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양자
오늘 어머니날( 금년에는 5월 11일)에 부처신랑(별명)이 언제부턴가 꼭 한 번 가고 싶었다며 라인강변의 뤼데스하임(Ruedesheim)과 아스만스하우젠(Assmanshausen) 중간에 있는 상기의 천년 고성터에 같이 가자고 했다.
날씨도 좋고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푸랑크프르트에서 8시 반 쯤 R10 완행 기차(49 유로 티켓)를 타고 한 시간 15분 쯤 노이비트(Nuewied)방향으로 가다가 뤼데스하임역에서 내렸다. 내려서 택시운전수에게 물어보니 손으로 가르키며 오른쪽으로 가다가 왼쪽으로 쭉 가면 된다고 했다.
그런데 한참 가다 보니 길이 세 개나 나 있었다.
하나는 보통 자동차가 다니는 길이고, 또 하나는 기차가 다니는 옆길이고, 또 하나는 포도밭을 따라가는 길이었다. 우린 어떡할까 궁리하다가 중간 길을 택했다. 약 3 Km 를 걸어 가다보니 그 성터는 우리보다 더 낮은 곳에 있었다.
부처신랑은 뭐가 그리 급한지 길도 없는 쇠울타리가 쳐진, 풀이 무성한 포도밭에 들어가서 그냥 내려가자고 했다. 빨간 요염한 양귀비꽃, 노란 버터꽃, 그리고 향기로운 들장미가 코를 사치시키고 갖은 약초들이 돈도 안 받고 심신을 치료시켜주는 듯 했다.
손발이 긁히고 미끄러져가며 간신히 내려가서 보니 곳곳마다 돌 층계가 여러 개 있어서 괜히 성급했던 우리 노인들이 주책스럽고 약간 부끄러웠다.
가다가 보니 어느 인부가 육중한 포클레인을 어린아이들이 장난치 듯 조그만 리모콘으로 조종하며 신나게 경사진 밭의 잡초들을 깎고 있었다.
평생을 손으로만 힘들게 과수원일을 하시던 시아버님께서 만약에 이 모습을 보신다면 얼마나 억울해 하실까 싶어 차라리 안 보시는 게 천만다행이다 싶었다. ( 웃음)
약 1100년 경에 만든 이 고성은 여러 전쟁을 치루고 이젠 폐가 되어 유유히 라인강을 바라보며 장엄하게 뼈다귀만 남아있었다. 라인강주변의 역사와 문화를 침묵으로 지켜보며 말없이 할일을 다 했다는 듯이 앞으로는 쥐의 성(Maeuse Turm), 뒤로는 유명한 라인강의 기적인 포도주를 생산하는 잘 정리된 포도밭으로 포근하게 둘러 쌓여있었다.
자세히 보니 아직도 벽난로의 흔적과 우물 ,고틱 창문과 적을 망보던 타워가 남아있고 울타리 때문에 들어가 보지는 못 했지만 예전엔 당당한 요새였을 것 같다. 내 생각으론 가난한 백성들의 피와 눈물로 만들어졌고 쓸데없는 전쟁으로 많은 살생과 피해가 있었을 것 같다. 그리고 더 가슴 아픈 것은 아직도 부질없음을 깨닫지 못하고 여러 곳에서 전쟁을 하고 있는 우리 인간들의 무자비를 생각해보았다.
오래 못 보았던 조그만 귀여운 도마뱀이 성벽을 기어 올라가고 있다. “우리가 어렸을 때 시골에서 왜 도마뱀의 꼬리를 자르며 그렇게 웃고 놀았을까?” 생각해보니 새삼 너무 미안하다.
성터를 관람하고 내려와 푯말을 보니 뤼데스하임과 아스만스하우젠의 중간에 우리가 서 있었다. 배도 고프고 다리도 아프고 해서 우리가 자주 가는 아스만스하임으로 걸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10분후에 미리 예측 못했던 큰 장애물이 있었다. 설악산 봉정암을 올라가는 깔딱고개를 연상하는 꽤 높은 돌 층계가( 약간 과장함! 용서!)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돌아가는 패배자가 되지 않기로 하고 우린 젖먹던 힘까지 다 총동원하여 기어코 아스만스하임으로 가는 큰 길까지 올라가는데 성공했다. 올라가서 높은 곳에서 바라보던 라인강변의 시원하고 아름다운 풍경은 내 능력으로는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그 다음부터는 누어서 떡 먹기였다. 여행자들이 줄서있는 독일 전통 식당에서 우리도 그곳의 자랑거리 리슬링(Riesling) 와인 한 잔을 마시니, 세상에서 부러울 것이 없이 행복했다. 슈니첼(Schnitzel)과 폼푸리트( Pommes Frietes), 셀러드를 먹고 아이스크림과 커피까지 즐겼다.
내가 존경했던 돌아가신 황수관교수께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어단어가 무엇인줄 아느냐고 물으셨다. 아쉽게도 아버지는 아니고 mother (어머니) 라고 하셨다.
당신의 아버지는 6,25사변 때 폭탄이 떨어지면 혼자 도망 가셨는데 당신의 어머니께서는 세 아이를 가슴에 품고 파편을 맞으시면서도 아이들을 보호했다고 하셨다. 당신도 어렸을 때 홍역을 앓아 죽었었는데 아버지가 멍석에 말아 묻으려고 마루에서 기다리는데도 어머니께서 당신의 얼굴의 고름난 상처를 핥아주어 기적적으로 살아났다며 어머님께 효도하고 좋은 어머니가 되라고 하셨다.
나는 아직도 좋은 어머니는 못 되었지만 날 낳아주시고 키워주신 어머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렸다. 아무튼 오늘은 아주 좋은 어머니날이었다. 그런 기회를 준 라인강변의 성터에도 감사하고 항상 집사람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부처신랑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1363호 14면, 2024년 5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