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원 박사와 둘러보는
문화와 문화 사이를 잇는 다양한 현장들 (3)

독일에 K-웹툰의 열풍을 불러일으키는 숨은 공신, 웹툰 번역가

알렉산드라 디크만 (Alexandra Dickmann), 율리아 자쿨스키 (Julia Zachulski)를 만나다

재미있고 의미 있는 문화 콘텐츠는 국경을 초월한다. 한국의 웹툰이 다른 나라 웹툰에 비해 전 세계로 뻗어가는 데에 점진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는 이유는 웹툰 그 자체가 특별하거나 우월하다기보다는 (문화 콘텐츠 및 문학에서 한 나라의 작품이 다른 나라의 그것보다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국수주의는 위험하다) 여러 이유로 번역과 유포가 잘 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문화 콘텐츠를 다른 나라 언어로 전달하는 번역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기에 우리가 K 콘텐츠의 성취에 대해 말할 때 번역가들의 수고를 누락시켜서는 안 된다.

K 콘텐츠의 중요 아이템인 웹툰의 열풍을 독일로 이끌고 있는 웹툰 번역가이면서, 방탄 소년단 데뷔 10주년을 기념하는 책,『비욘드 더 스토리(BEYOND THE STORY) 10-YEAR RECORD OF BTS』 독일어 번역 작업에 참여한 알랙산드라 디크만 (27세)과 율리아 자쿨스키 (24세)를 만나 웹툰 번역가가 된 그들의 여정에 대해 이야기 들어 보았다.

처음에 한국어를 어떻게 배우게 되셨나요?

웹툰 작가 알랙산드라 디크만

알렉스: 십 년 전에 친구를 통해 우연히 빅뱅(BIGBANG)의 판타스틱 베이비 (Fantastic Baby) 뮤직 비디오를 보게 되었는데 보자마자 그 노래에 매료되어 버렸습니다. 난생처음으로 들은 한국 노래였는데 바로 빠져들게 된 것이죠. 노래를 들으면서 가사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따라 부르고 싶다는 강력한 동기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차근차근 한국어 배우기에 도전했습니다.

글자를 배워가면서 좋아하는 한국 노래 가사에서 아는 단어를 만나면 너무 신이 났고 한국어에 대한 흥미가 점점 더 커지면서 노래 가사를 배우는 데에서 그치지 말고 한국어를 제대로 배워 보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그래서 고등학생 시절 한국어를 1년간 독학 후 보훔대학에 입학해서 한국학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생활을 하면서 한자와 한국어를 함께 배워나갔고 1년간 서강 대학교에서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수료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깊이 있게 한국어와 인연을 쌓고 한국어를 활용하는 것이 제 직업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웹툰 작가 율리아 자쿨스키

율리아: 저도 비슷하게 한국어 공부에 발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룹 빅뱅을 통해서 한국어에 입문한 것은 알렉스와 같은데 판타스틱 베이비가 아닌 다른 노래를 통해서 (웃음) 한국어를 배우게 되었죠.

고등학교 때부터 외국어를 배우는 것에 관심이 많았고, 한국어에도 빠르게 흥미를 가지게 되었어요. 독학으로 한국어를 습득하면서 책이나 인터넷의 자료들을 찾아가면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함께 배워갔습니다. 물론, 한국 노래를 듣는 것이 한국어 공부에 큰 도움이 되었어요. 2018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때 결심했습니다. 한국학을 전공하여 미래를 한국어, 한국문화와 함께 하기로요.

지금까지 한 번도 그 결정을 후회한 적이 없고 보훔대학에서 한국어와 중국어를 전공하며 성균관 대학교에서 한 학기 동안 교환학생으로 지내던 중 프리랜서 번역가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웹툰 번역가가 되게 되었나요? 웹툰의 팬이신가요?

율리아: 저는 개인적으로 드라마와 영화를 많이 보는 편이라 웹툰보다는 한국 에세이나 시집을 더 자주 읽어요. 그렇지만 유명한 웹툰들은 찾아서 보는 편이고, 특히 드라마로 제작된 웹툰들은 다 봅니다. 한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내는 동안 지하철로 통학했었는데 그 시간을 웹툰을 읽으면서 즐겁게 보냈던 기억이 있습니다.

대학수업을 통해 언어에 대해 깊게 공부하면서 ‘이야기’를 번역한다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깨닫게 되면서 웹툰 번역 세계에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알렉스: 제 경우는 한국어 공부 중에 웹툰에 대해 알게 되었고 웹툰을 읽으면서 한국어를 튼실하게 다지게 되었습니다. 한국어 교재를 통해서 배우는 한국어에는 한계가 있는데 웹툰은 자연스러운 언어를 배우는데 활용할 수 있는 훌륭한 도구였습니다.

