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이해하자 / 154
또 다른 명품, 독일 총리들(20)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 총리:
합리적 타협과 융합의 정치를 실천하다

명품 왕국 독일에는 제품·인프라·시스템뿐만 아니라 인물에도 명품이 많다.
경제적으로 ‘라인강의 기적’과 정치적으로 ‘베를린의 기적’을 이끌어온 ‘서독과 통일독일의 연방총리들’이야 말로 나치 정권의 혹독한 시련을 겪은 독일이 길러낸 최고 명장들이며 독일 국민이 만들어낸 최고의 명품이다.
독일의 연방총리를 보면 자유민주주의와 강력한 서독(아데나워)- 시장경제와 경제기적(에르하르트)- 동방정책(빌리 브란트)-동서 데탕트 시대(슈미트)- 유럽 통합과 독일 통일(헬무트 콜)- 노동개혁과 독일병 처방(슈뢰더)- 독일병 치유와 EU 대주주(메르켈) 그리고 현재 올라프 숄츠로 이어지며, 제2차 세계대전 후 건국-분단-냉전-성장-통일-통합에 이르기까지 마치 한 편의 대하드라마처럼 잘 짜여진 시나리오로 구성되었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2005년 독일 총리에 취임한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많은 기록을 남겼다.

독일 첫 여성 총리이자 첫 동독 출신 총리다(서독에서 태어났지만 동독에서 자랐다). 쉰한 살에 독일 최고 지도자 자리에 오른 전후 최연소 총리이며, 의원내각제 독일에서 스스로 임기를 마감한 첫 총리이기도 하다. 오토 폰 비스마르크(22년), 헬무트 콜(16년)에 이어 독일의 세 번째 장수 총리다.

단순히 임기만 긴 게 아니다. 양과 질 모두 칭송받는다.

16년 임기 동안 개인 비리나 스캔들이 없었다. 퇴임까지도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임기 동안 독일 경제는 더 탄탄해졌다. 독일은 명실상부 유럽연합(EU) 수장으로 올랐다. 그리스 경제위기, 시리아 난민 사태, 브렉시트와 같은 국면에서 중심을 다잡는 리더였다.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포브스〉가 뽑은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위는 임기 동안 메르켈을 따라다니던 수식어다.

메르켈 총리의 최대 치적으로 중도정치를 꼽는다.

그의 임기 동안 불만을 품은 일부 세력이 극우 정당을 만들었고 이들의 포퓰리즘 정책들은 특히 구동독 주민들의 불만을 흡수하는데 성공했다. 메르켈 총리를 향한 비판 가운데 하나가 이처럼 극우 세력이 확산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는 점이다. 물론 다수의 독일 국민은 극단세력을 버리고 중도의 길을 택한 메르켈 총리를 지지하고 있다.

난민정책이 대표적이다. 2015년 시리아 사태로 쏟아져 들어오는 난민에 대해 메르켈 총리는 두 팔 벌려 맞았다. 가짜뉴스와 극우세력의 집요한 공격으로 한때 지지율이 주춤했지만 메르켈은 성과로 맞섰다. 난민이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던 우려에도 불구하고 현재 독일의 실업률은 세계 최저수준인 3%로 사실상 완전고용 상태다. 치안이 불안할 것이라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2020년 독일의 ‘세계행복보고서’ 순위는 G7 국가 가운데 제일 높았다.

그의 중도 정치는 환경정책에서도 빛을 발했다. 야당시절 재생 에너지에 반대하던 메르켈은 총리가 된 후 오히려 탈 원전을 부르짖고 있다. 얼핏 생각할 수 있는 정치인의 변신과는 반대 방향이다. 하지만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그의 생각을 바꾸는데 일조했다. 이제는 핵을 없애고 재생가능 에너지에 기반을 둔 미래로 가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의 집권 기간 진보 정당이 설 땅이 없었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주요 진보 아젠다를 선점 또는 흡수해 버렸기 때문이다. 때문에 녹색당도 기꺼이 그의 연정 파트너가 될 수 있었다. 그는 사민당마저 품는 저력을 보여줬다. 이처럼 극단을 배제한 모든 합리적 정책을 수용할 줄 아는 그에게 독일 국민들은 ‘무티 메르켈'(Mutti Merkel)이라는 애칭을 선물했다.

정치에 입문하기까지

앙겔라는 1954년 7월 17일 함부르크에서 장녀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호르스트 카스너 목사, 어머니는 헤어린트 카스너이며 태어날 때 이름은 ‘앙겔라 도로테아 카스너’였다.

1954년 아버지가 동독으로 발령나면서 앙겔라 메르켈이 갓난아기일 때 부모를 따라 동독으로 이주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동독에서 서독으로 옮겨 가던 시절에 그의 가족은 특이하게도 서독에서 동독으로 이주한 케이스이다. 이에 따라 앙겔라 메르켈은 동독에서 성장하고 경력을 쌓게 된다.

어린 시절을 아버지가 사목하는 동베를린에서 북으로 80km 떨어진 브란덴부르크 주 템플린(Templin)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보냈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수학과 어학 과목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특히 러시아어 경시 대회에서 수상한 경력이 있을 정도로 러시아어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73년부터 1978년까지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하여 디플롬학위(석사학위에 해당)를 받는다. 1978년 동독 국가보안부(Ministerium für Staatssicherheit)에서 일자리를 제안 받지만 거절한다.

또한 청소년기에는 대다수 동독 학생들처럼 공산당의 청년단에 가입하여 성년식을 하는 대신 루터교회의 견진성사를 받았다. 이 때문에 불리한 위치에 처할 수도 있었지만 공부를 워낙 잘해서 명문 라이프치히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이후로도 거듭된 독일사회주의통일당의 입당 요구를 거절하고, 다른 이들을 감시해 보고하라는 슈타지의 협력 요구도 거절했다. 이런 양심적 행동 덕분에 동독 출신임에도 전혀 커리어에 손상을 받지 않고 통일 독일의 정계에 성공적으로 데뷔할 수 있었다.

1986년 양자화학 분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화학 분야 최고 권위지라고 인정받는 JACS에 쓴 논문도 있어서 정치 이전에 학자로서도 나름대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고 있었다.

학문에만 빠져 살던 메르켈은 1989년 동독의 신생정당인 민주개혁(Demokratischer Aufbruch, DA)에 가입하여 정치 활동을 시작하였고, 1990년 민주 선거로 성립된 동독의 로타어 드 메지에르(Lothar de Maizière) 정권에서 정부 대변인을 맡았다. 1990년 8월 DA와 기민당(CDU)의 합당으로 자연스럽게 메르켈도 기민당 소속이 되었다.

1328호 29면, 2023년 8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