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전쟁 – 전쟁과 약탈 그리고 회복 (39)

반환 겉도는 칸딘스키 ➁

약탈품 반환의 역사는 깊다.

기원전 1세기 로마 공화정 시대 유명 정치인이자 작가였던 키케로는 기원전 73년부터 3년간 시칠리아 총독을 지낸 베레스를 유물과 예술품을 훔쳤다며 재판에 넘겼다. 전쟁이 아닌 평화 시의 약탈과 절도이지만 베레스는 ‘로마에 대한 불충’으로 유죄 선고를 받았다.

판결 직후 그가 시칠리아 사원 등에서 탈취한 유물들은 그대로 복원되었다. 문화재와 예술품 반환의 최초 기록 사례다. ‘정복 제국’ 로마에도 반환의 전통이 면면히 이어졌다.

문화재를 대규모로 약탈한 나폴레옹을 격퇴한 영국 웰링턴 공작도 약탈품을 유럽의 원래 소유국으로 돌려줄 것을 영국 정부에 건의했다. 영국과 프로이센 등 연합국 대표들은 1815년 9월 파리를 점령했지만 이런 연유로 파리의 루브르는 전승국의 약탈에 짓밟히는 운명을 피할 수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가 약탈한 문화재와 예술품이 속속 원래의 합법적 소유자나 그 상속인들을 찾아간다. 특히 반환 문제가 제기된 예술품과 문화재 소장자가 그 취득 경위와 역대 소장자의 획득 정당성을 입증하라는 ‘워싱턴 원칙’ 합의 이후 나치 시대 약탈품의 회복이 가속화하고 있다.

약탈 문화재 환수는 유물이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이동하는 단순한 물리적 위치 변경이나 한 나라의 컬렉션 부족 부분을 채운다는 문화적 자존심 높이기 차원을 넘어서는 문제다. 있어야 할 곳으로 되돌아가는 제자리 찾기라는 도덕적 당위성뿐만 아니라 약탈에 스며든 역사적 핏빛 폭력과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어루만지고 쓰다듬는 힐링의 길이다.

■ 칸딘스키의 다른 작품도 반환을 거부한 위원회 ‘속사정’

회복위원회의 결정 논란은 이뿐만 아니다. 칸딘스키가1 909년에 그린 ‘주택이 있는 풍경’의 합법적 소유자로 자처한 유대계 네덜란드인 사업가이자 예술품 수집가 에마누엘 레벤슈타인(Emanuel Lewenstein, 1870~1930)의 후손들은 2020년 1월 그림을 돌려달라고 법원에 소송을 냈다. 앞서 회복위원회는 2018년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에 걸려 있는 이 작품에 대해 미술관이 반환할 의무가 없다고 결정했다.

회복위원회의 반환 거부 결정에 대해 레벤슈타인 후손들은 편견이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후손들은 2013년 12월부터 작품 반환을 요구해 왔다.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은 문제의 칸딘스키 작품을 네덜란드가 나치에 점령된 지 5개월이 흐른 시점인 1940년 10월 경매로 확보했다. 시립미술관은 당시 160길더를 지급했으나, 레렌슈타인 후손들은 선조가 이보다 17년 전에 500길더에 샀던 작품이라며 강요로 그림을 헐값에 판 것이라고 강조했다.

레벤슈타인 후손을 대변하는 변호사들은 “미술관이 선의로 행동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후손들이 그림을 돌려받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인 계기는 나치의 약탈 미술품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자는 운동에 네덜란드 정부가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네덜란드는 1998년 나치 강탈 미술품을 돌려주기로 합의한 ‘워싱턴 원칙’ 이후 2002년 변호사와 미술가, 미술사학자 등이 참여하는 회복위원회를 구성해 나치 시절에 도난당한 미술품을 원래의 합법적 소유주에게 돌려주는 작업을 시작했다. 세계적으로 이런 기구를 꾸려 운영한 나라는 네덜란드를 포함해 5개국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회복위원회가 칸딘스키의 1909년 작품에 대해 반환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밖의 결정을 내린 것이다. 회복위원회는 2018년 11월 1일자 결정문에서 “나치 시절인 1940년 10월 8~9일 암스테르담 프레드리크 뮬러 경매소에서 그림이 팔렸고, 레벤슈타인 가족들은 그림을 내놓지 않으면 어떤 운명에 처할지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라며 어느

정도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거래가 이루어졌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레벤슈타인 가족이 당시 재정적으로 어려웠다는 증거가 있다는 점과 직계 후손들이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미술관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오랫동안 그림 반환을 요구하지 않았던 점을 들어 미술관은 반환할 의무가 없다고 결정했다. 암스테르담 지방 법원도 2020년 12월 회복위원회의 결정에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렸다.

■ 미국 법정으로 간 칸딘스키 그림 소유권

레벤슈타인 후손 세 명은 2017년 3월 미국 뉴욕에서 또 다른 칸딘스키작품 ‘화려한 인생Das Bunte Leben’을 소유한 바이에른 란데스방크에 대해 소유권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칸딘스키의 역작 가운데 한 점으로 꼽히는 이 작품의 가격대는 소송을 낸 그의 후손들은 그 가치가 8000만 달러라고 믿고 있다(<가디언>, 2017년 3월 3일자 기사).

예술품 거래상이었던 레벤슈타인은 칸딘스키가 1907년 이 작품을 완성한 직후에 구입했다. 1930년, 그가 사망한 직후 부인 헤드비히(Hedwig, 1875~1937)가 안전하게 보관해달라며 암스테르담 미술관에 맡겼다. 전쟁발발 직전인 1937년 그녀가 사망하면서 그림은 두 자녀에게 상속되었지만, 두 자녀는 나치의 박해를 피해 1938년과 1939년 각각 모잠비크와 뉴욕으로 피신했다.

후손들은 소장에서 “유대인 집단학살이 전개되던 네덜란드를 나치가 점령한 시기에 그림은 합법적 소유자들로부터 국제법을 위반해 탈취되었다”라며 가족들 허락 없이 1940년 경매에서 팔렸다고 주장한다. 경매회사 프레드리크 뮬러가 1940년 10월에 발간한 경매 목록에 구드스티커가 소유한 작품들을 비롯해 칸딘스키 작품이 204점이 적혀 있지만 250점이 팔린 것으로 추정된다. 가격은 시중의 10~20퍼센트에 지나지 않았지만 레벤슈타인 가족은 판매 대금을 전혀 받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현재 그림은 독일 뮌헨의 렌바흐하우스 미술관에 걸려있다. 문제의 작품을 사들여 렌바흐하우스에 대여한 바이에른 란데스방크는 성명에서 “은행은 1972년 뮌헨시의 조사 아래 칸딘스키 그림을 매입했다”고 밝혔다. 은행 측은 협상으로라도 해결해 그림을 계속 걸어두고 싶어 한다.

1320호 30면, 2023년 6월 23일