웹툰에 사용되는 언어는 문어체나 정제된 표현이 아니라 실제 생활에 사용하는 표현들이 대부분이기에 살아있는 한국어를 배울 수가 있고 웹툰을 읽으면서 한국의 문화뿐 아닌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법, 한국에서 이슈가 되는 일에 대해 배울 수 있었으며 어떤 꼭지가 유머가 될 수 있는지 등 언어뿐 아닌 한국사람의 사고방식까지 깊숙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즉 일상에 쓰이는 자연스러운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웹툰을 읽기 시작하다가 그 단계를 넘어서면서 즐기면서 읽게 되는 단계까지 도달하게 되었지요. 원래부터 만화를 좋아하기도 했고 한국어를 배우는 열정이 거기에 더해 시너지 효과를 보게 됐습니다.

그렇지만 프리랜서 번역가로 일하게 된 계기는 완전한 우연이었어요. 친구가 어디서 인가 웹툰 번역에 대한 채용 공고 보고 제가 퍼뜩 생각났다면서 건네주었습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저의 웹툰 사랑은 워낙 유명하다 보니 아마도 자연스럽게 저를 떠올렸던 것 같습니다.

워낙 웹툰을 좋아하다 보니 흥분된 마음으로 지원서를 제출했고 웹툰 회사 측에서도 바로 연락이 왔습니다. 번역 테스트를 거쳐 다행히도 결과가 매우 좋아서 합격하자마자 바로 첫 작품을 맡아 번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한 해 동안은 그 회사에서 주는 작품에만 집중했습니다. 그러면서 웹툰 시장이 점차 팽창하면서 번역가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게 되고 다양한 웹툰 회사로부터 번역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웹툰 회사뿐 아닌 출판사를 비롯한 다양한 기관을 통해서 작품을 받아 번역을 하고 있고 독일 출판사 몇 군데와도 협업하고 있습니다.

어떤 장르의 작품들을 번역했나요? 혹시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장르가 있나요?

알렉스: 판타지, 역사(한국 역사뿐 아닌 서양역사 포함) 장르의 작품들을 번역해 왔고 최근에는 공포물도 작업했습니다. 판타지 장르의 경우 작품에 사용되는 갖가지 용어와 등장인물의 이름을 번역하는데 다른 장르에 비해 더 큰 창의력이 요구되어 정말 재미있습니다. 또한 역사 시리즈의 번역에서는 왕이 사용하는 말처럼 옛 한국어 구어체를 배우는 것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오래된 표현과 단어를 공부하고 연구해서 그 시절의 분위기를 최대한 생생하게 살려 독일어로 번역하는 과정은 정말 보람 있는 일입니다.

독일 독자들에게 작품을 통해 제가 느낀 그 시대와 장면의 이미지를 그대로 전달해주어야 한다는 묵직한 책임감과 함께 내 안에서 그러한 창의력을 이끌어내서 적절한 표현을 만들어 전달시켰다고 느끼는 순간의 쾌감을 매번 느낄 수 있습니다. 정말 짜릿한 작업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판타지-공포 시리즈 작품의 번역도 맡았었는데 가장 어려운 부분은 음향효과를 표현하는 부분입니다. 한국어의 의성어 및 의태어를 독일어로 번역할 때 어떻게 표현할지 치밀하게 고민해야 하거든요. 장면에 알맞은 의성어와 의태어를 가장 자연스러운 독일어로 찾는 것은 즐거운 도전입니다.

율리아: 저는 사극보다는 현대물을 좋아합니다. 구체적으로 학교생활이나 사내 로맨스, 코미디 장르를 좋아하는데요. 한국 MZ 세대들이 사용하는 유행어에 관심이 많아서 끊임없이 생겨나는 새로운 용어를 배우고 탐색하는 것을 정말 좋아합니다.

많이 번역한 장르는 판타지 웹툰으로 뱀파이어, 늑대인간, 게임-판타지 등, 이런 분야에서 사용되는 한국어와 독일어 용어에 익숙하기에 판타지 장르 번역에 가장 자신 있습니다. 그렇지만 워낙 현대물을 읽는 것을 좋아하기에 신화적인 이야기를 다룬 판타지물 보다는 현실적인 MZ세대의 이야기나 로맨스를 다룬 작품을 번역하는 것이 더 즐겁습니다.

다양한 웹툰을 번역하면서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알렉스: 한국어에는 여러 계층의 존댓말이 있고 동갑내기 친구나 나이가 어린 사람을 제외하고는 이름으로 부르는 일이 거의 없고 형, 오빠, 언니, 삼촌 등의 호칭으로 부릅니다. 독일어에는 이러한 호칭문화가 발달되어 있지 않기에 번역했을 때 문장에서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줄 때가 많아요. 특히 역사/신화물이나 무협 시리즈에서 그러한 문제가 자주 발생합니다.

또한 영어에서 독일어로 번역할 때는 대부분의 구문과 표현을 단어만 바꾸어 그대로 번역할 수 있지만 한국어에서 독일어로의 번역에서는 많은 부분 문장 구조와 표현을 전부 바꾸거나 때로는 반대로 뒤집어야 합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반복적인 단어나 표현을 쓰지 않기 위해 번역가가 직접 유의어를 찾아서 사용하거나 때로는 전체 문장 구조를 여러 말풍선으로 나눠 새롭게 재구성해야 해야 합니다.

