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전쟁 – 전쟁과 약탈 그리고 회복 (38)

반환 겉도는 칸딘스키 ➀

■ 수백 억대 칸딘스키 그림 놓고 회복 불만 폭주

독일에서 태어난 유대계 네덜란드 예술품 수집가 요한나 마르가레테 슈테른-리프만(Johanna Margarete Stern-Lippmann, 1874~1944) 후손들은 2020년 2월 네덜란드 문화부에 전문가들의 ‘부주의한’ 실수와 감수성 부족에 대한 불만 청원을 제기했다. 이 가문은 또 나치 정권 당시 분실한 ‘추상화창시자’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의 대작을 네덜란드가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전쟁 전의 합법적 원래 소유자에게 반환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해당 작품은 칸딘스키가 1910년 그린 ‘예배당이 있는 무르나우 풍경(Blick auf Murnau mit Kirche)’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슈테른-리프만 가문이 소유했다. 하지만 1951년 이후 에인트호번 시의회 소유로, 반 아베 미술관(Van Abbemuseum)에 전시되어 있다.

작품은 칸딘스키가 추상미술의 선구자답게 구체적인 풍경의 단순한 재현에서 벗어나 힘 있는 필치와 선명한 색채로 그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러시아 출신으로 20세기에 가장 중요한 예술 이론가로도 꼽히는 칸딘스키의 작품은 그 가격이 엄청나다. 2017년 6월 열린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1909년 작품 ‘초록색 집이 있는 풍경’은 2640만 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301억 원)에 낙찰된 데 이어 1913년 작품 ‘하얀 선이 있는 그림’도 같은 경매에서 4160만 달러(약 475억 원)에 새로운 주인을 만났다. 이를 고려하면 ‘예배당이 있는 무르나우 풍경’이나 또 다른 회복 논란이 되는 1909년 작품인 ‘주택이 있는 풍경(Bild mit Häusern)’도 최소 수백억 원대일 것으로 추정된다.

회복 논란의 중심에 선 그림 ‘예배당이 있는 무르나우 풍경’의 전쟁 전소유자인 슈테른-리프만 후손 12명은 의심스러운 환경에서 집에 있던 그림이 사라졌다며 자신들이 합법적 상속자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선조가 네덜란드를 떠날 때 작품이 가족 컬렉션에서 사라졌다고 강조한다 .

슈테른-리프만은 1942년 암스테르담에서 체포되어 아우슈비츠로 보내졌고, 결국 다시는 걸어 나오지 못했지만 일부 자녀들은 전쟁 통에 살아남았다.

그림 소유권을 주장하는 후손 가족 대표 헤스터 베르겐(Hester Bergen)은 가족들은 절차가 오래 지연되고, 거슬리는 질문에다 네덜란드 회복위원회의 전문가 보고서에서 사실상의 실수에 좌절한다고 말한다. 회복위원회는 홀로코스트와 관련된 상실 재산회복을 주요 업무로 하는 네덜란드 정부 기구다.

■ 1935년 가문의 실내 사진에 등장한 그림이 증거

베르겐은 반 아베 미술관이 2013년 자체 조사한 결과, 칸딘스키 작품이 약탈 예술품일 가능성이 짙다고 인식했을 때, 가족들은 가문의 분실 작품이라는 것을 알았다. 베르겐은 1924년 선조 할아버지 유언에서 ‘칸딘스키 풍경화’를 언급한 것을 찾아냈다. 그리고 미술관은 그림 뒤에 적힌 손글씨와 유언의 손글씨가 일치한다는 것도 밝혀냈다.

그러고는 2018년 당시 84세 고모에게서 베르겐은 193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증조모의 독일 집 거실 벽에서 문제의 그 작품이 걸려 있는 사진을 앨범에서 찾아냈다. 그는 이 사진으로 칸딘스키의 ‘예배당이 있는 무르나우 풍경’을 가문이 소유한 결정적 증거로 생각했다. 베르겐은 가문에서 이 작품을 돌려받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 증거가 부족한 것은 아니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이들의 반환 청구는 회복위원회가 기각했다. 회복위원회는 2018년 1월 29일자 결정문에서 “이 가족이 이 그림을 소유했다는 점은 의심하지 않았지만, 어떻게 헤이그 미술 거래상 카를 알렉산데르 레가트(Karl Alexander Legat)의 손에 들어갔는지는 증명되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나치 집권 기간 예술품을 약탈하고 처리한 이들의 적기 명단(red flag name)에도 등장하는 레가트는 1951년 작품 소유주가 수수께끼의 인물인 ‘에이. 카우프만(A. Kaufmann)’이라며 미술관에 팔았다. 레가트는 이보다 앞선 1949년에도 칸딘스키 작품 한 점을 팔았다.

회복위원회는 1935년에서 1951년 사이 그림의 행적이 명확하지 않다고 보았다. 또 이 가문이 종전 후인 1955년 정부가 설치한 ‘네덜란드 예술품 재산 재단(Stichting Nederlands Kunstbezit: SNK)’에 제출한 분실 재산의 반환 신청서에 칸딘스키 그림에 대한 언급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어 1958년과 1959년에 베를린 보상사무소 WGA에 보낸 분실 예술품 명단에도 칸딘스키 그림에 대한 언급이 없다고 덧붙인다.

이에 베르겐 가족들은 2020년 2월에 더 많은 증거를 또 다른 기관인 네덜란드 예술위원회에 제출했고, 베르겐 고모에게 더 많은 질문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베르겐은 “내가 더 많이 질문할수록 고모는 더 많이 화를 냅니다”라면서 “고모는 ‘이는 그림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우스꽝스럽게 만들려는 신호’로 받아들인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저는 지금 에인트호번 시장과 시의원들과 맞서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작품의 반환 결정을 회복위원회에 넘겼다고 말하고, 회복위원회는 전문가들에게 맡겨버렸고, 전문가들은 실수에 실수를 거듭했습니다. 그러고는 아무도 결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는 동안 전쟁 기간 숨어 지내다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인 고모는 늙어 갑니다. 제 어머니는 5년 전인 2015년 돌아가셨고, 다른 고모는 2019년 5월에 별세했지만, 그들은 사건을 계속 미루고 있습니다. 제 고모는 전쟁의 직접적인 희생자입니다. 그게 저는 가장 괴롭습니다.”

베르겐 가족은 네덜란드 문화부에 전문가 보고서의 오류와 판단에 걸린 시간, 편견, 그리고 홀로코스트에 가족을 잃은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회복위원회가 보인 부당한 대우에 불만을 제기하는 서한을 보냈다

1319호 30면, 2023년 6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