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이해하자 / 184

독일 연방군의 뿌리는 프로이센군이다. 독일제국을 거친 후 바이마르공화국 군대 제국군(Reichswehr, 1919~1935)과 히틀러의 제3제국의 나치군(Wehrmacht, 1935~1945)은 양차 대전의 주역이 되었다. 1945년 5월 8일 독일이 무조건 항복한 이후 나치 독일군은 1946년 8월 공식 해체되었다. 독일은 미·

소·영·프 전승 4개국에 의해 탈군사화가 되었고, 군비계획 자체가 엄격히 금지되었다.

서독은 1954년 10월 23일 서유럽연합(WEU)에, 1955년 5월 5일 나토에 각각 가입했다. 1955년 11월 12일 샤른호르스트 장군탄생 200주년 기념일을 기해 서독 연방군이 공식적으로 창설되었고, 1956년 4월 1일 독일 군법의 효력이 발효됨에 따라 ‘연방군(Bundeswehr)’이라는 명칭이 부여되었다.

통일 후 연방군 임무 변화와 해외 파병

동서 냉전이 종식된 후 연방군의 주요 임무는 영토방위가 아니다. 통일독일은 우방국으로만 둘러싸여 있어 독일 영토에 대한 재래식 전력의 위협은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다. 오히려 국제 테러리즘, 국제조직범죄, 대량 살상무기 확산, 국지적 분쟁 증가 등이 독일과 유럽

안보의 새로운 위협 요인으로 부각되면서 연방군의 임무도 기존의 영토방위에서 해외파병 임무로 전환되었다.

1994년 7월 연방헌법재판소는 평화유지를 확보하고 국제법을 준수하기 위해 수행되는 연방군의 해외파병이 기본법에 합치한다고 판결했고, 2004년 12월 연방 하원은 「연방군 해외파병법」을 제정했다. 이에 따라 연방군은 의회가 승인하는 한 나토 역외의 국제평화 임무에 조건 없이 참여해 전투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

연방군은 해외파병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군 구조와 전력을 개혁하고 있으며, 제한된 국방예산 틀 안에서 다국적 연합작전 수행과 장기적 해외파병 활동에 필요한 전력을 우선 보강하고 있다.

통일 이래 연방군은 30개 이상 해외 군사작전에 참여해왔다. 독일은 미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해외파병 작전에 투입하고 있다. 통일 전 과거 양차 대전의 원죄에 대한 피해의식으로 군사문제와 관련해서는 항상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것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변모가 아닐 수 없다.

연방군 변혁과 의무복무제의 일시 유예

현재 독일이 설정하고 있는 위협 인식은 재래식 군사수단에 따라 받았던 과거의 위협과 차이를 보인다. 독일을 위협할 수 있는 대상은 시리아 사태에서 보듯이 붕괴 위기에 빠진 국가의 내전 발생과 그에 따른 지역 불안정, 난민 발생, 국제 테러리즘과 범죄활동, 기후 및 환경 재해, 전염병 및 유행성 질병 등이다. 따라서 연방군은 새로운 형태의 위협에 대비하여 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연방군은 2011년 시작된 국방개혁에 따라 병력을 감축해왔다. 군대 규모는 25만 명에서 2017년까지 최대 18만5천 명으로 감축되었다.

규모가 가장 큰 육군의 경우 6만1천4백 명에 불과하다. 기존의 5개 사단에서 3개 사단만 유지되며 여단은 11개에서 8개로 축소된다. 이 3개 사단이 해마다 번갈아가며 해외에서 벌어지는 작전을 책임진다.

1980년대 냉전 시기 연방군 규모는 50만에 달했고, 육군의 경우 3개 군단과 12개 사단이 있었다. 연방군의 전통적 주력부대였던 전차도 크게 감축되어 겨우 3개 대대만 유지될 뿐이다. 2000년부터는 여성에게 전투병과 문호도 개방했다.

독일은 전통적으로 의무복무제를 고수해왔다. 국방은 전 국민이 참여해야 할 대상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서독 건국 후인 1956년 7월 21일 「의무복무법(Wehrpflichtgesetz)」이 발효되었고, 이후 의무복무제는 1968년 기본법에 정착되었다. 이렇듯 의무복무제의 역사가 깊은 독일은 2011년 7월 1일부로 의무복무제를 일시 정지하고 모병제를 실시하고 있다. 의무복무기간 6개월 중 신병 훈련이 3개월이다

보니 활용성 측면에서 문제가 많았고, 비용만 낭비한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오래전부터 의무복무제 폐지와 관련해 찬반토의가 있었으나 젊은이들이 조국을 지킨다는 애국심 고취, 갑작스러운 의무복무제 폐지에 따른 인력수급 문제 때문에 실행에 옮기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유럽연합 28개국 중에서 독일 외에 의무복무제를 아직도 유지하는 나라는 오스트리아(6개월), 덴마크(4개월), 핀란드(6~12개월), 그리스(12개월), 투아니아(8개월)뿐이다.

독일의 경우 의무복무제를 완전히 폐지한 것은 아니다. 주변의 적개념이 사라짐에 따라 의무복무제를 일시적으로 중지한 것뿐이다. 국가 비상시 만 18세 성년 남성은 의무적으로 군이나 국경수비대 혹은 민간복무 기관에서 병역을 필해야 한다는 기본법 제12조는 여전히 유효하다.

주독 미군의 역할과 위상 변화

미군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줄곧 독일에 주둔해왔다. 최초 미군은 나치 패망 후 전승 연합군의 자격으로 서독 지역에 주둔했으나, 소련으로부터 공산화 위협을 막기 위해 1946년 영국군과 점령 지역을 합친 후 서독의 안보를 책임지는 보호국(Schutzmacht)으로 변신했다. 냉전 당시 25만에 달하던 주독 미군은 현재 3만 6천여 명으로 줄었다.

주독 미군의 법적 주둔 근거는 나토군이 독일과 체결한 주둔협정이다. 독일과 미국 사이에 쌍무적 소파(SOFA) 협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주독 미군은 과거 바르샤바조약기구의 침공을 방위하는 임무를 맡았으나 동서 냉전 종식 후 현재는 주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작전에 투입되어왔다.

독일 정치권이나 국민은 대부분 미군 주둔을 적극 지지한다. 유일하게 연방하원에서 ‘좌파연합(Die Linke)’만이 외국 군대의 철수를 주장하나 대부분의 정당은 이에 동조하지 않는다.

독일은 미군 철수와 미군기지 축소가 지역경제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우려하여 이에 반대하거나 철수 규모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해왔다. 특히 미군 기지가 위치한 주(州) 정부들은 미군잔류 시 행정적 지원과 인센티브 제공 등 협조를 약속하며 미국 국무부, 국방부는 물론 정치계 인사들과 접촉해 미군 잔류를 위한 로비전을 치열하게 전개해왔다.

1359호 29면, 2024년 4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