소설과 달리 웹툰은 그림이 있기 때문에 아주 작은 공간 안에 번역을 해내야 하는 어려움도 있고요. 작가의 의도를 표현하기 위해 지면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글자수 (말풍선 내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안에서 번역글을 만들어야 하는 수고스러움이죠. 기억에 남는 한 장면은 (누군가의 의중을 떠보다는 뜻으로) “간을 보다”라는 표현을 사용한 장면이었어요. 그리고 그 표현을 위해 간을 상징하는 이미지도 함께 나왔습니다.

그러나 독일어에는 “간”이라는 단어를 포함하는 관용어 표현이 없고, 비슷한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표현도 없어요. 그런 장면들을 독일어로 번역하는 것은 정말 큰 도전이지만, 좋은 해결책을 찾아냈을 때의 기쁨과 만족은 형용할 수 없습니다.

율리아: 매번 새로운 번역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웹툰의 내용과 관련해서 배워야할 사전 지식들이 많습니다. 즉 공부하면서 번역해야 해요. 원본 콘텐츠에 최대한 가까이 가도록 내용을 유지시키면서 동시에 독일어 사용자가 편안하게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도록 번역해야 하는 것은 일종의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작품 속의 소리나 등장인물들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보아야 가장 좋은 번역을 찾아낼 수 있고 단순한 한국어에서 독일어로의 말바꿈이 아닌 작품의 그림에 딱 맞는 독일어 단어와 표현을 생각해 내고 여러 개의 옵션 중 무엇이 맞는지 결정해야 하는 끊임 없는 의사 결정의 작업입니다.

때로는 이야기 속의 등장인물이나 소품 등에 관한 숨은 이야기들이 20화가 지난 후에야 자세한 설명이 나올 때가 있어요. 지금까지 진행되었던 이야기와 달리 갑자기 소년이 소녀로 바뀐다거나, 늘 있었던 소품이 생각지도 못한 효과를 지닌 물건이라는 새로운 정보가 나오면 갑자기 그 정보만 추가하면 이야기가 자연스럽지 않기에 전체의 번역 원고를 수정해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신화를 기반으로 한 한국 및 중국 문화 관련 용어가 많이 나오는 판타지 웹툰을 번역하고 있는데, 이 용어들의 의미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아요. 대부분 한국어로만 쓰여 있기에 번역하면서 직접 각 용어의 한자를 찾아보아야만 의미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경우가 있기에 한자 공부도 꾸준히 해야 합니다.

번역가로서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세요?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으세요?

알렉스: 현재 웹툰 외에도 만화 번역에도 참여 중인데 앞으로는 웹툰 만화 장르뿐 아닌 소설, 논픽션 등으로 번역의 지평을 넓혀가고 싶어요. 또한 비디오 게임 번역에도 꼭 한번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드라마나 영화의 자막 작업과 그것을 연기하는 성우의 기술에 대해서도 공부해 보고 싶습니다.

야무진 꿈이긴 하지만 번역의 언어 역시 한국어뿐 아닌 중국어와 일본어로 넓혀가고 싶습니다. 최근 중국어 번역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어요. 차근차근 동아시아 권역의 작품들을 독일에 소개하는 전문가가 되고 싶습니다.

율리아: 웹툰 외에도 다른 분야의 작품을 많이 번역해 보고 싶습니다. BTS책을 선두로 앞으로도 계속 더 다양한 장르의 번역을 경험해 보는 것이 꿈입니다. 인쇄물을 번역하는 것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해서 언젠가는 내가 좋아하는 한국 시집들을 차례로 독일어로 번역해 나가고 싶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시집들은 대부분 매우 정형화되고 시적인 언어 스타일을 가지고 있어요. 이러한 작업은 저에게 커다란 성취감을 맛보게 해 줄 것입니다.

2013년부터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좋아해 왔는데 그 당시 제 한국어 실력은 미미했기에 독일어 자막 번역자들 덕분에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제가 대중매체를 통해서 한국어를 배우려는 독일 학습자나 소설이나 에세이 등 한국 문학 작품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가교 역할을 하고 싶어요. 또한 k-pop 콘서트나 한국 관련 행사에서 통번역하는 기회를 살펴보고 있어요. 장르를 가리지 않고 경험을 쌓아가야 하는 나이인 만큼 그 어떤 기회가 와도 놓치지 않고 모두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삽화작가 소개: 루이 콜만 (Lui Kohlmann, 1995)
루이 콜만은 브레멘 대학에서 미술학위를 마친 후 작가로 왕성하게 활동중이며 그와 더불어 현재 한국학 학사를 취득중이다.
(https://lui-kohlmann.de)

1330호 14면, 2023년 9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