트 3세에 의해서 12년 만에 완성된 영내 최대의 교회이자 하이델베르크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로서 가톨릭을 예배하다가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로 변했으나, 현재는 다시 가톨릭교회가 되었다.

특히 30년 전쟁 때에도 전혀 피해를 입지 않은 바로크 양식의 돔이 특징인 성령교회의 지하에는 하이델베르크를 다스리던 역대 선제후들의 무덤이 있다.

그런데, 신성한 교회에서 장사꾼들을 쫓아냈던 예수와 달리 교회의 광장 쪽 벽에 덧대어 만든 기념품 가게들이 즐비한 것이 매우 인상적이다. 광장의 동쪽에 있는 시청사는 30년 전쟁 때 무너진 것을 1789년에 바로크 양식으로 복구했으며, 시청사 1층은 관광안내소가 있다.

한편, 성령교회의 남쪽에 있는 거대한 르네상스식 건물을 “시민의 집”이라고도 하는데, 시민의 집은 1592년 30년 종교전쟁 당시 프랑스에서 포목상을 하던 칼빈주의자 샤를 베를리에가 프랑스의 박해를 피해서 개신교의 발상지인 하이델베르크로 이주하여 지은 집이라고 한다. 시민의 집은 2차 세계대전 중에도 피해를 입지 않아서 시청사가 파괴되자 잠시 시청사로도 사용했다고 한다.

하이델베르크는 희곡 ‘알트하이델베르크(Alt-Heidelberg)’ 무대가 된 곳이다. 황태자 카를 하인리히가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유학하던 중 카페에서 일하는 소녀 케티와 만나 사랑에 빠지고 또 이별하게 되는 젊은 날을 그린 이야기다. 이 희곡은 후에 할리우드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으로 다시 태어나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대학생들이 많으니 그들이 찾는 학사주점 또한 많다. 그중 가장 유명한 곳은 역시 ‘알트하이델베르크’에 등장한 ‘춤 로텐 옥젠(Zum Roten Ochsen)’ 이다. 1703년에 문을 연 맥줏집으로 여전히 많은 사람으로 붐빈다. 이렇게 오래도록 이곳에서 영업하다 보니 작가 마크 트웨인, 영화배우 메릴린 먼로나 존 웨인은 물론, 철혈재상이라고 불리는 비스마르크도 이 술집의 단골이었다고 한다.

‘알트(Alt,)’란 말이 품고 있는 묘한 향수와 애틋함 역시 도시 곳곳에 묻어 있다. ‘영원한 청춘’ 괴테 역시 같은 생각 아니었을까. 환갑이 훌쩍 넘은 나이에 만난 서른 살 연인 마리안네와 함께 이곳에서 데이트를 즐겼다고 한다. 그들은 연서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나누었던 것으로도 유명한데, 마리안네가 쓴 시 구절 ‘사랑하고 사랑받은 나는 이곳에서 행복했노라’는 괴테와 하이델베르크를 여행하던 때를 노래한 것이라고 한다.

1340호 31면, 2023년 11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