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라 함부르크 무역관 윤태현 과장
4월이 되면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전화를 걸 때 다시 한 번 시계를 보게 된다. 한국과의 8시간 시차가 7시간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고작 1시간 차이지만 혹시나 아직 주무시고 계시진 않을지 한 번 더 확인하게 된다.
이렇게 독일과 한국의 시차가 1시간 줄어드는 건 일광 절약 시간제, 이른바 서머타임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서머타임이 되면 새벽 2시를 기해 시침을 시계 방향으로 1시간 더 돌린다. 올해도 지난 3월 26일 새벽 1시에서 2시를 뛰어 넘어 바로 3시가 되었다.
서머타임은 매년 3월 마지막 주 일요일에 적용되고 10월 마지막 주 일요일에 다시 해제된다.
독일은 농업에 필요한 일광을 더욱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1916년 이러한 서머타임을 도입했다. 1950년 폐지했으나, 1970년대 오일 쇼크에 따른 에너지 절약을 위해 1980년 다시 도입하여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유럽연합(EU) 차원에서는 1996년부터 도입해 사용하고 있으며, EU 외에도 전 세계적으로 약 70여 개 국가에서 서머타임을 이용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한때 1949년부터 1960년까지 실시한 적이 있다. 이후 잠시 폐지했다가 1988년 서울올림픽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미국, 유럽 등 다른 국가들과의 시간대를 맞추기 위해 1987년부터 실시했고, 이후 1989년에 완전히 폐지했다.
그럼 이렇게 각국에서 서머타임을 6개월 단위로 적용하고 해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침을 1시간 앞으로 돌리면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야 하지만, 저녁에는 야외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 독일 함부르크를 기준으로 봐도, 지난 3월 25일에는 6시 11분에 해가 떠서 18시 42분에 해가 졌지만, 3월 26일에는 7시 9분에 해가 떠 19시 44분에 해가 졌다. 불과 하루 만에 1시간가량이 바뀐 것이다.
특히, 해가 점점 길어지는 7월에는 하루에 약 17시간 정도 해(日)를 볼 수 있다. 지난해 7월 2일 일출은 4시 55분이었고 일몰은 무려 21시 52분이었다. 이 시기에 위도가 더 높은 북부 유럽에서는 백야 현상도 볼 수 있었다.
이처럼 해가 길어진 만큼 일반 직장인들은 퇴근 후 쇼핑이나 운동 등 개인 취미 활동을 할 수 있다. 긴 일조 시간 덕분에 여가 활동에 더 많은 돈을 쓸 수도 있다.
또 퇴근 후에도 밝은 날씨를 즐길 수 있어 일반적인 삶의 만족도가 올라간다. 독일 건강보험회사 DAK(Deutsche Angestellten-Krankenkasse)에 따르면 햇빛 노출 빈도가 많아질수록 엔도르핀 분비를 촉진시켜 행복 지수가 올라간다. 이 외에 광합성을 통한 일정한 수면 패턴이 가능해져 만성 피로 등도 방지할 수 있다.
학교나 직장 등에서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는 효과도 있다. 서머타임 때는 해가 드는 시간이 길어 실내에서도 전기 조명 사용을 줄일 수 있다. 깨어 있는 시간을 조정하여 효율적으로 에너지 사용량을 관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매년 6개월마다 1시간씩 시간을 바꾸는 것에 대해 반대 목소리도 많다.
시장조사기관 슈타티스타에 따르면 독일 인구의 약 75%가 시간대 변경에 반대한다. 4명 중 3명꼴이다. 이는 2013년의 69%에서 더욱 증가한 수치로, 10년 사이에 시간대 변경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늘어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먼저 시간대 변경에 따라 인위적으로 수면 시간을 조정해야 한다는 게 반대 이유다. 서머타임이 시작되면 평소보다 1시간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하고, 해제되면 1시간 늦게 잠을 자야 한다. 이에 따라, 루틴한 삶에 적응한 바이오리듬을 인위적으로 일 년에 두 번씩 바꿔야 한다. 이는 수면의 질이나 일상생활 속 집중력의 하락, 업무 생산성 저하 등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자연스레 피로도도 쌓일 수밖에 없다.
실제 슈타티스타에 따르면 약 29%가 시간 조정에 따른 문제를 겪었다고 응답했다. 이 중 가장 많은 79%는 몸의 무기력함을 느끼며 피곤했다고 응답했으며, 53%는 수면 장애를 겪었다고 말했다. 45%는 집중력 저하에 따른 업무 생산성이 낮아졌다고 밝혔다.
또 시간대 조정 기간 직장인들의 병가 사용률은 15% 늘었고, 시간 조정 적용 첫 주에는 자동차 사고도 약 30%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에너지 절약의 실질적인 효과에 대한 비판도 있다. 일조 시간이 길어져 전기 사용은 줄어들지만, 반대로 그만큼 냉방 수요는 증가한다는 것이다. 또 서머타임이 해제된 겨울에는 난방 시간이 늘어나 결국 에너지 절감 효과는 미미하다는 분석이다.
시간대 변경에 대해 반대 여론이 많지만, 단숨에 서머타임을 폐지하기는 힘들다. 특히, 독일의 경우에는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과 시간대가 겹치기 때문이다. 그럼 EU 차원에서는 시간대 변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EU 내 대부분의 국가들도 독일과 비슷하게 부정적인 의견이 많다. 2018년 EU 국가 내 460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약 84%가 시간대 변경 제도를 폐지하는 데 찬성했고 서머타임을 영구적으로 사용하자는 데 지지했다.
하지만 시간대 조정을 폐지하려면 EU 내 27개 국가의 일관된 목소리가 필요하다. 독일 혼자 중앙 유럽 표준시(Mitteleuropäische Zeit, MEZ)에서 탈퇴하여, 이웃 국가인 프랑스, 폴란드 등과 1시간의 시차를 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 섣불리 시간대 조정 제도를 폐지할 경우 동일 시간대를 가진 국가 간에 국경을 쉽게 넘을 수 있던 이점이 사라질 수 있다. 이에 따른 교통 혼잡과 경제적 교류에도 새로운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실제 독일 녹색당 소속이자 EU의회 의원인 안나 데파르나이-그루넨베르크(Anna Deparnay-Grunenberg)는 “서머타임에 따라 유럽인들이 일 년에 두 번씩이나 일종의 시차 적응을 해야 한다”며 “다만, 각국의 이해관계가 다르고 문제가 복잡하여 해결하기 쉽지 않은 이슈다”고 말했다. EU의회에 따르면 2026년까지는 현 시간대 조정 제도를 유지한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겉에서 보기엔 1시간의 차이가 별로 크지 않지만, 이를 둘러싼 경제적 영향, 신체 변화, 지정학적 이해관계 등 생각보다 복잡한 이슈들이 엮여있다. 결국 서머타임은 시계의 시침을 고작 360˚ 한 번 더 돌리는 작업 그 이상 이하도 아니지만, 1시간의 차이는 생각보다 큰 변화다.
1310호 17면, 2023년 4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